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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oryⅡ 99 : 6·25와 동아일보

Posted by 신이 On 6월 - 19 - 2013

  1950 6 25일 일요일 이른 아침, 사원들은 비상소집을 받고 신문사로 달려 나왔다. 10여 명의 기자가 경무대, 중앙청, 국방부, 경찰, 주한 외국공관 등을 황급히 취재한 결과, 일시적 도발이 아니라 전면전이며 전세(戰勢)가 위급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국방부 정훈국장 이선근(李瑄根) 대령의 발표는 실제 전황(戰況)과는 달랐다.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라 제작된 1950 6 26일자(25일에 배달된 석간) 동아일보 1면은


  ‘괴뢰군 돌연 남침을 기도’

  ‘38선 전역에 비상사태’

  ‘정예 국군 적을 요격(邀擊) 중’ 

  ‘국군 방위태세 만전적의 신경전에 동요 말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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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2면 톱 제목은 ‘시내 민심 지극 평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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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신문들도 비슷한 보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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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 날짜(1950 6 27일자) 신문에는 황당한 발표가 실렸다.

 

  ‘해주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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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 신문을 보면 그 때까지만 해도 서울 시민들은 뭐가 뭔지 잘 몰랐던 상황이었던 것 같다. 동아일보 사원 중에도 피난을 가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조선일보의 경우 사주 방응모 선생도 피난을 가지 않아 납북됐다.


  사내에서 밤을 세워가며 시시각각 들어오는 전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27일 아침 외국공관들을 취재하던 정인영 기자가‘외국기관들이 서울에서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오후 4시경 외근기자들이 모두 편집국에 모여 ‘전황은 절망적이다’, ‘더 이상 취재 할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마지막 호외 300여 부를 찍었다.


  ‘적, 서울 근교에 접근, 우리 국군 고전 혈투 중’


  호외를 낸 뒤 최두선 사장은 전 사원을 모아놓고 “일단 해산하자”고 말하고 신문사가 갖고 있던 은행예금을 모두 찾아 똑같이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나서 무교동 실비옥(實費屋)에서 설렁탕으로 이별의 술잔을 나누었다.


  장인갑(張仁甲) 편집국장, 이언진(李彦鎭) 공무국장, 이동욱(李東旭) 조인상(趙寅相) 변영권(邊永權) 김성열(金聖悅) 권오철(權五哲) 최경덕(崔慶德) 김준철(金俊喆) 김상흠(金相欽) 최흥조(崔興朝) 김호진(金浩鎭) 정인영(鄭仁永) 백광하(白光河) 김진섭(金鎭燮) 기자 등이 마지막까지 서울에 남아 어느 신문보다도 최후의 호외를 발행했다.


  그 후 3개월, 9·28 서울 수복 뒤 속간된 10 4일자 2면에는 아래와 같은 사고(社告)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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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기 본사 사원의 행방이 불명인바 가족 되시는 분은 즉시 본사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인갑(편집국장) 정균철(영업국장) 이동욱(조사부장) 백운선(사진부장)

  김성열(편집국기자) 서정국() 조용근() 변영권() 김준섭()

  이성득(정판부장) 상복규(보급부 차장) 장성규(판매부 차장) 최화익(사원) 이상필()

  김인호() 이대종() 오득한() 정활모() 정봉진() 주재정()

  동아일보사

 


  장 편집국장은 8 6일 집에서 잠을 자다 새벽 2, 내무서원 3명과 인민군 2, 정보원 1명에게 연행돼 재동파출소로 끌려갔다가 국립도서관(보위부)에 감금됐다고 가족들이 적십자사에 신고했다.(1956)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역 이길용 선생도 납북됐다.


  “6·25 전쟁이 터지고 (아버지가) 처음에 연행되어 가셨다가 사흘 뒤에 풀려나셨어요. 아버지와 한 마을에 사셨고 죽마고우처럼 지내셨던 이완구 선생이라는 분이 아버지께 즉시 피신할 것을 권고했어요. 아무래도 심상치 않으니 피신하는 게 좋겠다고. 그러나 아버지는 민족운동을 했지만 민족 앞에 부끄러운 일이 없는데 내가 왜 피신하느냐며 집을 지키셨어요. 그러니까 그 당시 정치보위부 사람들은 항상 몇몇 리스트를 놓고 추적하고 주시하던 중 여러 가지 사실들을 찾아내서 7 17일 집에서 가까운 노상에서 납치해간 거죠. 그 뒤로는 전혀 알 길이 없고요. (이길용 선생의 아들 이태영 씨 증언, 한국전쟁 납북사건 자료원 2006 1 12일 채록  

 

 

이길용 선생 실향사민(失鄕私民)신고서

이길용 선생 실향사민(失鄕私民)신고서


 

  일장기 말소사건의 또 다른 주역 백운선(白雲善·40) 사진부장은 7 10일 오전 10시경 내무서에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고 집을 나선 뒤 소식이 끊겼다.

 

  김진섭 당시 기자의 회고.

 

  “6·25가 나기 사흘 전 백운선이 ‘술 한잔하자’고 해 이길용과 함께 셋이 용금옥에 갔다. 용금옥에는 소설 ‘홍경래’를 본지에 연재하고 있던 월탄 박종화가 이하윤 등 문인들과 함께 와 있었다. 월탄이 ‘야, 이리와’ 하면서 합석을 권했다. 그들은 이미 두 되 이상씩 마셔 술에 취한 상태였으나 권커니 잣거니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갑자기 용금옥 주인이 ‘야 이 정신 나간 놈들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여섯 말짜리 술독이 두 개나 바닥이 났다는 것이다. 술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한 사람 당 평균 한말 두 되씩을 먹은 셈이었다. 이길용이 스포츠를 좋아하던 용금옥 주인에게 권투표, 야구표를 주며 술 더 달라고 하던 때가 허 

 

  일장기말소사건은 이길용이 사진부 암실로 들어와 ‘야, 운선아 이거 안 되겠다. 지워야겠다.’고 해 백운선이 ‘그까짓 것 지워버리지, 지우기야 쉽지.’ 라고 의기투합해 일어난 일이라고 얘기했다. 백운선은 술고래였다. 그러나 술 마신 이튿날에도 꼭 새벽같이 출근했다. 이해심도 많은 사람이었다. 이길용은 꼼꼼히 기록하는 그야말로 스포츠 전문기자였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고영환(高永煥·55) 논설위원은 9 20일 오후 3시경 집에서 정치보위 부원 2명에게 연행돼 안국동 우체국(정치보위부 본부)에 구금되었다가 바로 그 이튿날인 9 21일 부인 허영순과 함께 학살당했다는 얘기도 있다.

 

  정균철(鄭均轍·46) 영업국장 부인 김지순 씨는 “6 29일 오후 2시경 집에서 6·25 후 출감한 동 인민위원회 소속 5명에게 연행됐다. 동대문 내무서 감방에 갇혀 있다가 7 5일경 보위부(일화빌딩)에 이송됐는데 7 15일까지 같이 있었다는 사람이 있으나, 그 후의 소식이 두절되었다”고 신고했다 


  이상필(李相弼·46) 판매부장은 8 15일 집에서 피랍됐고 이성득(李盛得·40) 정판부장은 8 19일 오후 2시경 집에서 내무서원 2명과 인민위원회 1명에게 연행돼 정치보위부로 간 뒤 소식이 끊어졌다.


   “6·25 후 종로구 중학동 형의 집에 은신하다가 남하하겠다고 8 30일경 집을 나간 후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서울시청 별관(현재 서울시의회) 근처에서 납치되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조진흠(趙璡欽·27) 문화부장 어머니 곽신촌 씨 신고>

 

  문선공 최원명(崔元明·28)은 날짜는 모르지만 동아일보 사내에서 작업 중 납북됐다고 부인 박신흠 씨가 적십자사에 신고했다. 역시 문선공 최이원(崔履源轍·26) 7 28일 오후 1시경 집에서 납북됐다.


   김준섭(金浚燮·38) 기자는 전쟁 직후에 납북돼 가족들이 신고했으나 1957 11월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전달받았다.


  이동욱 당시 조사부장은 평안북도 개천까지, 변영권 기자는 함경도 홍원까지 끌려갔다가 돌아왔다.


 일제 말 폐간 당시 사장이었던 백관수 선생도 납북됐다. 재북 평화통일촉진협의회 서기국 리철용(65)부국장이 2004년 4월 방북취재단에 설명한 내용.


  “백관수 선생, 초대 국회의원인데 법제사법위원장을 했습니다. 이 분은 전쟁 시기 사망했는데 그 와중에 유골은 찾아왔는데 이름장은 있으니까 알겠는데 어디서 사망했는가 이게 없습니다. 그래서 보다시피 생년월일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조사 중 입니다. 이 선생은 30년도 베를린올림픽 때 일장기 말살사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송진우 선생이 인책 사임하지 않았습니까. 그 다음에 동아일보 사장을 했습니다.

 


 백관수 선생의 생년월일이 확인되지 않은 점이 마음에 걸려 서울에 돌아온 후확인해보니 1889 1 28일이었다.(민족 21, 2004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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