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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 100년, 東友 100인 – 안석주

Posted by 신이 On 3월 - 5 - 2020

민족대변 東亞  100년, 자랑스런 東友  100인  (동우회보 제68호)      

 

 

국내 첫 情事장면 삽화 시도 …

‘우리의 소원은 통일’ 작사

 

 

 

 

 

<안석주(夕影 安碩柱), 1901∼1950>

 

만화가, 삽화가, 시나리오작가, 영화감독, 배우, 작사가. 석영 안석주만큼 다방면에 걸쳐 예술적 재능을 발휘한 인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50년이라는 짧은 생애에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1901년 서울에서 태어나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도쿄 혼고양화 연구소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안석주가 처음 대중에게 선보인 작품은 동아일보 연재소설인  나도향의 ‘환희(幻.)’ 삽화였다. 일본에서 귀국해 모교인 휘문고보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던 1922년 11월의 일이다. ‘환희’ 삽화를 그리면서 안석주는 남자가 여자의 옷을 벗기려는 장면을 그렸는데, 이는 국내 최초의 ‘정사장면 신문삽화’로 꼽힌다. 안석주는 같은해 극단 예술좌 공연에 출연하고, 극단 토월회 창립회원으로 가입해 신극운동에 참여했다. 또 백조(白潮)의 문학동인이 되기도 했다. 1923년에는 박영희 김복진 등이 주도한 경향파 문학작가 모임인 파스큘라에 참가하였고, 이어서 1925년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결성에도 참여했다.

 

나도향 소설의 삽화로 동아와 인연을 맺은 안석주는 1924년 11월 동아일보에 입사, 다음해 7월까지 재직하게 된다. 삽화를 그리던 심산 노수현이 조선일보로 떠난 직후였다. 이광수의 연재소설 ‘재생’(再生)의 삽화를 그리는 것으로 신문삽화가로 명성을 쌓기 시작한 안석주는 4칸짜리 연재만화 ‘허풍선이 모험기담’으로 인기를 끌었다. 밭 전(田)자 4칸에 주인공 허풍선이 세계일주를 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구성한 것으로 41회에 걸쳐 연재했다.

1935년 자신이 쓴 시나리오 ‘춘풍’이 영화화되면서 안석주는 영화계에 투신하게 된다. 1937년에는 자신이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까지 맡아 영화 ‘심청전’을 만들었는데, 1925년작 심청전이 무성영화로 흥행에 실패한 데 반해 석영이 만든 발성영화 심청전은 단성사에서 개봉돼 흥행에 성공을 거뒀다.

1947년 안석영은 서울중앙방송국의 삼일절 기념 어린이노래극 ‘우리의 소원은 독립’ 주제가를 작사했는데, 이에 당시 서울대 음대에 재학중이던 아들 안병원이 곡을 붙였다. 이 노래는 1950년 교과서에 실리면서 문교부의 권유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불려지게 됐다. 석영은 문예방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일제말기 징병권유 영화를 연출하는 등 일제 침략전쟁에 동원되는 어두운 그림자를 남기기도 했다.

 

 

 

  – 글 황의봉(동우회 편집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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