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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oryⅡ 103 : 속간호 발행

Posted by 신이 On 7월 - 10 - 2013

 동아일보 1950년 10월 4일자 속간호 1면

 

서울 탈환 후 속간호는 1950년 10월 4일자로 발행됐다. 타블로이드판 2면이었다.
속간호 사설은 “그동안 우리의 설음과 억울함이야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으리요. 부모 처자 형제 자매가 뿔뿔이 헤어져서 서로 그리워하고 지척이 천리같은 안타까움이야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으리요. 이제 그 저주받은 암담한 세월은 지나가고 광명과 축복의 날이왔다. 대한민국 정부의 서울환도는 실현되고 우리의 가슴에는 새로운 환희와 용기가 넘쳐 흐른다. 지나간 모든 일을 장의 악몽으로 잊어버리고 새로 찾은 우리의 생을 즐기고 빛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할 때는 왔다.”고 밝혔다. 1

 

이같은 속간에 국방부 정훈국 서울분실장 김기완(金基完)대위는 “동아일보의 속간은 민족시련을 통한 전통을 유지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있을 것”이라고 치하했다. 김기완 대위는 성김 주한미국대사의 부친이다.

 

“본관의 직책상 당 계엄지구에 있어 문화언론기관이 능동적으로 국민의 의의의 혁신을 수행할 수 있게 힘을 경주할 것이며 또한 과거에 있었든 민족진영의 언론정책의 온미한 것을 버리고 더 한층 진수적이며 향상적이어야할 것은 물론 군으로서도 가능한 한 이해와 협조를 불사한다는 것을 강조하여마지 않는 바이다.” 2

 

속간호부터 13일자까지 6차례에 걸쳐 공보처에서 제공하는 ‘전쟁일지’를 게재했다. 6월 25일부터 3개월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취지였다. 3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은 ‘맥(맥아더)장군의 지휘하에 아군 인천 영덕시내 돌입’이라고 기록됐다. 4

 

속간호 발간이 용이했던 것은 아니다. 공산군이 퇴각 직전 동아일보가 사용하고 있던 서울공인사의 인쇄시설에 방화해 잿더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내 을지로 2가 한국일보사 사옥 식산은행 건너편으로 임시사옥을 정할 수 밖에 없었다.

 

동아일보 1950년 10월 4일자 1면 사고

 

시내 태평로 본사 사옥은 공비의 시화(施火)로 인하여 회진(灰盡)에 귀하여 임시사옥을 시내 을지로2가 한국일보사 사옥 식산은행 월편으로 정하고 1일부터 신문간행의 일체사무를 속개하였아오니 배구의 애호와 편달이 게시옵기를 바라나이다.
단기 4283년 10월 3일
동아일보사

 

 

  

Notes:

  1. 동아일보 1950년 10월 4일자 1면 사설, 속간사

    6월28일 이래 휴간하였던 본보는 이제 다시 나오게 되있다 다시 나오게된 이 사실을 우리는 만천하독자와 더불어 즐기고자 한다 속간하게 되었다는 이 간단한 사실의 배후에는 이나라 이민족의 운명을 쌍견에 걸머지고 혈전고투한 충용무비한 우리국군과 53개민주우방의 물심양면의 적극적인 원조와 유엔군의 고귀한 희생을 내포한 가나긴석달 세월이 흐르고 또흘러 가진 신고와 공포와 기아아니 생사의 노도가 교착한 무거운 암흑과 같은 석달 세월이 천추와 같이 흐르고 또 흘럿다 그동안 우리의 서름과 어굴함이야 어떠게 다 표현할수 있으리요 부모처자형제자매가 뿔뿔이 헤여저서 서로 그리워하고 지척이 천리같은 안타가움이야 어찌 이루다말할수 있으리요 이제 그 저주밧은 암담한 세월은 지나가고 광명과 축복의 날으왓다 대한민국정부의 서울환도는 실현되고 우리의 가슴에는 새로운 환희와 용기가 넘처 흐른다 지나간 모든일을 장의 악몽으로 이저버리고 새로 찻은 우리의 생을 줄기고 빗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할때는 왓다 다행히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는 53개민주우방의 원조 우리에게 있어 이 민족의 숙원이던 남북통일도 목첩에 있으니 연래의 과제이던 이나라 민주건설을 위하여 민주우방의 우리에 대한 유일한 기대인 이나라 민주건설을 위하여 우리의 생을 보람있고 빚나게하는 민주주의적6대자유를 이나라에 확립하기 위하여 다같이 협심노력할때는 왓다

    이제 우리는 알았다 자유없이 살수없음을.
    그리고 자유가 얼마나 귀중한것을 동시에 우리는 공산주의가 얼마나 익착스러운 인류의 적안가들 뼈에 사못치게알았다 이제야말로 공산주의들 이지상에서 말살하고 민주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53개민주우방과 어깨를 겨누고 민주주의를 이나라에 확립하는 사업의 위대함과 광영스러움을 우리몸소 체득하였다
    이 광영스러운 사업을 추진함은 본보 창간이래의 사명으던바 금반의 민족적수난을 극복하고 이제 속간하게되는 이마당에 일층의 노력과 분발을 독자제위앞에 맹서하는 동시에 그동안 제반악조건에 의하여 언론기관으로서의 사명을 다할수없었음을 궤감히 생각하고 심심한 사과를 올리는바이니 관용하고 배구(倍舊)의 편달과 애호가 있기를 간망하는 바이다

  2. 동아일보 1950년 10월 4일자 2면, 발전을 기원, 본보 속간에 김 분실장 치하

    국방부 정훈국 서울분실장 김기완(金基完)대위는 본보 속간에 앞서 3일 다음과 같이 말하여 주었다
    동아일보의 속간은 민족시련을 통한 전통을 유지하는데 크다란 도움이 있을 것을 믿고 감격하여마지 않는 바이다 본관의 직책상 당계엄지구에 있어 문화언론기관이 능동적으로 국민의 의의의 혁신을 수행할 수 있게 힘을 경주할 것이며 또한 과거에 있었든 민족진영의 언론정책의 온미한 것을 버리고 더한층 진수적이며 향상적이어야할 것은 물론 군으로서도 가능한 한 이해와 협조를 불사한다는 것을 강조하여마지 않는 바이다

  3. 동아일보 1950년 10월 4일자 2면, 전쟁일지(1)-공보처제공

    ▲6월25일◇오전 5시북한괴뢰군이 불법남침을 개시◇유엔안보이사회 북한군의 공격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유엔안보정전명령을 발송◇신국무총리사국에 무기원조를 요청◇유엔한위긴급소집◇아원군(我援軍)임진강방면에 출동◇동두천지구에서 전투전개

    ▲6월26일◇아군부대 일부 해주시 돌입◇부산이남 해상20리 지점에서 소선박일척을 격심◇적기2대 김포비행장에 내습◇미의 긴급원조무기 동경으로부터 공수◇맥아|더 원수전쟁물자 수송을 훈령◇장개석씨 원한을 제의◇사태급속수습을 이대통령 언명◇미행정부(부)전투국부화에 주력

    ▲6월27일◇아군사정부를 탈환◇김해상륙기도의 적선 5척 격파◇김포공□전에서 적2기 격추◇감포해상에서 소식선박격파◇괴뢰기 서울에 비내(飛來)◇개성지구서 격전전개◇임진강서 일대공방전◇아군에 신예 P35등도 등장

    ▲6월28일◇『트루맨』대통령 해군발동을 명령◇서울에 맥아|더 전투사령부 설치◇분사기80수기복강 출발◇B이 폭격기 참가◇한국무력원조를 유엔안보 7대1로서 가결◇전투즉시 중지를 미국、소련에 요청◇국부군 본토공격 명령

    ▲6월29일◇한강일대서 장렬한 반격전◇맥아|더 원수내한◇아공군 문산방면을 폭격◇미 극동함대주력 한국참가 결정◇화란해군참가 결정◇연합군 300기 장단문산에서 전투◇유엔당국가맹국의 태도결정을 요청◇이대통령 국민에게 독□방송◇영국해군 출동◇이대통영 맥원수와 회견

    ▲6월30일◇트대통령 미육군부대 출동명령◇김포비행장 탈환◇아공군평양원산을 폭격◇호주해공군 출동◇화란해군 한국향발◇소련서 대서독전력단체◇영 연방전투기 참가

    ▲7월1일◇트대통령 지상부대에 진격령◇연합군 지상부대 상륙◇미국상원 대외군사 원조가결◇유엔안보 대한국군사원조 문제토의◇신임총참모장에 정일권소장 임명◇소련은 한국전란에 불간섭 표명

    ▲7월2일◇연합군 수원북방서 행동개시◇B29한강????변을 폭격◇연합군 순양함 동해안서 활약◇인도대한군사원조 통고◇유엔중국대표 류어만씨 대전서 방송◇『뉴|지랜드』함정한국을 출발◇신총리 국민총궐기 요망

    ▲7월4일◇연합군 지상부대와 북한공산군 처음으로 충돌◇주한미군 총사령관에『띈』소장 임명◇대한국제원정군 조직계획을 유엔서 발표◇동해에서 적수뢰정6척 격파◇아군특공대 남산에서 분전◇유엔결의지지국가 38개국◇◇연합군 지상부대 북으로 추격◇원산비행장을 폭격

    ▲7월5일◇아군한강을 역도하◇서울 평야에서 격전전개◇B92극동방면에 동원◇아군수원비행장을 확보◇□해병대전투 참가결정◇적기47대를 격파(이북)연포비행장에서◇인천항을 아군이 확보◇미정부는 한국사태를 악관(樂觀)◇미정부 수뇌부백악관에서 비밀회의

  4. 동아일보 1950년 10월 13일자 2면, 전쟁일지(6)-공보처제공

    ▲23일◇이대통령 자원출전자등록 발표◇유엔군수륙량용부대와 한국해병대는 월미도 상륙◇진도북방○○도에 아해병대 적전상륙

    ▲24일◇아해병대 인천항외육개도를 점령

    ▲25일◇9월19일 개최될 N5차회의 중국국련대표장외교부장을 주석대표로 결정

    △27일 ◇남로당특수공작대대 구출신국회의원 김준태사건진상 발표◇UN한위진해에서 전체공개회의 개최

    △28일◇조은권 교환조치법 공포

    △29일◇미국선발부대모항(某港)에 상륙전선에 향발기계 탈환

    △9월1일◇병역법실시 발표 회비공개회의◇국회통일과업촉진을 안보에 요청◇미법률전문가는 괴뢰군지도자를 전범자로 추소(追訴)준비발표◇안보신의장 잽브씨는 한국대표참가를 재정◇전시선전대책위원회 결성

    △2일◇안보회에서 한국대표출석가부를 투표한 결과 다수표로 채택◇트미대통령 한국문제에 중대연설

    ▲5일◇영천 안강에서 군적1개사단 섬멸 남침소기격추문제 안보에서 논란

    △6일◇국회 14차본회의에서 유엔총회에 대표파견을 만장일치로 가결◇목포군산근해 모도에 아군적전상륙감행◇유엔한국대표초청을 결정

    △7일◇멜사령부 최근 적의 사상만 2만여라 발표

    △8일◇국군및유엔군총 반격개시◇유엔리|총장한국통일이 유엔의 목표라고 연설◇메단폭탄전선에 등장◇비(比)、재한연합군에 미곡2만톤 발송결정

    △10일◇국회유엔총회대표 장택상 김동성 황성수 3씨를 결정◇이대통령 동부전선 시찰◇섬머|타임 해제◇중부전선에서 적제15사단 섬멸◇해주근해○○도 아함대점령◇한위대표와 유엔총회보고차본부에 향발

    ▲11일◇이대통령 괴뢰군주력은 이미 분쇄되었다고 언명

    ▲12일 ◇뉴욕삼외상회의 개최◇마|샬장군 국방장관 취임

    ▲13일◇UN총회대표 임병직 장면 장택상 김동성 임영신 황성수씨등 출발

    ▲14일◇한은권유통금지(韓銀券流通禁止) 공포 15일|22일 교환실시◇윤주불공사(尹駐佛公使) 취임식 거행

    ▲15일)◇통일촉진국민대회 개최◇맥장군의 지휘하에 아군 인천 영덕시내 돌입 ◇김포비행장일대를 제압

    △17일 영등포 완전탈환

    △19일◇인천상륙 축하대회 개최☆아군 한강서안 도달◇UN총회 개최◇서울서남2리에 아해병대상륙돌입

    △20일◇아해병대2방군의로 서울시내 돌입◇한국해병대삼척에 상륙

    △21일 한강철교절단면이한 책임자 육군공병감 최창식을 부산시교외에서 총살집행

    △22일 ◇연합군 김천 수원 돌입◇아해병대 서울구시가 돌진

    △23일 육군본부 대구에 전진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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