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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 100년, 東友 100인 <43> 신언준

Posted by 신이 On 10월 - 6 - 2020

민족대변 東亞  100년, 자랑스런 東友  100인  (동우회보 제69호) 

항일민족의식으로 무장한 해외특파원

 

 

상해임정 유일한 특파원 金九도와…

魯迅 비밀인터뷰도

 

 

 

 

 

 

<신언준(隱巖 申彦俊), 1904∼1938>

 

1923년 19세의 청년 신언준은 중국으로 망명, 항주의 영문전수학교에서 공부한 뒤, 오송 국립정치대학과 동오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간다. 이승훈이 평북 정주에 세운 오산학교를 졸업하면서 국외로 망명하여 선진학문을 익히고 민족독립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 것이다. 민족의식에 불탔던 이승훈은 대학에 재학하면서 진보적 청년독립운동단체인 청년동맹회를 발기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할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어서 주요섭 등과 함께 상해지역 학생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추진하는데 앞장섰다. 또 임시정부 산하 대한교민단에서 운영하던 상해 인성학교의 교사로 초빙돼 독립운동가 및 교민자녀들의 민족교육을 담당하기도 했다.

1927년에는 안창호의 권유로 흥사단 원동위원부에 입단하고, 안창호를 도와 독립운동 문건작성, 통역, 강연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독립운동의 저변을 넓혀갔다.

상해에서의 이런 활동을 발판으로 1927년부터 29년까지 중국의 중앙일보(영자지) 논설위원과 세계 신문 아주부장 등으로 근무하면서 세계열강들의 동향과 동아시아정책을 분석, 보도하기도 했다. 이때 쌓은 중국 언론인들과의 친분이 나중에 독립운동에 중국의 지원을 이끌어내는데 큰 힘이 된다. 이후 ‘독립 운동가들의 추천으로’ 동아일보 상해·남경 특파원이 됐다.

아들인 고 신일철 고대철학과 교수의 증언이 당시 신언준의 특파원 시절을 잘 말해준다. “상해 임정에 특파원을 둔 것은 동아일보뿐이었다. 아버님은 상해·남경 특파원으로 1929년부터 36년까지 일하셨다. 동아일보가 상해임정에 특파원을 보냈다고 하면 난리를 칠 테니까 상해·남경 통신원으로 두었다가 특파원으로 임명했다. 김구 선생을 도왔다. 일본의 비밀자료를 찾아보니 이봉창 의사 폭탄거사 전 김구 선생과의 선서식 사진을 찍어서 돌린 자가 동아일보 신언준이라고 나온다. 만보산사건 때도 동아일보는 신 특파원을 보내 중국관계자를 인터뷰하고, 이 사건이 한중간 이간질을 노린 (일제의 공작적) 측면이 있으니 말려들지 말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임정 사무실, 도산 선생과 아버님의 거처가 거의 붙어 있었다고 한다.”

신언준의 대표적 기사 중 하나가 중국의 대문호 노신 선생과의 인터뷰다. 중국전역에 내린 수배령으로 잠적한 노신의 비밀거처를 알아내 마침내 인터뷰를 성사, 신동아 1934년 4월호에 게재했다.

 

 – 글 황의봉(동우회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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