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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속의 근대 100景]<93>시와 시인

Posted by 신이 On 2월 - 24 - 2010

김소월-한용운 등
민족정서 담은 작품
현대시 면모 갖춰


 
《‘우리 시단에 발표되는 대개의 시가는 암만하여도 조선의 사상과 감정을 배경한 것이 아니고 엇지 말하면 구두를 신고 갓을 쓴 듯한…작품입니다.…남의 작품을 모방하야 자기의 작품을 만드랴는 작자의 희극다운 비극을 설어하지 안을 수가 업슴니다’

(김억, ‘조선심을 배경삼아: 시단의 신년을 맞으며’ )

―동아일보 1924년 1월 1일자》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와서 머리맡에 찬물을 쏴- 퍼붓고는/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북청 물장수//물에 젖은 꿈이/북청 물장수를 부르면/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진다//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북청 물장수’

동아일보 1924년 10월 13일자에 실린 파인 김동환의 시 ‘북청 물장수’다. 소리 내어 시를 읽다 보면 서늘한 새벽녘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요즘 보아도 세련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시다. 김억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 한국 시는 현대시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갔다. 당시 시단의 주된 관심사는 민족 정서의 표현이었다. 32세의 나이로 요절한 김소월의 민요적 서정시가 가장 대표적이다.

민족 정서는 당대의 현실, 민족의 역사와 무관할 수 없었다. 역사를 통해 현실을 돌파하려는 것이었다. 역사를 만나는 방식은 다양했다. 김소월이 내면의 정서와 만났다면 1925년 결성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카프)은 사회주의 시각으로 시와 세상을 연결했다. 권환 임화 박세영 안막 등이 대표적인 카프 시인이었다. 카프 발기인으로 참여했던 이상화는 1926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통해 당당히 일제와 맞섰다.

만해 한용운은 불교의 정신과 철학적 사유를 통해 역사를 만났다. 만해는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의 문구를 수정하고 공약 3장을 추가했으며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는 등 시종 철학적이고 역사적인 삶을 살았다. 그의 대표작은 1926년 발간한 ‘님의 침묵’. 이 시집에 대해 동아일보는 1926년 5월 27일자에서 ‘고은 솜씨와 경건한 사상으로 써온 산문시집’이라고 평했다.

이 시집에 수록된 ‘나룻배와 행인’의 한 대목.

‘나는 나룻배/당신은 행인//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읍니다./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상징과 시대정신의 조화가 돋보인다. 한국 근대 자유시의 성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심훈은 좀 더 직설적으로 민족정신을 담아냈다. 1930년 작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3년 뒤 심훈은 이 시를 출판하려고 검열 신청을 냈다가 삭제당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이 같은 토대가 있었기에 이육사 김영랑 윤동주 정지용 김기림 백석 등과 같은 1930년대 시인들이 활약할 수 있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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