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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 100년, 東友 100인 – 김성수

Posted by 신이 On 4월 - 3 - 2018

민족대변 東亞 100년, 자랑스런 東友 100인  (동우회보 제59호)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일제폭압 맞서 언론·교육·기업 인재 키운 거목

 

 

 

 동아일보 1백년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커다란 산맥이요, 그 봉우리로 자리잡고 있다. 1백년간 동아일보의 항로에서 활약했던 유명 무명의 인물중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1891~1955)일 것이다. 인촌은 1920년 동아일보 창간의 산파이며 이후 1백년간 신문을 발전시켜온 동력을 마련한 창업의 주역이다.

 

 인촌이 평생을 경영해온 사업은 동아일보뿐이 아니다. 인촌이 20대 초반의 약관으로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중앙학교를 인수 운영하며 식민지 조선의 인재를 키우는 교육운동이었다. 그 다음이 경성방직을 세워 일제 식민지 경제 수탈을 방지하기 위해 방직산업을 일으키고자 한 것이 기업의 꿈이었다. 그 다음이 언론운동으로서의 동아일보 창간 주역의 역할인 것이다. 인촌은 학교를 경영하고 직접 교단에 서서 영어와 상업을 가르친 일선 교사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인기교사나 유명학자는 아니다. 경성방직을 창업 경영했지만 재벌기업가도 아니다. 동아일보 창간의 주역이었지만 유명언론인도 아니다. 광복후 한국 민주당 창당의 산파였으나 그를 대정치가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만 그가 경영하는 학교에서 유명 교사 교수가 나오고 그의 방직회사에서 기술자 산업역군이 많이 나왔다. 그리고 동아일보에서는 일제의 폭압과 탄압에 맞서 활동한 기자 언론인이 대거 배출됐다. 그밖에 한국민주당은 광복이래 우리정치무대에서 활약한 큰 정치인들이 많이 나와 이후 한국정치사의 주류를 이루어 왔다.

 이처럼 인촌이 이룩한 학교나 방직회사 신문과 정당에 많은 인재가 모여든 까닭은 인재를 알아보는 그의 혜안과 이들을 자기 주변에 묶어두는 인간적인 국량에 연유한다고 할수 있다.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한 면면을 보면 사장 박영효와 편집감독 유근·양기탁은 구한말 우리 현대사의 여명기에 활동했던 조선사회의 원로들이며 주간 장덕수, 편집국장 이상협을 위시하여 진학문, 염상섭, 장덕준, 김명식, 김동성, 김형원, 한기악 등 당시 언론계의 신예들이 망라되고 있다. 그리고 잇따라 1921년 동아일보가 주식회사로 개편할 때 사장으로 참여한 인촌의 평생 동반자인 송진우를 시작으로 백관수, 최두선, 홍명희, 이광수, 허 헌, 주요한, 현진건, 박 헌영, 최남선, 설의식, 정인보 등이 꼬리를 물고 있다. 최두선은 중앙학교에서 교사, 교장으로 인촌과 만났는데 이후 그는 경성방직 사장으로 인촌을 돕다가 해방 후 동아일보 복간과 함께 사장에 올라 17년간 동아일보를 이끈 인촌의 평생 동반자이다. 당초 중앙학교 교사진으로 모여든 인사들로 최규동, 이중화, 권덕규 등 원로급을 필두로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송진우, 현상윤, 최두선, 이강현 등이 있고 국내에서 명성이있던 변영태, 조철호, 고희동 등이 있다. 20대 초반에 접어든 젊은 교장 인촌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막강한 이들 교사진으로 하여 일반 사회는 물론 총독부 당국에서도 인촌의 사회적인 존재감을 일시에 크게 키워주었다.

 보성전문은 약관의 인촌이 교육입국의 뜻을 품고 중앙학교를 시작할때부터 품어온 민족교육의 꿈의 목표였다. 1932년 당시 서울 변두리인 동대문 밖 안암골에 세웠던 보성전문의  당시로서는 거대한 캠퍼스의 위용은 그가 계동 산밑에서 시작한 중앙학교에서의 교육입국의 기항지였다. 여기서 그는 중앙학교에서 만난 현상윤과 동아일보 창간동지 장덕수, 그리고 당시 조선의 영재로서 손꼽히던 유진오, 안호상 등을 아우르는 민족지성 궁전의 원정(園丁)으로 교육구국의 평생 꿈을 실현하였다.

 이처럼 교육입국의 꿈에서 시작하여 산업과 언론을 통한 식민지 조선근대화의 거대한 사업을 성취한 그의 힘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이는 젊어서부터 그가 주변에 인재들을 모았던 비상한 인재흡인력을 꼽을 수 있다. 인촌은 평생을 천하의 인재를 모으는 일, 이들에게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고 이들과 함께 꿈을 실현코자 하는 범상치 않은 자질과 국량을 가진 인물이었다. 송진우가 한
평생을 인촌의 곁에서 중앙학교 교장, 동아일보 사장, 한민당 대표로 생을 마감한 것, 장덕수가 동아일보 창간에서 시작하여 보성전문에서 인촌을 대신하여 일제의 탄압을 몸으로 막아 학교를 지켜내고 해방후 한민당에서 활약한 일은 인촌의 인재를 향한 혜안과 국량을 말해주는 대표적 사례에 불과하다. 
                                                                                                                                  – 글 이종석(장지연기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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