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재와 아울러 구원을 씻고 새로운 선린(善隣)을 찾아 재일교포의 법적지위문제, 연해(捐害)배상문제 등에 대한 매듭을 짓고자 1952년 2월 15일 일본 동경에서 첫번째 한일회담이 열렸다.
한일본회담 수(遂)개막
국적선박문제토의
영해(領海)선언에 일(日)태도 주목
【동경15일발공동=대한】한일양국의 본회담은 금15일 오후2시반부터 외무성에서 개최되는바 동회담에서는 주로 한일양국간의 우호조약체결 재산청구권의처리 및 어업등제문제에 대해서 토의하기로 되어있다 또한 동회담의 일본측 전권대표는 일본외무성고문 송본준 일씨(一氏)이고 한국측으로서는 주미대사 양우찬씨인바 동대사는 오는18일 일본에 도착하기로 되어있음으로 그때까지 주일대표부의 김공사가 대리역을 보기로 되어있다 우선 오늘 회담에서는 일본측의 송본전권(松本全權) 및 한국측 김공사(金公使)로부터 개회사가 있은후 회의운영방법을 토의하기로 되어있다 또한 금반본회담에서는 작년부터 협의되고있든 한국일본간의 국적변경 및 선박문제는 상금(尙今)결론을 보지못하고 있음으로 금반회담에 이관하여 계속토의하기로 되어있다
【동경15일발RP=시사】15일부터 드디어 한일회담이 재개되는데 동회담은 3월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그런데 한일간에서 문제로 되어있는 중요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국적문제인데 현재 일본거류한국인은 54만명이다 이사람들은 평화조약효력발생과 동시에 일본의 국적을 이탈하여 한국국적을 획득하게된다 그리고 제2차대전전 일본에 입국한자로서 현재 재일한국대표부가 발생하는 증명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일본에 영주할수 있는것이다 제2의 문제는 한국인을 일본인과 동등하게 대우하라는것을 한국측이 희망하고 있는것이다
일(日)항의를 일축
연해주권선포
【동경14일발 로이타=합동】일본외무성은 14일 한반도의 연해에 주권을 선포한 대한민국의 조치에 대한 앞서의 일본정부의 항의를 최근 부산에서 일추하여 왔음으로 승인하였다 이승만대통령은 2월12일자의 각서에서 1월29일자의 일본항의를 거부하였는데 일본외무성은 이승만대통령의 각서를 13일 접수하였다고 한다 이승만대통령은 일본의 어선들이 승인된 수역밖에서 어로에 종사하고 있음을 맹열히 비난하는한편 영해문제는 15일 재개되는 한일협상에서 항의하는길을 열어놓았다 그런데 한일양국대표들은 15일 한일간의 외교문제와 재일한교의 지위등을 포함하는 여러문제에 관하여 새로운 진전을 얻고저 재차노력할 것이다
첫날 회의부터 한국과 일본은 대립했다. 동아일보는 1952년 2월 17일자 1면에 ‘초일(初日)부터 대립(對立)’이란 기사로 그 분위기를 전했다. 특파원 기사가 아닌 공동 대한 등 통신기사였다.
한일 정식 회담 의제 논의
[동경 16일 발 공동 대한] 한일 양국간의 본회담은 15일 오후2시부터 일본 외무성에서 개최되었는 바 한국측 수석대표로는 김용식 주일 공사가 참석하였으며 일본측에서는 외무성 고문 송본준일(松本준一)씨가 출석하였다. 개회식에서 양국 수석대표의 인사가 있은 후 제일차 정식회의를 개최하고 금반 회의의 의제를 결정하는 문제에 대해서 협의하였다….
“첨예화한 양민족간의 감정대립 특히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측의 우월감이 밑바닥에 깔린 망언 등이 튀어나와 이후 회담은 수차례의 중단을 겪으며 13년을 끌었다. ” (동아의 지면반세기, 동아일보사, 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