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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oryⅡ 54 : 3.1 운동 기념(1)-첫 국경일

Posted by 신이 On 2월 - 27 - 2013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정인보 작사의 삼일절 노래)

 

 공식적인 삼일절(三一節)기념행사는 1946년 3월 1일에 해방된 나라의 하늘 아래서 처음으로 열렸다. 1

 

 기념행사장은 종각 앞 광장이었고, 이승만 박사가 개회사를, 김구 주석이 경축사를 했다. 2 독립선언문은 민족대표 33인중 한명인 오세창 선생이 낭독했다. 3

 

 정부 수립 전이었지만 각계 대표로 구성된 민주의원은 삼일절을 열흘 여 앞둔 2월 18일 첫 회의에서 3월 1일을 국경일로 제정했다. 4 5 6 삼일절이 법률에 의해 정식으로 국경일로 지정된 것은 1949년 10월 1일 법률 제53호로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면서다.

 

 일제시기에도 해외에서는 삼일절 기념식이 치러졌다. 7 8 9 특히 유학생들은 해외에 있는 기간 그나마 삼일절을 기념할 수 있었다. 10

 

 국내에서 일제경찰은 삼일절 앞뒤로 경계를 강화했다. 11 12 13 기미독립선언의 중심지였던 서울 탑동공원은 특별경계 대상이었다. 매년 3월 1일엔 일체의 행사가 금지됐고 일선 경찰서는 긴장해 단체와 학생들, 요주의 인물들의 동태를 살폈다.

 

 동아일보는 해방 후 첫 삼일절을 전후해 특집으로 지면 14을 만들었으며 기미독립선언서도 전체를 실었다. 15 

 


동아일보 1946년 3월 1일자 1면, 삼일절 특집으로 만들었다.

 
 

 

 

Notes:

  1. 최초의 3.1기념, 동아의 지면반세기, 동아일보사, 1970, 125쪽.

    1946년 3월 1일에 비로소 최초의 3.1기념행사가 있었다. 1919년 3월의 3.1독립만세운동은 응당 민족적 경축일로 제정되었어야 했겠지만, 적치하의 국내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리 없었다. 그러나 이제 해방된 조국에서 그 27주년을 거족적으로 마음껏 기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 이승만 박사 담, 우리의 기미운동(已未運動)은 세계무저항의 시초, 동아일보 1946년 3월 1일자 1면.

    자주독립에 향하야 돌진하는 이승만 박사는 28일 오전 11시경 신문기자에게 대하야 첫번 마지하는 삼일기념일을 압두고 다음과가치 말하엿다
    3월 1일은 우리나라 역사에 빗나는 날이고 또한 세계역사에도 기념할만한 날입니다 이날에 우리 애국열사들이 처음으로 비군력 혁명을 시작하여서 물질적 세력을 정신적 세력으로 이길 수 있다는 주의를 새로 표명하고 그 주의를 표명하기 위하야 다수 애국남녀가 생명과 재산을 희생하였음니다
    정의와 인도를 세우기로한 고(故)로 그때 세계에서 우리 애국남녀의 열렬한 행적을 참양할 뿐 아니라 새 주의를 증명한 것을 찬양한 것입니다
    세계에서 비폭력주의의 원조를 인도의 깐되씨로 말하나 사실 그 날자를 상고해 보면 우리 만세운동이 처음으로 먼저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주의가 세계에 전파되여 병력으로 백성을 압박하야 정의인도를 멸시하든 구습관이 없서지고 공의를 잡아 인류사회에 정의인도가 서게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이 날을 영축함에 있어서 세계모-든 평화를사랑하는 민족들과 향응하야 만구동성으로 만세를 소리놉피 불릅시다.

  3. 민족신생의 국경일인 삼일절, 종소리마춰 삼가하라, 『민의』에서 각정당대표에 발첩, 국경일의 기념식, 동아일보 1946년 3월 1일자 1면.

    역사적 조선독립운동을 기념하야 3월 1일의 종로의『인정(人定)』종소리가 자유를 부르짓는 조선국민의 발로임에 비치어 대한국민대표 민주의원에서는 이 국경일기념식에 참가하라는 다음과 갓튼 초대장을 28일 각 중요정당 대표들에게 발송하엿다
    대한국민대표 민주의원은 귀하가 한 정당대표로서 3월1일 상오 9시 30분 종로보신각 압헤서 거행되는 제27회 독립선언기념 축하식에 광림하심을 영광으로 역입니다 조선 독립에 노력하는 최선의 과정에 대하야는 의견의 상이가 있으나 자유를 희망하는 점에 있어서는 일치할 것입니다 종로『인정』종은 여러 방면으로부터 칠 수 있으나 그 소리는 자유라는 소리 하나일 것입니다

    기념식순결정
    그리고 삼일절기념행사의 식순은 다음과 갓다
    이승만박사 사회밋테 오전 9시 40분에 개회 동10시 20분 폐회
    일、애국가일절
    일、개회사 이승만박사
    일、독립선언문 낭독 오세창씨
    일、축사 김구씨
    일、타종 각 정당대표 합동 타종 7회
    일、순국선열에 대한 묵상
    일、만세삼창에 선창 김규식박사 폐회

  4. 유서 기푼 덕수궁에서, 민주의원 초회의, 삼일기념일 압두고 중대사항 토의, 동아일보 1946년 2월 19일자 1면.

    지난 14일 주권국가로서 자주정부의 수립을 위한 세기적 거보가 남조선 대한 국민대표 민주의원의 성립을 보앗는데 국민의 주목은 의연 비상국민회의와 미군정과의 삼각관계에 집중되여 그 추이가 기대되든 바 십팔일 오전 십시부터 유서 기푼 덕수궁 석조전에서 국민대표 민주의원 제일차 회동이 있었다 회의 내용은 공개치 않음으로 추측키 어려우나 제일차 회동에서 부서결정이 상정될 것으로 예측되며 또 비상 국민회의와는 별개로 독자적인 발언권을 갓는 것은 거이 확정된 모양이다 이로써 민주의원의 성격이 점차 명확하여진다 즉 비상국민회의가 독립정부의 수립을 위한 자율적 집결체로서 하원과 같은 성격을 가젓음에 반하야 민주의원은 대외적으로 강력한 발언권과 책임을 담당한 상원과 같은 성격을 가진듯하다 여하간에 제일차 대회의에서 결정될 구체적인 성과를 촌도(忖度)키는 어려우나 3월 1일을 국경일로 제정하는 것 등 과도정권 수립에 적극적 내용이 토의될 듯하며 정부로서 활동이 기대되는 바이다 대외대내 성명서와 집무조례작성이 결의되여 그 위원으로 김준연 원세훈 안재홍 정인보 조완구 씨가 선정된 후 긴급동의로 미곡대책 위원으로 원세훈 안재홍 김도연 최익환 김려식 오씨가 선정되여 긴급대책을 수립하기로 되였고 그다음 3월 1일을 삼일절 국경일로 제정 결정 되였다.

  5. 상임·전문위원 선정, 민주의원 회의에 대한 공식발표, 동아일보 1946년 2월 20일자 1면.

    과도적 자주정권수립의 중대역할을 담당하고 지난 14일에 결성된 남조선 대한국민대표 민주의원은 지난 십팔일 덕수궁 석조전에서 력사적인 제일차 회의가 개최되였었다 그런데 십구일 군정당국을 통해서 발표된 공식성명에 의하면 동 의원회의는 상임위원장으로 리승만 박사, 상임부위원장으로 김구 주석과 김규식 박사를 선정하고 한국헌법의 기초 식량문제를연구하기 위한 각 전문위원을 다음과 같이 임명하였다한다
    일 조직조례작성위원 김준연 원세훈 안재홍 정인보 조완구 오씨
    일 미곡대책위원 원세훈 안재홍 전도연 최익환 김려식 오씨
    이어서 우리 민족독립운동 사상의 기념일인 삼월 일일을 영구히 기념하기 위한 삼일절 국경일 제정건이 통과되여 하지 중장에게 제의하였는데 그 제의를 승인하였다 이로써 우리 의원이 입법기능을 발휘한 제1보이며 미군정에도 특서할만한 제1항이라 하겟다

  6. 도시본위의 임시변법으로, 미자유반입을 용허, 삼일절 기념행사의 절차도 결정, 민주의원의공식성명, 동아일보 1946년 2월 21일자 1면.

    20일 오전 10시 덕수궁 석조전에서 민주의원 제2차 회의가 있었는데 삼일절 문제와 미가、식량、생활 필수품에 관한 대책문제가 의제로 상정되여 장시간 논의한 결과 다음과 같은 안의 결의를 보앗는데 대변자 김붕담 씨로부터 공식성명이 있었다.(중략) 삼일절 문제에 대하여서는 국경일인 삼일절을 국내 동포가 일치하여 대대적으로 거행하기를 결의함, 기념행사는 종각압 광장에서 자(自) 오전 구시 사십분 지(至) 십시삼십분, 사회에 이승만 박사, 식순은 애국가 일절, 개회사 이승만 박사, 독립선언문 랑독 오세창, 경축사 김구 주석, 타종 각정당 합동 순국 선열 묵상 만세삼창에 선창 김규식 박사 폐회

  7. 천진의 삼일절, 동아일보 1923년 3월 7일자 3면.

    선서문 삼천장을 인쇄 배포
    텬진(天津)에 재류하는 동포 오십 여명은 지나간 삼월일일에 독립 선언을 긔렴하기 위하야 삼일절(三一節) 긔념식을 거행하얏는대 당일에는 이에대한 선서문(宣誓文) 삼천매를 인쇄하야 가지고 자동차로 각국 조계에 배부하얏다더라(텬진)

  8. 각 경찰에서는 텰야 대경계, 삼일절과 각서 경계, 동아일보 1925년 3월 1일자 2면.

    오늘은 삼월일일이다! 의미 깁흔 이 날은 또 도라왓다 무슨 사건이나 잇지 아니할가 하야 시내 각 경찰서에서는 수일 전부터 특별경계를 하는 중인데 작일 정오경까지는 별로 특별한 사건이 발생되지 안엇스나 그냥 계속 경계중인데 탑동(塔洞)공원을 관내에둔 종로(鍾路)경찰서에서는 작일 밤부터 특별히 형사전부를 소집하야 비상경계를 식힌다더라

  9. 소작 간부 피착, 삼일절 경계인 듯?, 동아일보 1925년 3월 3일자 3면.

    전남지도 소작인 공조회 간부 라만성 외 륙인을 거월 이십칠일에 목포경찰서로 돌연 인치하야 목하 엄밀 취조중이라는데 동회(同會)에서는 삼월일일에 정기 총회를 개최하려고 한 것을 탐지한 경찰 당국에서는 삼일운동 기념일이라고 만일을 념려하야 경비선으로 본면(本面)을 출장하야 주요간부를 압송한듯하다고 (함평)

  10. 사학을 연구하고 귀국한 박승철 씨 담, 활민족(活民族), 우리나라 학생은 녜전보다 다소 줄어 삼일절과 국치긔념일에는 뎡긔집회, 독일 국민은 동아일보 1925년 6월 8일자 2면

    사학에 뜻을 두고 사년전에 고국을 떠나 독일 서울에 잇는 백림대학에서 사학을 연구하든 박승텰(朴勝喆)씨는 작년팔월에는 또 영국 론돈으로 가서 여러방면으로 사학에 관한 자료를수집하다가 지난 삼월 십륙일에 론돈을 떠나 다시 백림 파리 기타 등디를 둘러 재작륙일 일곱시에 경성역에 도착하야 방금 씨의 자택인 시내 관수동 칠번디에 류하는 중인데 씨는 왕방한 긔자를 향하야 말하되『내가 처음 독일에 건너 갓슬 때에는 우리학생들이 근륙십여명에 일으러섯는데 지금에는 불과 이십여명 밧게 안이됨니다 개중에는 녀학생도 한분잇고요 그리고 대개 우리학생들의 취학하는 방면은 경제학(經濟學)방면이 만코 기타는 텰학 의학 공학 등이지요 또 우리 학생들의 긔관으로는 고려학우회(高麗學友會)라는 것이 잇서서 년중뎡긔 총회 이외에 각금 삼일절 국치긔렴일에는 모임이 잇슴니다 그리고 학비로는 일개월에 약 이백오십원 가량이면 됨니다 몬저 말한 류학생의 감소도 물론이 학비 문뎨이겟지요 또 우리 학생들의 입학은 동양서 중학만 맛치고 간 사람이면 그 곳『독일』가서 대학텽강생이  될 수 잇스며 그러한 후에서 어학(語學)시험만 칠우어 합격되면 정과생이 될 수 잇슴니다』하고 써는 잠시 말머리를 돌이여 또 말하되『아모러나 독일은 산나라입듸다 물논 그 민족성의 독특한 것은 누구나 긍뎡하는 바이지만 그 민족이 살아서요 내가 처음 독일에 갓슬 때에는 백림시가에 걸인(乞人)이 상당히 보이드니 이번 둘너서 보니 별로 업서요(아즉 실직자는 만켓지만) 그리고 경제계도 차츰 활긔를 뎡하는 현상입니다』하더라

  11. 을축 중요일지, 동아일보 1926년 1월 1일자 22면.

    ◇삼월, 일일 독입선언기념 삼일절임으로 각서(各署) 경계가 엄중

  12. 삼월일일경계, 학생등 감시, 네반으로 나누어서 활동, 각서 비상경계 중, 동아일보 1933년 2월 28일자 2면.

    해마다 비상한 경게를 하야 오든 삼월 일일도 아프로 이틀밧게 남지 아니하야 부내의 각서에서는 수일 전부터 일제히 경게를 하는 중이다. 부내 종로서에는 동서고등게 형사대가 대를 나누어 가지고 관내 중등정도 이상의 공사립학교를 엄중히 경게하는 한편으로 관내 각방면에서 사회 각 단체를 엄중경게하는 중이라 한다. 각 학교에서의 경게는 형사대가 각 학교에 출동하야 상학과 하학시간에 각 학생들의 동정을 살피는 중이다. 그리고 형사대는 밤을 새워가며 각 방면으로 만일을 념려하야 내면수사를 엄밀히 하는 중이라 한다. 시내에서는 경긔도 경찰부를 위시하야 시내각서가 공동진세를 베플고 그 경게에 당하고 잇는데 경게 지점은 각 사회단체와 종교단체며 요시찰인과 요주의 인물 등을 중심으로 한다고 한다. 금년에는 시긔가 시긔임으로 례년보다 더욱 엄밀한 경게를 하기로 되엇다 한다.

  13. 삼월일일 경계 중, 불온문과 적서압수, 황금정 모 여관서 일명검거, 본정서 아연 긴장 활동, 동아일보 1935년 3월 2일자 2면.

    삼월일일 아침 시내 본정경찰서 고등게에서는 아연 긴장하야 황금정 삼정목 모일본여관을 수색하고 불온문서와 비밀출판의 좌익 서적 륙칠 권을 발견하는 동시에 투숙중이든 조선인 일명을 인치하야 방금 엄중한 취조를 가하고 잇는 중인데 때가 때인 만큼 모종의 비밀사건의 정체가 발로 될는지 자못 주목을 끄는 중이라 한다.

  14. 민족의 봉화! 피로 “독립의씨” 뿌린날 28년 전 “이날은왓다” 조국광복을 완수하자 , 역력·반세기의 투쟁, 감회도 새롭다 3월1일, 동아일보 1946년 3월 1일자 2면.

    기미년 3월 초하로-피로 독립의 씨를 뿌리든 이날을 마지하야 우리는 다시금 감분한다 절절이 원룽한 애국의 지정에 목노아 우럿든 민족의 통분、악착하고 무도한 애정에 찌키우고 발힌지 몃성상이 있든고. 삼천만겨레가 태양도 없는 캄캄한 밤 거리에서『가시』의 길을 거르며、내 나라를 그리워하는 피눈물을 얼마나 뿌렷스리. 그러나 밝었다! 28년 전의 이날은 밝었다 얼마나 기다렷든가. 민족의 봉화가 삼천리 근역에 놉히뜨고 조국 광복의 만세소리가 해방된 대지우에 울리고 있다 오늘이 3월초하로. 오! 우리 동포들이여 아는가 이날은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에 우리가 만흔 피를 흘렷든 3월1일이다 고요히 귀를 기우려 드러보아라 피투성이가 된 혁명투사들이 독립만세를 부르짓든 우렁찬 그 소리가 돌리지안느냐. 기뿌다 3월1일!해내 해외에서 해방의 수레를 타고 도라온 혁명선배들이 함께 뭉처 측하하는 이 날의 광영을 무엇으로 표현하랴-태극기 휘날리는 보신각에서 울려나오는 자유의 종 민족의 해방을 고하는『인경』소리를 드르며 한마음 한뜻으로 하루빨리 조국의 광복을 완수하자

  15. 인류평등의 거화·민족자존의 대헌장, 독립선언서, 동아일보 1946년 2월 28일자 2면

    오등은 자에 아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야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차로써 자손만대에 고하야 민족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장하야 차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성충을 합하야 차를 포명함이며 민족의 항구여일한 자유발전을 위하야 차를 주장함이며 인류적 양심의 발로에 기인한 [ 세계개조의 대기운에 순응병진하기 위하야 차를 제기함이니, 시-천의 명명이며, 시대의 대세며, 전인류 공존동생권의 정당한 발동이라, 천하하물이던지 차를 저지억제치 못할지니라.
    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의 희생을 작하야 유사이래 누천년에 처음으로 이민족 겸제의 통고를 상한 지금에 십 년을 과한지라. 아 생존권의 박상됨이 무릇 기하며, 심령상 발전의 장애됨이 무릇 기하며, 민족적 존영의 훼손됨이 무릇 기하며, 신예와 독창으로써 세계문화의 대조류에 기여보비할 기연을 유실함이 무릇 기하뇨.

    희라, 구래의 억울을 선창하려 하면, 시하의 고통을 파탈하려 하면, 장래의 협위를 삼제하려 하면, 민족적 양심과 국가적 염의의 압축소잔을 흥분신장하려 하면, 각개 인격의 정당한 발달을 수하려 하면, 가련 자제에게 고치적 재산을 유여치 안이하려 하면, 자자손손의 영구 완전한 경복을 도영하려 하면, 최대 급무가 민족적 독립을 확실케 함이니, 이천만 각개가 인마다 방촌의 인을 회하고, 인류통성과 시대양심이 정의의 군과 인도의 간과로써 호원하는 금일, 오인은 진하야 취하매 하강을 좌치 못하랴. 퇴하야 작하매 하지를 전치 못하랴.

    병자수호조규 이래 시시종종의 금석맹약을 식하얏다 하야 일본의 무신을 죄하려 안이 하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아 세종세업을-괄호부분 신문 지면에서 누락-인용자 주] 식민지시하고, 아 문화민족을 토매인우하야 한갓 정복자의 쾌를 탐할 뿐이요 아의 구원한 사회기초 탁락한 민족심리를 무시한다하야 일본의 소의함을 책하려 아니하노라 자기를 책려하기에 급한 오인은 타의 원우(怨尤)를 가치 못하노라. 현재를 도무하기에 급한 오인은 숙석의 징변을 가치 못하노라 금일 오인의 소임은 다만 자기의 건설이 유할 뿐이요 결코 타의 파괴에 재치 아니하노라 엄숙한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가의 신운명을 개척함이요 결코 구원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타를 질축배척함이 안이로다 구사상 구세력에 기미된 일본 위정가의 공명적 희생이 된 부자연 우 불합리한 착오상태를 개선광정하야 자연 우 합리한 정경대원으로 귀환케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적 요구로서 출치 아니한 양국 합병의 결과가 필경 고식위압과 차별적 불평과 통계 수자상 허식의 하에서 이해상반한 양 민족간에 영원히 화동할 수 업는 원구를 거익심조하는 금래실적을 관하라 용명과감으로써 구오를 곽정하고 진정한 이해와 동정에 기본한 우호적 신국면을 타개함이 피차간 원화소복하는 첩경임을 명지할 것 안인가 또 이천만 함관축원의 민을 위력으로써 구속함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소이가 안일 뿐 아니라 차로 인하야 동양 안위의 주축인 사억 지나인의 일본에 대한 위구와 시의를 갈사록 농후케 하야 그결과로 동양 전국이 공도동망의 비운을 초치할 것이 명하니 금일 오인의 조선독립은 조선인으로 하야금 정당한 생영을 수케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야금 사로로서 출하야 동양지지자인 중책을 전케 하는 것이며 지나로 하야금 몽매에도 면하지 못하는 불안공포로서 탈출케하는 것이며 또 동양평화로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평화 인류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엇지 구구한 감정상 문제리요
    아아 신천지가 안전에 어데까지던지 광명정대하게 하라
    조선건국 사천이백오십이년 삼월 일일
    조선민족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룡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라룡환 라인협 양전백 량한묵 류여대 리갑성 이명용 이승훈 이용훈 이종일 임례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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