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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동아일보 사람들- 유지영

Posted by 신이 On 12월 - 19 - 2018

 

유지영(柳志永, 1896~1947)은 일본 와세다대학교를 중퇴하고 동경음악전문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1919년부터 매일신보 조선일보 시대일보 기자를 거쳐 1925~1927년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했다. 기자로 일하면서 동요 동화 희곡을 발표했다. 1924년 동시 ‘고드름’을 발표했고 윤극영이 곡을 붙여 유명해졌다.

 

유지영(柳志永) ( , 1897~1947) ▲ 1925. 5 기자, 1927.10 퇴사.〔희곡· 아동문학작가〕

(역대사원명록, 동아일보사사 1권, 동아일보사, 1975)

 

 

동요《고드름》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 놓아요

각시님 각시님 안녕하셔요
낮에는 해님이 문안 오시고
밤에도 달님이 놀러 오시네

고드름 고드름 녹지 말아요
각시님 방안에 바람이 불면
손 시려 발 시려 감기 드실라

 

 

[少年] 동요

방울
유지영(柳志永)

나귀목에 은방울를 채워주어라
잘랑잘랑 은방울을 채워주어라
나귀타고 놀하늘 끗단데 가서
잡어타고 뜬구름 달딸아 가게

달허리에 금방울 채워주어라
달랑달랑 금방울 채워주어라
방울소리 세상에 뿌려가면서
달을타고 은하수 건너단니게

(동아일보 1925년 8월 19일자 3면)

 

[少年] 동요

기다려지는추석
유지영(柳志永)

할아버지 뵈오러 가는길가엔
개울속에 송사리 춤을추고요
검은염소 매해해 숩속에놀고
허수아비 왕방울 새쫏침니다

할아버지 게신덴 솔숩힌데요
푸른잔듸 덥히운 흙속이야요
문도업시 꼭맥힌 무덤에다가
보도안는 헛절만 하엿슴니다

남부러운 생각에 기다려지든
할아버지 뵈을날 한식추석도
검은염소 송사리 허수아비가
보고십흔 생각에 기다립니다

(동아일보 1925년 8월 20일자 3면)

 

 

記者사리 다섯 苦痛

신문긔자=사회부 긔자의 고심담을 쓰라고 한다. 필경 나더러 청하는 것을 보니 사회면 긔자 중에도 외근 긔자의 고심담이 소용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춘파소파청오 세형이 번가러가며 부탁을 하는데 참아 거절할 수가 업서 승락은 해노앗스나 흐지부지 시일은 촉박해지고 내 본직을 위해서 할 일이 압흐로 태산가터 실로 다만 몃 줄이나마 쓰기가 매우 힘드는 터이요 더군다나 춘파형의 요구는 신문긔자질을 오래동안 해먹엇스니 남의 무슨 괴상한 사건들도 만히 탐뎡해보앗슬 것이니 탐뎡하든 중 가장 복잡다단하고 자미 진진한 것, 그럴 듯한 수단으로 그럴 듯이 알어내인 경험담을 하나 쓰라는 요구를 바덧스나 갑작히 허다한 중에 엇던 것을 잡어 끌어내 써야 할지 갈팡질팡으로 어느 사실 한 가지를 잡어 내지도 못하얏스며 또는 참말 사회면 긔사식으로 오밀조밀하게 쓰자니 굉장히 길어질 모양임으로 또 다시 긔회잇스면 묵은 수첩을 뒤저가지고 순서를 밟어서 한 번 잘 써 볼 료량잡고 이에는 위선 이만큼 써보자 한다.

우리 신문 긔자의 업이란 방금 조선에 잇서서는 만흔 청년들에게 적지 안는 선망을 밧는 업이다. 백 사람의 청년이 모힌 곳에 가면 입끗헤까지 내어 가지고 부러워하는 사람이 약 오할=오십 명 가량은 되고 입으로는 말이 업스나 속으로 은근히 불어워하는 사람이 약 삼할=삼십 명 가량이나 되고 직업이 업서서 그것이라도 좀 해보앗스면 하고 부러워하는 사람이 약 일할=열 명은 된다. 그리고 보니 백 명에서 마흔 명은 우리의 업을 부러워하는 모양이나 그 중에서 직업이 업서서 부러워하는 사람은 빼여놋코 입끗헤 내부치고나 입 안에 늣코서나 우리 업을 부러워하는 사람만이 약 칠할=칠십 명<27>이나 되는 것은 사실이요. 조곰도 과장이 업는 것이겟스며 우리 업은 남보기에 끔직이 조와 보이는 것이 틀님 업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슨 업엔들 고통이 업스랴마는 우리 업에는 다른 업을 가진 사람들이 늣기는 고통도 모다 조곰식 맛보면서도 덧거리로 남이 늣겨 보지 못하는 이와 가튼 고통이 잇다.

一. 시간상 고통

가, 남보기에는 아침 느지막히 열뎜쭘 출근하야 오후 두세 시 가량이면 퇴사를 할 수가 잇스니까 그만큼 편하거니 하나 실상은 신문사에 잇스나 집에 잇스나 어느 노리터에 가잇스나 길을 것고 잇는 중이나 남과 자미잇는 작란을 하고 잇는 중이나 한시도 마음을 놋치 못하고 어느 시간에 어듸로 뛰어가라는 명령이 나릴는지도 몰으겟스며 또는 스사로 무슨 펄펄 날뜀직한 일이 업는가 하는 것을 한시도 방심치 못하고 찻고 잇는 것.

나, 아침에 밧게 나아가 그 전날 오후와 그날 오전을 중심으로 잡고 요사이 세상에 무슨 일이나 잇지 아니한가 하야 아못조록 다른 신문사 동모들보다 한 가지라도 더 알고 한 가지라도 더 듯고 신문사에 들어오면 기사의 장단을 불게 하고 당한 원고 마감 시간 안으로 손목에서 비파 소리가 날찌라도 써노야하는 일.

그리하야 시간상으로는 늘 분초를 다토아가며 잇기 때문에 남이 온전한 한 시간을 지내면 우리들은 그 한 시간을 반 시간 턱으로도 알지 못하고 지내는 까닭에 다른 사람 이백 년을 살고 다 죽으면 신문 긔자들에 한하야는 이백 년이나 살고 죽어야 남의 백 년 살고 죽은 이만큼 되는 일.

다, 무슨 돌발 사건이 잇는 때는 불끄러 단이는 소방대 모양으로 깁흔 밤이나 요사이가치 서리 바람 찬 새벽이나 단잠을 자지 못하고 시간 업시 끌녀 나오는 일.

二. 정신뎍 고통

가, 남이 조와하나 미워하나 그저 텰면피로 아희들에게나 어른에게나 걸인에게나 량반부자에게나 조고만 게집애에게나 커다란 어른에게나 고위고관에게나 순사고원에게나 죄업시 머리를 숙여야 되는 일.

나, 남의 자랑이나 험담이나 참아 쓰기 실흔 것이라도 알고서는 아니 쓸 수 업스며 참아 하기 실흔 일이며 참아 할 수 업는 일에도 식히는대로 아니 할 수 업는 일.

다, 독자들의 뜻에 합하도록이나 자긔 뜻대로 이 말귀는 이러케 써야만 하겟스며 이 글자는 이 자를 써야만 꼭 되겟것마는 발매금지 발행뎡지 심지어 발행금지 등이 잇슬까바서 마음대로 못쓰고 오직 안탁갑게 지내며 글자 한 자도 주의해 써야만 되는 일.

三. 육신상 고통

가, 깟닥 잘못하면 감옥에 가게 되는 일.
나, 참아 가기 실흔 위험한 곳이며 험상스러운 곳이라도 아니 갈 수 업는 일.<28>
다, 무슨 일이 잇는 때는 일에 따라 목숨을 내어놋코 싸와야만 되는 일.

四. 금전상 고통

남들 보기에는 저만치 반주구레하게 차리고 다니니 금전상 수입이 상당할 것갓치 뵈이나 실상은 끔직이 박봉이요. 부잣집 가난뱅이집 어듸 아니가는 데 업시 어느 때에 어듸를 가게 될른지 몰으며 늘 남과 대하는 몸이라 차림차림이도 불가불 깨긋이하여야 하며 어는 경우에 잇서서는 돈 만흔 사람들이 하는 일도 아니할 수 업는 경우가 잇는 까닭에 월급은 전부 그리 쓰러놋코말고 정작 자긔집안 사람에는 가난뱅이짓을 하게 된다. 이에는 조흔 「에삐쏘트」 가 하나 잇스니 미국서 엇더한 신문긔자 아들이 길밧게서 동리아이들과 놀고 잇다가 그 압흐로 조흔 자동차 한 채가 지내가는 것을 보고 이애들아! 저것 봬라. 우리 아버지도 자동차를 다 타고 간다! 하고 자랑을 흠신 한 일이 잇다고 한다. 이약이가 우리의 금전상 고통에 대한 것을 간단히 잘 말한 줄 샐각한다.

이번에는 아직 이만 쓰고 끈코자 한다. 그러나 끗흐로 우리가 무엇보다도 큰 고통으로 역이는 것은 엇지하야 그리하는지 우리 조선 사람들은 신문긔자들을 대할 때는 외면과 내심이 달으게 대하는 것이다. 얼골로는 좃케 대하나 마음으로는 될 수 잇스면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까닭에 우리 일에 착오가 생기고 우리 일에 방해가 만흔 것이며 또 한 가지는 신문긔자로 잇든 사람은 그 직업을 내어 노흐면 다른 뎍합한 업이 업는 것이다.

(유지영, ‘各新聞·社會部記者의 苦心談, 날마다 새로나는 소식은 엇더케 모흐나’, 별건곤, 192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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