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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 100년, 東友 100인 <31> 이상범

Posted by 신이 On 5월 - 28 - 2019

민족대변 東亞  100년, 자랑스런 東友  100인  (동우회보 제66호) 

 

 

본보 신동아 신가정 도안 삽화 기초세운

대표적인 산수화가  –  이상범

  

 

 

<이상범(靑田 李象範),1897∼1972>

 

 

 청전 이상범은 춘곡 고희동과 함께 동아일보 초창기 도안과 삽화 등 미술분야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근대 한국화의 대표적인 산수화가로 꼽힌다.

 

 충남 공주에서 몰락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난 이상범은 생활고로 인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학비를 받지 않았던 서화미술원에 입학했다. 1917년 서화미술원을 수료한 뒤에도 스승 안중식의 화실인 경묵당 에서 기거하며 계속 화업을 이어갔다. 1929년, 청전은 드디어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청전이 동아일보에 입사한 것은 1927년 10월로, 이때부터 1936년 일장기말소사건으로 퇴사할 때까지 동아일보 지면의 도안과 삽화는 물론 신동아 신가정의 미술업무도 담당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1963년 동우지에 실린 ‘구우회고실’ 기사를 보면 청전이 얼마나 회사 일에 헌신적이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한때 잡지 일까지 혼자 도맡아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적이 많았지만 일하는 재미로 한해 한해를 보냈었다. 일거리에 밀려 저녁 늦게까지 내 방에서 일하고 있을 때면 사내를 둘러보던 인촌께서는 다정한 위로의 말을 베풀고는 ‘술 한 잔 하지 않으려나’ 하고 일을 마칠 때까지 사장실에서 기다리다가 함께 데리고 나가 술을 나누고 정을 터주던 후덕한 분이었다…”

 

 청전이 동아일보 연재물에 처음 삽화를 그린 것은 염상섭 작 ‘사랑과 죄’라는 소설이었다.

 

 1931년에는 동아일보가 앞장선 이충무공 유적보존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춘원이 집필한 소설 ‘이순신’의 삽화도 맡았다. 뿐만 아니라 동아일보가 유적보존운동을 벌여 중수한 현충사의 충무공 영정도 그렸다. 청전의 인물화 역량이 당대 최고수준으로 인정받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충무공영정을 그릴 때 청전은 전국 각처를 돌아다니고 또 신문사 보급망을 통해 충무공상을 수집하는 한편, 역사학자들의 의견까지 종합하는 등 열정적으로 임했다. 이밖에 심훈의 ‘상록수’ 연재 삽화도 청전이 그리는 등 그의 신문소설 삽화 작업은 한국 근대미술사에 남긴 커다란 업적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열심히 미술작업에 매진하던 청전은 일장기말소사건으로 돌연 회사를 떠나게 된다. 청전의 손으로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분칠해 없애버렸던 것이다.

 

 

 옥고를 치르고 동아일보를 퇴사한 청전은 자택에 설립하였던 청전화숙에서 광복 때까지 후진양성에 힘을 쏟았다. 청전의 독자적인 화풍은 광복 이후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시골 산야의 정취를 계절의 변화에 따라 특유의 기법으로 처리하여 한국적 서정성을 격조 높게 다루었다. 청전은 광복 후 동아일보에 복직되었고, 미술고문을 맡는 등 평생에 걸쳐 동아와 인연을 맺었다.

 

 

                                                                                         – 글 황의봉(동우회 편집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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