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변 東亞 100년, 자랑스런 東友 100인 (동우회보 제67호)
정치부 기자 활약 …대표작 ‘레디메이드
인생’ 등 신동아 발표– 채만식
<채만식(白菱 蔡萬植, 1902∼1950)>
1925년 7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활약한 백릉 채만식의 기명기사는 어찌된 셈인지 지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가 동아에 입사하게 된 전후사정도 기록이 드물다. 일본 와세다대 부속제일고등학원 문과를 중퇴하고 귀국해 동아일보에 입사했다는 정도만 전해진다. 오히려 퇴사 이후 그의 다양한 글들이 동아일보나 신동아 등의 지면에서 눈에 띈다. 채만식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은 1934년 신동아 5∼7월호를 통해 발표됐고, 단편 ‘치숙(痴叔)’은 동아일보 1938년 3월 7∼14일자에 실렸다. 이밖에도 문학평론, 수필, 꽁트, 기행문, 신간서평 등 다양한 글을 신문에 기고했고, 단편 ‘부촌’과 희곡 ‘인텔리와 빈대떡’ 등을 신동아에 게재했다.
‘레디메이드 인생’이나 ‘탁류’ 등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보면 하나같이 당시의 암울한 현실이 배경이다. 식민지 농민들의 궁핍, 지식인의 고뇌와 좌절, 도시하층민의 몰락, 광복 후의 혼란상 등을 실감나게 그리면서 그 근저에 놓여 있는 역사적·사회적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가 택한 소재와 작중인물은 다양하였지만 일관된 관점은 그들이 시대와 어떤 관련을 맺고 어떻게 변모하는가 하는 점, 그리고 시대의 정의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채만식과 비슷한 시기에 동아일보에서 문인이자 기자로 활동했던 유광렬이 채만식에 대해 “그는 자유주의를 몹시 공격하고 프롤레타리아의 우월성을 강조하여…(중략)…그러나 그의 성격으로 보아 공산당이 될 수는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개인간의 우정은 여상(如常)하였다”고 회고한 데서도 그가 강한 사회의식의 소유자였으나 계급투쟁노선에 가담하지는 않았던 그의 족적을 짐작할 수 있다.
채만식은 48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15편의 중·장편소설과 70여 편의 단편을 비롯한 희곡 시나리오 문학평론 수필 등 시를 제외한 전 장르에서 당시 어떤 작가보다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 역시 동시대 여러 문인들처럼 글과 강연 등으로 인해 뒷날 친일시비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러나 별로 튀는 행동이 없었으며 광복 후 ‘민족의 죄인’이라는 중편소설을 발표, 자신의 친일행적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글 황의봉(동우회 편집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