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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를 대표하는 천재화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와, 그보다 더 유명한 그의 여자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전시회가 8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멕시코의 영웅으로 불릴 정도로 민중을 위한 예술로서 벽화운동을 주도했던 디에고 리베라. 버스사고의 후유증에다 디에고 리베라와의 사랑과 이별, 재결합의 격랑 속에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그림으로 그려낸 프리다 칼로.
 

“그녀는 여성의 육체를 남성 욕망의 응시가 아니라 주체적인 여성 시선으로 냉혹하리만큼 리얼하게 바라보면서 그 숙명의 드라마를 그려 낸 혁명적인 화가이자 상처 입은 자신의 육체에 사랑과 죽음, 분만과 낙태라는 여성 삶의 모든 서사를 새겨 넣은 불멸의 화가이다.”    (시인 김승희)

 

부러진 척추 The Broken Column 

 

1944년, Frida Kahlo
캔버스에 유화, 39.8 x 30.5cm, Collection of Museo Dolores Olmedo

 프리다가 척추 수술을 받은 뒤 얼마 되지 않아 그린 작품이다. 이 수술 때문에 그녀는 침상에 누워 있어야했고, 너무나 심하게 지속되는  통증을 줄이기 위해 쇠로 만든 코르셋에 갇혀 있었다. 그림 속에서 그녀는 완전히 메마르고 갈라진 풍경 한 가운데 서 있다. 천을 댄  금속 벨트들이 그녀의 상반신을 감싸고 있다. 이 기구들은 그녀의 몸이 붕괴되는 것을 막고 있다.

 

 두 사람의 삶과 예술을 이야기해주는 작품들과 함께 프리다 칼로의 일기, 두 사람의 사진도 전시된다. 두 사람의 작품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올메도미술관 소장품들로, 룸 1에서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을, 룸 2에서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자화상 Self Portrait with Broad-Brimmed Hat

1907년, Diego Rivera

캔버스에 유화, 85 x 62.2cm, Collection of Museo Dolores Olmedo

 21세의 디에고 리베라의 자화상. 자신이 속한 환경을 반영하려고 하는 젊은 남자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의 얼굴은 일종의 향수를 띄고 있는데,  이것은 스페인 낭만주의와 세기말의 보헤미안  풍조의 특징이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병과 맥주잔은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강조한다.

 

 

안젤리나 벨로프의 초상화 Portrait of Angelina Beloff

 

1918년, Diego Rivera

캔버스에 유화, 114.3 x 145.5cm, Collection of Museo Dolores Olmedo

리베라의 아내 4명 중 첫 번째 아내를 묘사한 작품이다. 1909년 리베라가 모든 상징주의자들의 고향이던 벨기에를 방문했을 때  러시아 여자화가 안젤리나 벨로프를 만난다.  안젤리나는 러시아의 중산층 가정에서 미술교사를 하다가 파리여행을 왔는데, 리베라와 12년 동안  파리에서 함께 지냈다. 그는 벨로프의 초상을 여러 점 그렸는데 그 중 앵그르의 스타일의 소묘도 있지만 이 작품은 고야의 영향이 보인다. 

 

 

농민 지도자 사파타 The Agrarian Leader Zapata

 1932년, Diego Rivera
 종이위에 석판인쇄, 45.2 x 35.1cm, Collection of Museo Dolores Olmedo

돌로레스 올메도 미술관의 소장품 중에는 리베라가 벽화에 재현했던 이미지들과 이어지는 석판화 시리즈가 있다. 그 중 한 작품이 쿠에르   나바카의 코르테스 궁전에 그린 <멕시코 정복에서 사파타의 반란까지의 기억들>(1932)이라는 주제의 벽화에서 가져온 <농촌 지도자 사파타>이다.   벽화에 재현된 역사는 스페인 정복, 독립 전쟁, 멕시코 혁명의 세 시기로 나뉜다. 이 석판화는 가장 마지막 시기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가져온 것이다. 사파타는 인자한 모습으로 서 있는 반면, 그가 타도한 독재자는 그의 발밑에 쓰러져 있다. 이 석판화는 벽화에서 거의 똑같이 모사한 이미지로,   멕시코 혁명에 대한 리베라의 존경심을 보여준다.

 

 

버스 The Bus

 

 1929년, Frida Kahlo
 캔버스에 유화, 26 x 55.5cm, Collection of Museo Dolores Olmedo

프리다는 그날의 버스사고를 회상한다. 하지만 사고현장을 그림으로 그리지는 않았다. 다만 몇 가지의 피사체를 그렸다. 이 작품 “버스”에서는 이런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맨발의 원주민 여성, 근로자, 부르주아, 충분히 프리다일 수도 있는 젊은 여성 등이다. 평화스러운 풍경으로 가득 찬 창 밖을 내다보는 소년 그리고 어느 빌딩에 있는 “LA RISA” (웃음)이라는 가게의 간판은 프리다의 블랙 유머의 의미 있는 디테일이며 사고 나기 바로 직전을 대표한다.

 

 
헨리 포드 병원 Henry Ford Hospital

 

1932년, Frida Kahlo

금속위에 유화, 31 x 38.5cm, Collection of Museo Dolores Olmedo

1932년 프리다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유산을 한다. 의사들은 완전한 안정을 취해야 임신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녀의 몸은 버티지 못했고, 끝내 헨리 포드 병원으로 옮겨졌다. 집에서 시작된 과정(임신)은 병원에서 끝을 맺는다. 며칠 후 프리다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으며 태아를 보여 달라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태아를 볼 수 없었다. 프리다는 의사들과 디에고의 도움으로 이 병원의 이름을 가진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의 유모와 나 My Nurse and I

1937년, Frida Kahlo
금속위에 유화, 30.5 x 35cm, Collection of Museo Dolores Olmedo

프리다가 11개월이었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막내딸 크리스티나를 낳았다. 어머니는 출산의 고통으로 몸이 회복되지 않았고, 아이를 돌볼  수 없을 만큼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어린 프리다는 원주민 유모에게 맡겨졌다. 수년 후 프리다는 이 경험을 “나의 유모와 나”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그렸다. 그림 속 아기의 몸은 어린 아이이고, 얼굴은 어른으로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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