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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 100년, 東友 100인 <88> 박권상

Posted by 신이 On 3월 - 22 - 2022

민족대변 東亞  100년, 자랑스런 東友  100인  (동우회보 제83호)

 

 

 

 

 

신군부 검열에 맞서 ‘無社說’ 저항

 

 

 

 

 

 

박권상(朴權相, 1929∼2014)

 

박권상은 동아일보에서 논설위원, 편집국장, 런던특파원, 통일연구소장, 편집인 겸 논설주간, 비상임 고문, 일민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지냈다. 그는 전후 1세대 기자의 선두주자, 또는 신문·방송·통신·잡지·학계를 누빈 종합언론인으로 불린다.

전주 출신인 그는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52년 합동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해 세계통신 정치부장,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1962년 논설위원으로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동아일보에 입사하기 전 관훈클럽과 한국신문학회(현 언론학회)를 만드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본인은 1969년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서 박정희 대통령의 삼선개헌을 반대한 사설과 1980년 논설주간으로서 신군부가 발표한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을 다룬 글(계엄당국의 검열로 미게재)을 가장 쓰기 어려웠던 사설로 꼽는다. 1973년, 2년 4개월간의 편집국장직을 내놓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런던특파원으로 떠난 것도 박정희 정권에 밉보인 그를 보호하려는 김상만 회장의 배려였다. 1980년 5월 16일부터 5일간은 신군부의 검열에 맞서 ‘무사설’로 저항하기도 했다. 그의 동아일보 시절은 그만큼 격동기였다.

1980년 해직당한 그는 1981년부터 1986년까지 미국, 영국, 일본, 대만의 싱크탱크와 대학연구소를 전전했다. 그때 쌓은 지식과 경험은 그 후 국제적 감각이 담긴 칼럼 작성, 대학 강의, 저서 출간의 밑거름이 됐다.

그는 1988년 위암장지연기념사업회를 설립해 초대 이사장이 됐고, 1989년에는 ‘시사저널’을 창간하고 편집인 겸 주필로 일했다. 1991년에는 3명의 다른 중견 필진과 한국 최초로 ‘코리아신디케이트’를 만들어 지방신문에 칼럼을 공급했다. 그해 인촌상(언론부문)을 수상했다. 1998년부터 5년간 KBS 사장을 지낸 것이 언론인으로서 그가 맡은 마지막 직책이었다.

 

심규선 (동우회보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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