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변 東亞 100년, 자랑스런 東友 100인 (동우회보 제77호)
평양지국 사회부기자 출신…조선신문학원 설립도
곽복산(郭福山, 1911∼1970)
곽복산은 언론 현장과 언론인 교육 분야를 오고 간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굳이 따지자면 언론 현장보다 교육분야에서 더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동아일보 지방기자로 일하며 독학을 해 스무살 때 와세다대 정경과에 들어간다. 하지만 조치대(소피아대)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신문학과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대학까지 옮겨 졸업한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곽복산은 1935년부터 5년간 동아일보 평양지국 사회부 기자와 경성부청(서울시청) 담당 기자를 지낸다. 이후 매일신보 기자를 거쳐 1945년 해방 이후 재입사해 1년 조금 넘게 사회부장 겸 논설위원으로 일한다. 1947년 퇴사해 ‘조선신문학원’을 설립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언론인 양성 및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제주신문 주필을 잠시 지내고 1952년 3월 동아일보에 다시 들어와 두 달 정도 편집국장 겸 논설위원을 지낸다.
‘조선신문학원’은 1947년 4월 중앙여고의 한 교실을 빌려 문을 열었고, 1967년 4월 문을 닫을 때까지(장소는 이곳저곳으로 바뀌었다) 15기에 걸쳐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6개월 과정의 신문학원 1기는 대졸자와 대학 4년을 대상으로 30명 모집에 170명이 몰려들었다. 4개월간 매일 4시간씩 신문학과 시사영어, 인문학과 사회과학 수업을 했고, 2개월은 신문사에서 현장실습을 했다.
그는 1955년 홍익대에 처음으로 신문학과가 생기자 주임교수가 됐고, 1958년에는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주임교수로 부임했다. 그는 1957년 11월 문교부가 승인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학교수였다. 1959년에는 한국 신문학회(현 한국 언론학회)를 창립해 10년 동안 회장을 맡았다. ‘신문학개론’ 등 두 권의 저서와 ‘여론과 신문의 자유’ ‘한국신문의 구조 및 과제’ 등 16편의 우수한 논문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