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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 100년, 東友 100인 <39> 정현웅

Posted by 신이 On 10월 - 5 - 2020

민족대변 東亞  100년, 자랑스런 東友  100인  (동우회보 제68호)

 

 

미술기자 전성시대 주축…

신동아에 기사도 쓴 학구파

 

 

 

 

 

 

 

<정현웅(鄭玄雄), 1910∼1976>

 

정현웅은 이상범 이마동과 함께 1930년대 중반 동아일보의 삽화를 담당한 ‘화가 트리오’의 일원으로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으나 6·25전쟁 때 월북,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냈다.

경성제2고보에 재학중이던 1927년 제6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작품 ‘고성’(古城)으로 입선한 이래 총 18점의 작품이 특선·입선을 함으로써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았다.

제2고보 졸업 후 일본 도쿄의 가와바다미술학교에 입학했으나 경제사정과 건강문제로 6개월만에 귀국했다.

정현웅의 동아일보 입사는 청전 이상범이 입원하게 되자 그 대타로 나섰다가 인정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1935년 9월이었다.

이무영의 장편소설 ‘먼동이 틀 때’ 45회분 삽화로 데뷔를 한 정현웅은 이어서 장혁주의 장편 ‘여명기’, 김말봉의 장편 ‘밀림’의 삽화를 일장기말소사건으로 정간되기 직전까지 그렸다.

그는 만화도 그렸는데 1936년 신년특집으로 루즈벨트, 히틀러, 장개석 등 국제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을 캐리커처로 그려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일장기말소사건으로 인해 동아일보를 떠난 정현웅은 여러 신문 잡지의 삽화와 표지화를 그리는 등 당대의 대표적인 삽화가로 활약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북 디자인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당시 많은 문인들의 책 장정을 그가 도맡아서 했다는 점이다.

1940년대 이광수 소설 ‘사랑’, 이효석 단편집 ‘황제’, 이무영 창작집 ‘흙의 노예’, 박태원의 ‘삼국지’ 등이 모두 정현웅의 손을 거쳐 나왔다. 해방 후에도 시사교양지 ‘신천지’의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윤석중 동요집 ‘굴렁쇠’, 한하운 시집 ‘한하운 시초’, 황순원 소설 ‘별과 같이 살다’ 등의 책 장정을 도맡았다.

정현웅의 인생행로는 6·25전쟁으로 인해 일거에 대전환을 하게 된다.

후퇴하는 인민군을 따라 월북한 것이다. 1946년 조선미술동맹에 가입해 사업주장을 역임했던 그는 1950년 인민군 치하에서 남조선미술가동맹 서기장이 되었고, 결국 월북을 택하고 말았다.

정현웅은 북한에서도 미술분야에서 활동했는데, 특히 안악 제1∼3호 고분과 강서고분 공민왕릉 등의 고분벽화를 모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6년 폐암으로 사망할 때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소속이었다.

 

  – 글 황의봉(동우회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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