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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oryⅡ 110 : 최두선 사장의 외유

Posted by 신이 On 11월 - 8 - 2013

  

  6·25 전쟁중 사장은 각천 최두선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난 최두선 사장(1894~1974)은 1917년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뒤 중앙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하다 1919년 교장을 맡았다. 1922년부터 3년간 독일유학 후 귀국해 다시 중앙고등보통학교장에 취임했고 1932년부터는 보성전문학교 재단의 상무이사로 있었다. 해방 후 경성방직회사를 거쳐 1947년 2월 동아일보 10대 사장에 취임했다. 최 사장은 이때를 비롯해 부산피란, 4·19 의거, 5·16 군사 쿠데타 등 어려운 시기에 사장을 맡아 동아일보를 이끌었다.
 
 최 사장은 서울 수복 후 전세가 호전되자 10월 미국의 언론 교육 산업 정계 시찰길에 올랐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걷잡을 수 없이 역전됐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린 우리 군은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고 38선까지 접근한 중공군은 서울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최 사장은 12월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약 한국이 공산당 수중에 떠러지면 전 태평양지역은 공산주의 세력하에 위태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중공군이 38선에서 정지하리라는 희망적 관측에 대해서는  “그들 중공지도자와 소련인은 중공군을 결코 정지시키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나는 만약 공산당이 한국에서 승리한다면 위험은 전태평양 지역에 미칠 것이며 일본 비률빈(比律賓) 및 전 동남아세아는 위태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바이다.” (동아일보 1950년 12월 12일자 1면)
 
최 사장은 1951년 1·4 후퇴로 동아일보가 부산으로 피란해 속간한 뒤인 5월 중순 수영비행장으로 귀국했다.

 


최두선 사장

 

 

동아일보 1950년 10월 23일자 1면
본사 최사장 미시찰
워싱톤 21일 발 USIS=동아일보 사장 최두선 씨는 현재『워싱톤』에서 삼개월간 예정의 미국시찰 여행을 하고 있다 씨는 미 국무성의 원조금으로서 동 시찰여행에 올나 지난 10월 5일 미국에 도착한 것인데 미국의 신문사 교육기관 방적공업 정계 등을 역방할 것이라 한다

 동아일보 1950년 12월 6일자 2면
3개월 예정으로 미국무성 초빙계획에 의하여 미국(美國)신문사와 신문 학교 등을 방문 중에 있는 본 동아일보사장 최(최두선)씨는 지난번『예일』대학을 방문하여 동 대학에서 발행하는『예일·데일리·뉴스』의 학생편집장『해리슨·엘리스』씨를 만났는데 사진은 그 신문 첫 페지를 보고 있는 광경이다

 동아일보 1950년 12월 12일자 1면
한국은 아(亞)주 운명 좌우
상항서 본사 최사장 강조
【쌘푸란시스코 십일일발 AP합동】한국의 일(一) 주요일간신문사장은 9일 당지(當地)에서 만약 한국이 공산당 수중에 떠러지면 전 태평양지역은 공산주의 세력하에 위태하게 될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즉 서울서 발간되는 동아일보사장 최두선 씨는 언명하기를 한국의 전쟁은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전세계의 문제가 되었으며 한국은 민주주의와 반민주주의사이의 시험장으로 화하여 버렸다고 하였다.
최두선 씨는 계속하여『나는 만약 공산당이 한국에서 승리한다면 위험은 전태평양 지역에 미칠 것이며 일본 비률빈(比律賓) 및 전 동남아세아는 위태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바이다』라고 말하는 동시 중공군은 삼팔선에서 정지하리라는 희망적 관측을하는데 대하여 이를 조소하면서『그들 중공지도자와 소련인은 중공군을 결코 정지(停止)시킬랴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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