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동아미디어그룹 공식 블로그

東亞 100년, 東友 100인 <71> 이동욱

Posted by 신이 On 5월 - 7 - 2021

민족대변 東亞  100년, 자랑스런 東友  100인  (동우회보 제78호)

 

 

 

 

 

 

 

6·25때 본보 마지막 호외 발행후 납북됐다가 탈출

 

 

 

 

 

 

 

이동욱(李東旭, 1917∼2008)

 

  이동욱은 1917년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났다. 1941년 일본 와세다대 정경학부를 졸업하고 1947년 동아일보에 기자로 입사해 편집국 조사부장, 논설위원, 이사, 주필 등을 지냈고, 부사장과 사장을 거쳐 1981년부터 1983년까지 회장으로 재직했다. 이후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동아꿈나무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그는 대학 선배인 설산 장덕수 선생의 주선으로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입사 3년째인 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서울에 남아 동아일보의 마지막 호외를 발행했던 몇몇 기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피난 갈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결국 피랍돼 압록강까지 끌려갔다가 극적으로 탈출해 복간호 제작에 참여한다.

  1965년에는 상임정책위원으로서 스타일북 제작과 기획면 강화 등을 주도했다. 1977년 사장에 취임해 <주간 스포츠동아>를 창간하고, 동아방송 지방국과 TV국 설치 허가를 요청하는 등 사세 확장에도 힘썼다.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보안사 지하실에 끌려가 동아방송 포기각서에 서명을 강요당하며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이 회장은 냉정한 현실진단과 앞을 내다보는 경제논설로도 유명했다. 특히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경고한 칼럼이 화제를 모았다. 1997년 9월 11일 ‘외환위기 대비하자’라는 기고를 통해 “주식이 오르고 환율이 치솟는 한국 상황이 1994년 멕시코나 1997년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의 외환위기와 유사하다. 한국도 기아사태 해법 여하에 따라서는 주가폭락 환율폭등이라는 동남아국가들의 도식에 빠져들지 않으리라고 장담하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평기자로 입사해 회장까지 오른 경력이 눈에 띈다. 또 1983년 동아일보 회장에서 물러난 뒤 정계 산업계 등 여러 곳에서 자리를 제의했지만 모두 뿌리치고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며 조용히 생활하다 타계한 처신도 돋보인다.

 

 

– 글 · 심규선 (동우회보 편집주간)

 

댓글 없음 »

No comments yet.

RSS feed for comments on this post. TrackBack URL

Leave a comment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