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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대구지국장 서상일(徐相日)

Posted by 신이 On 11월 - 25 - 2016

대구지국장 서상일(徐相日, 1887~1962) 

 

 

 “서상일은 대구 출신으로 호를 동암(東庵)이라 하였다. 23세에 보성전문을 졸업했으며 1909년 안희제 김동삼 등과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만주 노령 등지에서 활동했다. 합방 후 1915년 대구에서 윤상태를 통령(統領)으로 하는 비밀결사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를 조직한 뒤 그 외교부장으로 선출되었다. 박상진(광복단 수령), 안확, 조긍섭 등을 포함하는 이 비밀결사는 표면적으로는 시사(詩社)를 가장하여 빈번히 회합을 갖고, 상업 시찰의 명목을 내세워 만주 노령의 독립운동가들과 연락을 하며 기회를 엿보던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영남 여러 곳의 민중시위를 지도하였다. 또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여 만주 노령으로 보내는 한편, 장석영 조긍섭 등 유림의 파리장서사건(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 제출)을 후원하여 그 대표 파견의 여비를 조달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그는 대구에서 태백상회를 경영하면서 부산 안희제의 백산상회와 긴밀히 연락을 취하면서 독립운동자금 조달의 중심적 역할을 하다가 조선국권회복단이 검거당할 때 함께 기소되었다. 서상일은 37세 되던 1923년 7월 동아일보 대구지국장이 되어 본보가 강제 폐간될 때까지 17년간 재임하였다. 조양회관, 교남학교, 대구상공협회, 경북청년회 등을 설립해 대구 방면 민족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다가 해방 후 한국민주당 총무, 입법의원 민선의원을 거쳐 1948년 제헌국회의원으로 헌법기장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또 민주국민당 고문이 되어 1952년 정치활동 때 반독재 호헌구국선언대회사건으로 투옥되고 이승만 대통령 저격사건에도 연루되는 등 반독재투쟁을 전개했다. 1955년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한 진보당을 발기하여 부위원장에 취임하였다가 탈퇴했으며 민주혁신당을 조직, 1960년에는 무소속으로 제5대 민의원 의원에 당선됐다. 이듬해 5.16 군사정변 후 혁명재판소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은거 중 1962년 4월 신병으로 별세하였다.”(동아일보 사사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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