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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년 10월 9일 해방 후 첫 한글날은 한글반포 500주년이었다. 동아일보가 주최한 한글반포 500주년 기념행사는 한글에 마라톤을 접목시켜 눈길을 끌었다.
  행사이름은 ‘세종영능봉심 역전회(世宗英陵奉審驛傳會)’. 세종대왕 능인 영릉(英陵)을 보살핀다는 봉심(奉審) 역전경주(공무를 띤 사람을 역에서 역으로 말을 갈아 보내던 일)를 열어 영릉에서 기념식장까지 달리도록 한 것이다.
  10월 6일 덕수궁을 출발해 영능 경내에서 7일 오후 동아일보와 조선어학회가 공동으로 한글반포 500주년 세종대왕 송덕비 착공식을 가졌다.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陵西面旺?里) 세종대왕 영능 정자각에서 송덕비 봉건 개기식은 7일 오후 한시부터 구 왕궁이 집재한 고유제(?諭祭)의 뒤를 이어 오후 4시부터 여주군 곽종석총무과장 사회로 열리엇는데 그러케 맑는 가을하늘에 난데없는 검은 구름 한족이 능 상공에 떠돌아 개기식 개회때 가는 비를나리고 이어서 쾌청한데 일반 참배자들은 이상하게도 눈물을 먹음엇다. 국기에 배례하고 애국가 합창이 있은 후 세종능에 향하야 일동이 경건한 배례와 일분 간 추념묵상이 잇고 본사 사업국 이길용 씨의 사업계획보고 여주군수 민옥인 씨의 식사 조선어학회 리중화 씨의 훈민정음 봉독이 있은 후 본사대표 설의식 씨는 권태하 선수가 봉지 전달한 송덕비문을 일반의 옷깃 가다듬은 가운데 봉독하고 경기도지사 구자옥씨로부터 구왕궁 서무과장의 안내로 경내에 비 세율기지에 표석을 세우고 송덕비 봉건 현금 연출을 발언 제의하야 만장이 박수로 가결한 후 한글노래 한글만세삼창으로 식을 마치니 때는 오후 다섯시로서 북성산(北城山)마주 않은 영능에…”

 

  이어 7일 오후 4시 훈민정음 원본을 받들고 출발해 3일 만인 9일 오전 10시 기념식장인 덕수궁에 도착했다. 서울과 여주, 출발과 도착 때는 손기정 남승룡 등 마라톤선수들이, 그 사이는 지방 유지들이 이어 달렸다. 마라톤 구간에서는 주민들이 나와 환호했다.

 

“훈민정음 원본을 세종대왕(世宗大王)영능에서 7일 오후 4시에 삼가 밧들어 출발이래 3일 되는 9일 아침 10시 우리의 자랑 손기정(孫基禎)선수는 마라손의 벗 남승용(南昇龍)선수와 억개를 나란이 하야 걸음거리도 정중 또 씩씩하게 덕수궁식장 만장한 만여명 군중의 환호박수성리에 도착하였다.” (동아일보 1946년 10월 10일자 2면)

 

 
동아일보 1946년 10월 10일자 2면, (위) 영능 전에서 거행된 송덕비 봉건식 광경. (아래 왼쪽) 길가의 열광적 환송 아래 영능을 행해가는 봉행원. (아래 오른쪽) 송덕비문을 낭독하는 동아일보의 설의식. (최경덕 특파원 촬영)

 

동아일보 1946년 10월 6일자 2면

한글 반포
세종영능봉심역전회(世宗英陵奉審驛傳會)
금일 덕수궁에서 봉행원(奉行員) 출발
본사 주최

『한글』반포 오백 주년을 마지하는 거족적 감격을 자라나는 젊은 조선의 청년들에게 일께우고 한글을 제정한 세종대왕릉을 봉심하여 그 옛을 추모하려는 본사주최의 봉심역전회는 누보한 바와 같이 금 6일 상오 9시 유서 있는 덕수궁에서 거행한다. 본사에서는 이 역전경기에 이어 영능경내에 송덕비를 봉건하고 또 이 개기식(開基式)에 압서 서울서 거행되는 기념 국민식전을 연결하는 6백리 장거리의 영능봉심역전회를 준비하개 된 것도 또한 이를 기념하고저 함에 있다. (후략)

 

동아일보 1946년 10월 10일자 2면

영릉으로부터 훈민정음 갖고
손기정 선수 감격의 입장
한글 창제의 경축식
덕수궁에서 거족적으로 거행

한글이 반포된 지 오백주년을 마지하야 세종대왕의 거룩한 성덕을 추모하며 아울러 해방 오늘의 새로운 감격으로 압날 조선문화의 향상발전에 획기적인 일 신기원을 그으려는 삼천만 겨레의 장한 뜻을 반영하야 한글반포 오백주년 기념준비위원회 주최의 뜻깁흔 기념식전은 9일 상오 10시 덕수궁 넓은 뜰에서 본사주최 영릉역전봉심회(英陵驛前奉審會) 최종 구간인제 33구 광장리(廣壯里)로부터 훈민정음 원본을 바뜰고 달려온 마라손 패자 손기정(孫基禎)선수의 반가운 입장으로서 성대하고 또 엄숙한 식전의 막을 열엇다.
맑게 개인 이날 시내 남녀중등 전문 대학생을 비롯하야 각 사회단체의 대표자 시민 오천여명의 참집으로 개식 선언이 있은 다음 이중화(李重華)씨의 의미심장한 개회사에 이어 이병도(李丙燾)씨의 훈민정음 서문 랑독 구 왕궁청 아악부원들의 청아한 주악이 있은 다음 정인승(鄭寅承)씨의 오백년 한글의 연혁 설명으로 오백년 동안 가시덤픔을 헤치고 거러온 한글의 역사를 듯고 하지 중장 러취 군정장관 장지영(張志暎) 씨의 우리는 우리말로서 힘있게 살어보자는 뜻의 감격이린 기념사에 뒤이어 음악학교 생도들의 기렴가 제창과 만세 삼창으로 국경일 거족적성사인 기렴가 식전은 감격 속에 오정 지나 회를 막음하였다

본사주최·영릉역전봉심회(英陵驛傳奉審會)
백두산아래 배달민족이 산림을 차린 지 오천년 오늘에 이르는 동안 처음 되는 역사적 성사!
우리의 세게적 자랑이고 문화의 토대인『한글』바른 소리(訓民正音)원본을 세종대왕(世宗大王)영능에서 7일 오후 4시에 삼가 밧들어 출발이래 3일 되는 9일 아침 10시 우리의 자랑 손기정(孫基禎)선수는 마라손의 벗 남승용(南昇龍)선수와 억개를 나란이 하야 걸음거리도 정중 또 싹씩하게 덕수궁식장 만장한 만여명 군중의 환호박수성리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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