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는 1955년 새해부터 한국 언론사상 처음으로 조간 2면을 4면으로 늘렸다. 증면과 함께 1940년 폐간 이래 자취를 감추었던 ‘횡설수설’을 부활했다. 풍자적인 필치로 세태에 대해 촌평하는 지면으로 논설위원들이 번갈아 집필하고 있다.
“1955년 1월 1일부터 동아일보는 석간 2면에서 조간 4면으로 증면을 단행하고, 일제치하에서 많은 필화를 일으켰던「횡설수설」란을 부활해서 고정시켰다. 세태만상을 문자그대로 횡설수설식으로 쓰는 이 고정난은 매일 동아일보 지면을 장식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아의 지면반세기, 동아일보사, 1970)
횡설수설자가『동아일보』를 모태로 하고 탄생된지 어언듯 34년하고 또 8개월째。 그러나 폭군일제의 탄압올개미에 걸려 모지(母紙)의 강제폐간과 함께 4273년 8월11일자 신문종간호에『어디두고보자』는 의미의 최후의 일언을 남긴채、울분과 비통이 뒤섞이어、은퇴해가지고는 이날·이때까지 장기침묵에 잠겨버렸었다。 ▲그래도 한참 당년엔 만천하 애독자들의 총애와 권고를 어지간히 받아서『형격』인『사설』자가 쓰지않는글과、안하는말을 이내가 제법 그적거렸고 곧잘 씨브렁대여『사설자』의 대용품적역할을 했었다。 ▲그래서 가끔 일제에게 촉노(觸怒)가 되어、면상을 쥐어뜯기는것같은『삭제』를 몇번이고 당했던것은、지금 생각만해도 끔찍스럽고 치가떨리는 일이다。 때로는 총독정치에 독설도 퍼부어 보았고、또 때로는 일본제국주의에 저주도 쏟아보았다。 ▲그렇던『횡설수설』자가 해방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근10년동안을 두고서、다시 필봉을 들지않은것은 독자여러분에게 미안하고 참괴스러운 일이 아닐수없다。 ▲그런데 독자들의 요망도 적지않으려니와、『횡설수설』자 또한 요즘의 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 등 모든 이면상에 하도 꼴같지않고、눈에거칠며、또비위에 거슬리는 사상이 많아서、참으려야 참을수가 없게한다。 ▲그래서 오늘-을미신정초1일)、본지가 매일4면으로 발행하게 된것을 계기로해서、다시 녹쓸은 붓대를 가다듬어가지고、계속해서 독자앞에 나타나기로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독자의 옛기억을 새롭게하기 위해서、폐간당일의『횡설수설』두어 구절을 소개하기로 한다。 즉『시서변천을 어찌할수 없고、시회(時懷)의 청(晴)·담(曇)도 자제키 어려우나、그렇다고 때따라 흘려지고、마음가는대로 방임해서야될라고。 밝은하늘에 마음을 가다듬고、서늘한바람에 기운을 일으키어 정진·매진·확실한 결실、실속있는 수확이 있도록 노력합시다。』▲이상이『횡설수설』자가 거금15년전 국민에겐 멀지않아 광명이 올것을 이심전심하면서、독자들에겐 또다시 재회할날이 올것을 약속했던 눈물의 고별사의 일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