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동아미디어그룹 공식 블로그

東亞 100년, 東友 100인 <57> 변영로

Posted by 신이 On 10월 - 6 - 2020

민족대변 東亞  100년, 자랑스런 東友  100인  (동우회보 제73호) 

잡지기자 3인 ‘손기정 다리’만 게재…일장기 말소 ‘묘수’

 

 

 

신가정 책임…

일목요연하게 빨리 쓰는 사내외 마당발

 

 

 

 

 

 

<변영로(卞榮魯, 1897~1961)>

 

이은상이 1935년 4월 퇴사하고 후임으로 정치부에 있던 수주 변영로가 ‘신가정’의 편집책임자가 됐다. 수주는 신가정의 편집방침을 이렇게 정했다. “너무 취미기사가 적다, 너무 점잖다… 이런 것들이 신가정에 의한 흉이라면 흉이다. 그러나 그러함을 큰 자랑으로 볼 이유도 있다. 요란하게 분칠하지 말고 수수한 여자 같은 책을 만들자.”

변영로는 사내외의 소식에 매우 빠른 정보통이었다. 글도 군더더기 없이 빨리 썼다. 학예부장을 지냈던 서항석은 수주에게서 간결하게 글 쓰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일장기 말소사건 때 신가정은 기발한 사진을 실었다. ‘세계를 이긴 이 다리’라는 제목으로 손기정 선수의 상반신을 잘라버리고, 두 다리만 확대해 게재한 것이다. 일본 형사는 수주에게 “당신은 참으로 지능적이요. 일장기를 지워버리는 것은 무모한 짓이니까 다리만 내면 그만이란 생각으로 그리한 것이 아니요?”하며 기세등등하게 몰아붙였다. 수주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손 선수가 무엇으로 세계를 제패하였겠소? 흉회(가슴 속에 품은 생각)가 활달하니 흉회로 세계를 제패하였겠소? 이것저것 다 아니라면 결국은 그의 무쇠 같은 두 다리가 세계를 제패한 것이 아니겠소? 그러니 그 다리만을 확대 게재한 것이오. 그리고 잘라버린 사진은 일장기가 아니고 양정 고보의 양(養)자였소.” 그는 휴지통에서 양자 마크가 들어간 상반신 사진 조각을 들이밀었다. 형사는 “미안하였소” 하며 돌아갔다.

변영로의 큰형 변영만은 대학자이고, 외무부 장관과 총리 서리를 지낸 변영태는 둘째형이다. 한문과 영문을 아울러 통한다는 변씨 3형제를 한국의 삼절(三絶)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수주는 해방 후 성균관대학 교수와 서울신문 이사를 역임했다. 1954년 대한공론사 이사장에 취임했고, 한국펜클럽 회장을 지냈다. 1961년 별세해 경기도 부천군 오정면 선영에 안장됐다.

 

 – 글 · 김일동(동우회 상임이사)

 

 

댓글 없음 »

No comments yet.

RSS feed for comments on this post. TrackBack URL

Leave a comment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