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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동아일보 사람들- 김용정

Posted by 신이 On 10월 - 30 - 2018

 

김용정(金容正, 1943~2013)은 광주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1968년 동아일보에 입사했으나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해직됐다. 이후 1985년 동아일보에 복직해 논설위원, 심의연구실장, 편집국장, 출판편집인 등을 지냈다. 2001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결정으로 강제해직 언론인들과 함께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중고교 시절부터 큰 체구 때문에 ‘고릴라’라는 애칭으로 불렸으며 넓은 포용력으로 따르는 후배가 많았다. 언론계 은퇴 후 2004년 다산연구소 대표를 맡았고, 2010년에는 전문직 은퇴자들의 재능기부를 통한 사회공헌사업단 ‘렛츠(Let's)’ 단장으로 활동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고인은 늘 정정당당한 언론인으로서, 논리적이면서도 따뜻한 글을 쓴 논객이었다”며 “함께 다산연구소를 창립한 멤버로서 다산의 개혁과 애민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큰 기여를 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김용정(金容正) (광주, 1943~ ) △ 68.12 수습(편집국), 기자(방송뉴스부, 방송뉴스2부, 신동아부, 사회부, 경제부), 80.8 퇴사. △ 84.10 재입사, 기자(여성동아부).

(역대사원명록, 동아일보사사 3권, 동아일보사, 1985)

 

김용정(金容正)(서울, 1943~ ) 84.10 재입사 기자(여성동아부) 85.4 위원(출판국), 87.7 차장(사회부), 경제부, 90.7 부장서리(생활경제부), 91.8 부장(수도권부), 체육부, 94.11 위원(논설위원실)(현).

(역대사원명록, 동아일보사사 5권, 동아일보사, 1996)

 

 

 

 

김용정 신임 편집국장은 동아일보가 처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경쟁지와의 차별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3일 집무실에서 김 신임국장을 만나 동아일보가 ‘정상의 신문’이라는 고지를 다시 탈환해낼 복안 등에 관해 들어 보았다.

-편집국으로 돌아온 것이 7년만이지요.

“상투적인 표현인지 모르지만 늘 편집국을 마음의 고향으로 생각해왔습니다. 아니 고향이라기 보다는 현장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수도 있겠지요. 그만큼 한시도 내가 기자라는 사실을 잊어본 일이 없습니다. 동시에 정말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중압감을 느낍니다.”

-국장의 나이가 많아 지면이 ‘늙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나이보다는 생각이 젊은가 늙은가가 더욱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지금 세상에는 더욱 그럴 겁니다. 나이로는 창사이래 가장 늙은 국장일는지 모르지만 생각으로는 동아일보사상 가장 젊은 국장이 되겠습니다.”

-언론에 대한 권력의 압박이 가중되는 상황입니다.

“권력을 포함한 모든 감시 대상에 대한 엄정한 비판은 언론 본연의 임무입니다. 정권이든 재벌이든 사회단체든 사회적 공익에 위배되거나 국리민복에 상치되는 일을 하면 당연히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일각에서 (편집국장이 바뀌니까) 이상한 추측을 하는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는 기자입니다. 기자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기자로서 언론인의 기본자세를 지키고 엄정히 비판할 것입니다. 적당히 제스추어를 쓰거나 하는 일은 조금도 없을 겁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어떤 정권이 들어선다해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의 본연은 변할 수 없습니다. 물론 어제도 (편집국에서의 취임 인사말을 지칭) 말씀드렸듯이 비판 받은 대상으로 하여금 화가 나기 보다는 부끄러워 하게 만드는 비판이 되도록 노력해야합니다.우리 스스로 품위를 높이고 신뢰를 쌓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

(…)

-최근 부별 대표회의(최근의 언론 상황에 대해 논의한 편집국내 모임)에서 한 참석자는 성명서를 채택하지 않을 경우 기자대표들이 참석하는 특위 구성을 제안했습니다.

“언제 제도나 기구가 없어서 공정보도가 안됐습니까. 기자의 양식과 판단을 믿으면 됩니다. 각 부가 있고 취재시스템이 있습니다. 공식적인 채널이 있는데 새로운 기구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사실에 근거한 객관 보도는 신문이 독자의 신뢰를 받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입니다. 현장을 발로 뛰는 기자와 데스크를 보는 부차장, 국장단이 각자 제 역할을 제대로 해서 정확한 팩트파인딩을 한 것인지, 기사요건에 맞는 것인지를 엄격하게 따지면 우리 스스로 충분히 검증해낼 수 있습니다.”

-경쟁지와의 차별화는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우리가 정상의 신문일 수 있었던 것은 항상 국민의 편에 서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 때는 사실상 정부를 대신해 민(民)의 이익을 대변했으며 해방후에도 독재정권에 맞서 인권을 보장하고 민주화를 실현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불편부당 시시비비 엄정중립의 자세를 지키며 정상의 위치에 우뚝 서있었습니다. 그래서 광고사태 때 전국민의 성원과 지지를 받았던 것 아닙니까. 동아의 이미지는 정론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신문의 전통이 그렇듯이 한국의 대표신문이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조선이나 중앙과는 다른 경쟁력의 원천입니다.

(…)

-마지막으로 후배기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해주시죠.

“우리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위기도 어려움도 돌파해낼 수 없습니다.하나가 된다는 것은 공통의 비전을 공유하고 우리 조직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인식을 같이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이 비전에 따라 어떤 전략을 채택할 것인지 내부의 콘센서스를 모아야 합니다. 충분한 토론과 검증을 거쳐 다양함을 하나로 묶어내 같이 뛰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입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가족이나 마찬가집니다. 호적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동아일보에 한번 몸을 담은 이상 우리는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동아일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영원히 버릴 수 없을 겁니다.”

김 국장은 동아일보가 ‘정상의 신문’으로 다시 우뚝 서기 위해서는 젊은 후배기자들의 열정과 선배기자들의 경륜이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며 편집국 구성원간의 인화를 거듭 당부했다.

(최영훈,  김용정 신임 편집국장 인터뷰,  東友,  2001년 8월)

 

 

‘두 번의 입사와 두 번의 퇴사.’

지난해 12월 29일 서린실비 건물 2층의 한식집 운정에서 열린 김용정 출판편집인(이사대우)의 환송회에서 사회자인 양기대 사회1부 차장은 김 이사와 동아일보의 관계를 이렇게 요약했다. 1968년 입사한 김 이사가 80년 해직됐다가 84년 다시 입사한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러나 김 이사는 “나의 이력에는 단 두 줄이 있을 뿐이다. 동아일보 입사와 동아일보 퇴사”라고 일갈했다.

이날 환송회에는 김병관 전 명예회장이 특별히 참석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김 이사의 앞길을 축복했다. 또한 편집국은 물론이고 논설위원실 심의연구실 독자서비스센터 소년동아 등 대부분 부서의 후배 100여명이 참석해 그의 퇴임을 아쉬워했다.

김 이사는 이날 답사에서 “동아일보는 한국의 ‘더 타임즈’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연수,  김용정 이사대우 퇴임연,  東友,  2004년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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