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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 100년, 東友 100인 – 노수현

Posted by 신이 On 1월 - 10 - 2020

민족대변 東亞  100년, 자랑스런 東友  100인  (동우회보 제68호)             

 

창간호 7면 축화 게재… 

한국 첫 신문연재 4칸만화 그려

 

 

 

 

 

<노수현(沁山 盧壽鉉), 1899∼1978>

 

서울대 미대 교수와 예술원 회원을 지낸 대표적 한국화가 심산 노수현이 젊은 시절 그의 예술적 재능을 발휘한 무대는 바로 동아일보 지면이었다. 창간호 7면에 축화를 게재한 노수현은 1923년 6월 창간동인 고희동의 추천으로 동아일보에 미술기자로 입사했다. 그가 입사 후 그린 첫 작품은 이희철의 소설 ‘읍혈조’(泣血鳥) 삽화였다. 이어서 유운인의 번역소설 ‘미인의 한’ 삽화를 그리던 중 1924년 9월 퇴사했다. 당시 이상협 편집국장 등 많은 사원들이 조선일보로 옮겨가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의 일이다. 조선일보에 간 노수현은 한국 최초의 신문연재세로 4칸만화인 ‘멍텅구리 헛물켜기’ 시리즈로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노수현은 1929년 장편소설 ‘황원행’(荒原行)에 삽화를 그리면서 다시 동아일보 지면에 등장한다.  그후 일장기말소사건으로 청전 이상범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동아일보를 떠나게 되자 심산은 1937년 동아일보에 재입사했다. 재입사 후 현진건의 ‘무영탑’을 비롯해 이태준의 ‘딸 삼형제’, 한설야의 ‘마음의 향촌’, 유진오의 ‘화상보’ 등 연재소설에 삽화를 그렸다.

 

황해도 곡산 출생으로 3·1운동 당시 48인중 한 사람인 노헌용의 손자인 노수현은 보성고보를 다니다 중퇴하고, 근대적 성격을 띤 최초의 미술교육기관이라 할 서화미술회에 들어가 화가 수업을 받았다. 심전(沁田) 안중식의 제자가 된 노수현은 동료이자 나중에 동아일보 미술기자가 된 청전 이상범과 평생의 동지가 된다. 스승 심전은자신의 아호 가운데 ‘沁’은 심산에게, ‘田’은 청전에게 물려준다. 한국화의 대가가 된 두 사람은 전생애를 함께 교류하면서 크게 다툰 적도 없이 그림에 대해 논하고, 때로는 술을 들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다고 한다.

 

화가로서의 노수현은 전통적인 산수화에서 탈피해 독자적인 회화의 세계를 열어갔다. 그가 표현한 산은 실제의 산이라기 보다 그의 머릿속에서 새로이 만들어진 관념의 산이었다.  1941년 잡지 ‘신시대’에 일제의 총동원체제에 대한 호응을 내용으로 하는 중편만화 ‘멍텅구리를’ 연재하기도 했던 심산은 해방 후 서울대 미대 교수로 후진양성에 전념하는 한편,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했다.

 

 

                                                                                               글 황의봉(동우회 편집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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