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동아미디어그룹 공식 블로그

D-storyⅡ 156 : 4·19 (1) 17세 김주열

Posted by 신이 On 12월 - 4 - 2013

  4월 11일 정오경 마산시 중앙동 육군헌병대 앞 해변에 한 소년의 시체가 떠올랐다. 좌측 두부가 크게 파열되고 최루탄이 머리를 뚫고 뒷 목덜미까지 관통한 채 그대로 박혀 있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17세의 김주열(金朱烈) 군이었다. 남원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외가가 있는 마산에서 상고에 진학하기 위해 왔다가 3월 15일 밤 시위에 참가했다.

  “오후 2시 현장에 나온 검찰과 경찰의 지시로 인양된 시신은 도립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시민들이 병원 주변으로 몰려들자 경찰은 병원과 시내 요소에 무장경관을 배치하고 비상경계에 들어갔다.오후 6시 15분경 ‘협잡선거 다시 하라’ ‘살인선거 다시 하라’ 등의 플래카드를 든 중고교생 300여명이 도립병원으로 밀고 들어가 김주열 군의 시신을 메고 시위를 벌이려다 경찰에 제지됐다.” (동아일보사사 2권,1978년, 300쪽).

 

  당시 사진기자 박용윤(朴容允)의 증언(2007년 8월 27일 인터뷰).

  “그렇게 해서 이강현(李綱絃) 차장과 함께 마산으로 갔다. 마산에 가니까 마산 항쟁을 취재하러 온 부산주재 기자가 나를 보더니 “박용윤씨 아니냐? 오는 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오는 줄 알고 있었다’ 란 말은 이 기자가 마산경찰서 사찰계를 둘러보다 칠판이 뒤집혀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이게 뭔가 하고 보니 거기에 ‘동아일보 이강현 박용윤 기자가 마산에 온다’고 적혀 있었더라는 것이다. 그만큼 동아일보 기자의 동정에 자유당 정권이 민감했던 것이다.

  내가 마산에 도착한 것은 김주열군 시신이 마산도립병원에 안치된 뒤였다. 김주열 군의 안치된 시신 사진을 찍는데 옆에서 외신기자가 사진을 찍기 전 무릎을 꿇고 앉아 명복을 비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내가 망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했구나’ 하는 자괴심이 들었다. 급하더라도 예의는 지켰어야 했다.”

 

  
 동아일보 1960년 4월 12일자 석간 3면.  김주열군 시체 인양 사진과 함께 ‘김군 시체에 눈에서 목으로 탄환 박혀있고 왼편머리에는 얻어맞아 파열상’이라고 4단 기사를 게재했다.

 


동아일보 1960년 4월 14일자 석간 3면. 김군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사진 및 그림과 함께 ‘눈에 박힌 포탄은 최루탄’ 기사를 실었다.

 

밤 9시경 시위대는 북마산에서 합세, 그 수는 2만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자유당 정권을 규탄하다 12일 새벽 1시경 해산했다.

 

다시 박용윤 기자의 증언(2007년 8월 27일 인터뷰).

“당시 오제도(吳制道) 검사가 마산에 내려와 기자회견을 했는데 이강현(李綱絃) 차장이 회견장소에 없으니까 기자회견을 적당히 끝내고 이강현 차장을 찾아 일본식 여관에서 둘이 2시간 넘게 밀담을 했다. 이강현 차장은 법조 출입을 오래한 베테랑이어서 오제도 검사가 조언을 들으려 했던 것 같다. 그 자리에서 이강현 차장은 오제도 검사에게 “나도 처음엔 마산 항쟁이 좌익의 선동으로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와서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부정선거에 격분한 시민들 자체의 항거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자유당 정권은 좌익의 선동으로 몰아갔다. ”

 

  동아일보는 4월 14일자 ‘마산 시민을 공산당으로 몰지 말라’ 제하의 사설을 실었다.

  마산에서는 아직도 사태가 가라앉지 않고 흥분과 불안과 공포가 뒤덮고 있다. 처음 후퇴하는 기세를 보이던 경찰은 데모가 연3일째 계속되자 강경태세로 전환하고 평화적 시위에 대해서도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자유당 당무회의는 제2 마산사건의 주동자와 배후 관계를 철저히 규명하고 관련자를 엄중 처단한다는 기본방침을 세웠다고 하는데 정부와 여당의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 정부 당국이 마산 시민에 대해 무자비한 복수를 하겠다는 적신호로서 우리는 경계를 게을리 할 수 없다. 제2 마산사건은 경남도지사도 현지 시찰후 언명한 대로 어떤 사전 계획 밑에 발단된 것이 아니며 김 소년의 시체 인도 거부에 격분한 군중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데모를 하다가 나중에는 흥분과 격앙이 도를 지나쳐 일대 불상사가 생겨난 것이요, 적어도 현재까지는 이 사건을 공산당이 개입, 조작했다는 증거는 하나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 당국이 마치 이 사건을 공산당이 조작키나 한 것 같은 선입관을 가지고 사건을 수사 처리코자 한다는 것은 사태의 안정이 아니라, 가일층의 악화를 가져올 우려가 있는 것이다. 데모 방식이 공산당과 혹사(酷似)하다는 이유로 마산 시민에게 누명을 덮어씌우겠다는 당국의 의도야말로 위험천만한 것이다. 마산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 3.15 불법선거에 있고 그 근인이 발포, 고문 등으로 다수의 시민을 살상한 경찰을 처벌치 아니한 데 있다는 데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사건의 원인이 이처럼 간단명료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책임을 시민 측에 돌리고 데모 방식이 공산당의 수법과 같다는 궤변으로 마산 시민에게 누명을 덮어씌우고자 한다는 것은 천만부당한 일이요, 시민의 가일층의 분노를 자아내는 역효과를 자아낼 것이다. 앞서 제1 마산사건을 처리함에 제해서도 경찰은 무고한 시민을 다수 붙잡아 가둬 놓고 차마 입으로 형용할 수 없는 악독한 고문을 해 그들을 ‘빨갱이’로 몰고 이 사건 전체를 공산당이 조작한 것처럼 만들려다가 그것이 실패에 돌아갔고, 이 악의에 찬 복수 정책이 제2 마산사건을 조성한 기본 원인을 이루고 있는 것인데, 수사 당국이 또 다시 이런 수법을 사용하여 사건을 공산당이 조작한 것처럼 제멋대로 꾸며대려고 한다면 마산에서는 일대 공포의 선풍이 감돌게 될 것이요 어느  시민도 마음 놓고 살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마산사건이 발생한 기본적인 원인이 3.15 부정 불법선거에 있고 군중의 시위가 이번 협잡선거에 대한 항의요, 민권투쟁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라고 한다면 데모 군중이 흥분의 도를 지나쳐 다소 난폭한 행동을 취했다 해도 이를 불문에 붙이는 것이 원칙이라 할 것이니 우리는 이 점 데모 대원을 일절 구속치 말라는 민주당의 주장을 강력히 지지하는 바이다.

  반공의 구실 하 국민의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 박탈하여 일당 독재의 체제적인 완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자유당 정부는 제 권리를 찾으려는 민중을 ‘빨갱이’로 모는 악(惡) 작풍(作風)을 가지고 있는데 빼앗긴 자유와 권리를 찾으려는 선량한 시민에게 공산당의 누명을 뒤집어씌우려는 정부의 정책이야말로 오늘날 자유당 정권이 민중의 신뢰를 거의 완전히 상실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선거라는 이름의 협잡을 자행하여 자유선거제도를 파괴하면서까지 재집권을 하게 된 자유당 정부가 이 참을 수 없는 부정 불의의 사태를 시정키 위한 대중투쟁을 공산당과 결부시켜 가차 없이 탄압코자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공산당식 수법이라 할 것인데 이런 공산당식 수법을 가지고 민주정치를 소생시키려는 대중투쟁을 탄압하려는 것은 우매의 극치라고 볼 수 있다. 정부 반대파를 덮어놓고 공산당으로 몰려는 자유당의 수법은 내외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아무리 민중운동을 공산당으로 몬다 하더라도 이를 믿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요, 또 이처럼 정부와 민중이 불화, 대립하고 있는 틈을 타서 진짜 오열분자는 잠입하여 활동의 기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앞서 정부는 홍 내무의 담화 형식으로 평화적 시위마저 탄압할 것 같은 협박공갈을 국민대중에게 가했는데 이는 3.15 부정사태 시정을 위한 원외 대중투쟁을 경찰력을 발동하여 탄압 저지하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묻노니 정부는 무슨 낯으로 자유선거제도를 부활하려는 대중투쟁을 억압하겠다는 것인가. 도둑을 현장에서 붙잡지 못했으니 아예 잡을 생각을 집어치우라는 것인가. 책임 있는 확답을 듣고 싶다. 불과 수만의 경찰을 가지고 2000만의 국민을 통치하고 있는 자유당 정부는 경찰력을 과신하는 나머지 무소불능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이 세금을 내고 국립경찰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총탄에 얻어맞아 죽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자유당 정부는 오늘의 사태를 직시하여 경찰력을 발동하여 민중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버리고 자가 숙청부터 단행하여 민원(民怨)을 풀어 주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댓글 없음 »

No comments yet.

RSS feed for comments on this post. TrackBack URL

Leave a comment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