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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oryⅡ 84 : 한국독립안 유엔서 가결

Posted by 신이 On 6월 - 3 - 2013

“양차의 미소공위가 결렬되자 미국은 한국문제를 유엔에 상정하여 모스크바결정과는 별도의 방법으로 해결코자 하였다. 1947년 11월 유엔총회는 양군철퇴라는 소련안을 부결하고 유엔감시하의 총선거라는 미국안을 가결하는 동시에, 이 결의를 실천하기 위하여 9개국대표로써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을 설치하였다.” (동아의 지면반세기, 동아일보사, 1970)

 

“46년 12월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정부와 교섭을 벌인 뒤 47년부터 본격화한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운동은 마침내 9월, 마샬 미 국무장관을 통해 한반도문제를 유엔에 상정케 하는 데 이르렀다.
이승만 계열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한민당과 손을 잡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구성을 추진했고, 미군정의 단독정부 수립방침에 도전하는 언론들은 좌파로 분류돼 폐간처분됐다.
11월 유엔 감시하에 한반도에서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안이 가결됐다. 소련은 이 결의에 반대하며 유엔 한국위원회가 38도선 이북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다. 김구는 ‘3000만 동포에게 읍소함’이라는 성명으로 단정 반대를 선언했고 김규식은 우리 민족끼리 협상해 통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유엔 결의를 환영하고 소련의 보이콧에 유감을 표하는 논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1947년 9월과 11월 미군정과 ‘조선사정협회(Voice of Korea)’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발행부수 4만3000부인 동아일보는 ‘우익’ 혹은 ‘극우’로 평가되고 있었다. 6만1300∼6만2000부의 경향신문과 5만2000부인 서울신문이 ‘중립’, 2만5000∼3만5000부인 조선일보가 ‘중립’ 혹은 ‘우익’으로 평가되던 시기였다.” (동아일보 80년사,동아일보사,2000)

 

동아일보 1947년 11월 16일자 1면, 조선위원회설치안, 총회서 43대0으로 가결

소(蘇)측 철병제안은 부결
각국대표의 격론
소는 최후까지 반대
양군철퇴는 90일내로
위원회구성 멤버는 9개국

【뉴욕=후럿씽메도우스15일발AP합동】「마|샬」씨가 UN에 제출한 최후의 최대제안인 조선위원수립안은 14일 드디어 UN총회전체회의에서 43대0으로 가결되고 소측 파병재제안은 34대7로 부결되었다 미측안이 가결되자 소련「뿔럭」은 즉시로 조선위원안을「보이콜」하리라는것을 재강조하였다
【뉴|육15발AP합동】13일야UN총회전체회의에서는 미측제안에의한『조선위원』문제를 최후가결 조상에놓고 미소양국간에는 또다시 논전이 전개되였다
▲먼저 소련대표『안드레·그토미코』씨는 다음과같이 미측제안을 반박하였다 미국은 미소양주둔군이 조선으로부터 철퇴하기전에 선거를 실시하고 조선정부를 수립하기를 주장하고있는데 이주장의 의도는 점령군대가 조선에 주둔하고있는동안에 종래미군당국이 의뢰하여오든 극반동조선인측의 선거보장을 도모할려는것뿐이다 정치위원회에서 가결된 이 조선문제해결안은 조선을 미국식민지화 할려는것이나 동일한것이다 하여간 UN총회는 조선인이 현 토의석상에 출석하고 있지않은데서 조선문제를 취급할 권한은 없는것이다 그러므로 소련은 이 문제투표에 참가치않을터이다 【사진?덜레스·꾸포미코·로무로 3씨】그다음 미측대표『죤·호스타·덜레스』씨는 다음과같이 말하였다

미소양국은 조선장내에 관하야 2년간이라는 장시간을 소비하고 합의도달에 노력하였으나 성공을 하지못하였다 그결과 미국은 UN이조선독립문제를 해결할수있을지 모른다고 믿고 이 안을 제출한것이다 나는 총회가 이 안을 가결하여 주기를 요망하는 바이다 UN조선위원은 남조선미군점령지구에서는 환영을 받을것이며 북조선에서도 동양(同樣)히 환영되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여기서 비국대표『로무로』씨가 일어서서 소련대표기타소련진영국가는 조선위원문제에 대하야 태도를 재고려할것을 요망하였다 그러나 동안최후가결에는 소련『뿔록』6개국 즉 소련、파란『책코』『유|고』『우코라이나』백로는 투표치않고 43대0으로 가결되였다 가결직후 소련측은 조선위원안을『뽀이콜』할것을 재강조하였다 그러고 소련철병재제안은 34대7로 부결되였다 그러고 UN조선위원『멤버|』구성국은 호(濠)、가(加)、중(中)、『살바도루』、불(佛)、『인듸아』비(比)『씨리아』『우크라이나』9개국을 총회가 임명하였든것이나『우크라이나』측은 이에 불참할것을 앞서 통지하였든것이다 하여간 이상과같은 소련대표급『우크라이나』대표의 태도로보아 소련은 조선위원의 북조선입국을 불허할것이라고 일반대표는 관측하고있다 미측제안인 조선문제 해결이라는것은 1、조선위원파견 2、위원감찰하에 국민의회의원총선거시행 3、국민의회는 조선국민정부수립 4、국민정부는 정부기구을 UN위원에게 보고 5、국민정부는 위원과의 협의하에 모든 군사단체급반군사단체를 해체할것 6、기후미소양주둔군은 철병준비를 가급적속히 가능하면 90일이내로 철병하게할것

 

 
동아일보 1947년 11월 16일자 1면, 조선위원회설치안, 총회서 43대0으로 가결

 

동아일보 1947년 11월 16일자 1면

위원회의 문제해결가망시
로무로 비대표총회결의에 언명

【프럿싱 15일발 UP=朝鮮通信(조선통신)】『로무로』비률빈(比律賓)대표는 UN총회의 조선에 관한 결의안채택을 칭양(稱揚)하여 다음과같이 말하였다
조선의 독립을 감독할 UN위원회설치안이 총회를 통과한것은 UN이 동양제민족에 대하여 다대(多大)하고 계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것을 표시한 조치이다 소련이 이위원회를『뽀이콧트』할것을 언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余)는 이위원회가 문제를 해결할 모종방법을 발견할것으로 생각한다『마누일스키』『우크라이나』대표는 여가 미국검한인이 사준 색미색안경으로 세계를 보고있다고 말하였는데 사실인즉 여의안과의는 소련인이다

 

동아일보 1947년 11월 16일자 1면

美의 대소승리를 의미
프럿싱15일발UP조선】UN총회는 14일 조선위원회 설치안을 가결한후 조선점령미소양국군을 내년1월1일까지 철퇴케하려는 소련제안을 부결하였다
이총회행동은 조선에서의 미소양국간 교섭의 정체에 염증이난 미국에 대하여는 쾌심한 승리인것이며 총회는 소련의『뽀이콧트』위협에도 불구하고 43대0으로 이를 가결하였다 소련『뿔록』은 이표결에 참가하기를 거절하였다
소련은 금번총회를 통한 장구한 기간의 토의에있어 제한된 승리를 획득코저 기도하여 종시천편일률한 반대주장을 행하고 외국군대를 철퇴시키고 조선을 UN또는 기타외국의 간섭없이 그들의 정치적운명을 발전시키도록 방임할것을 주장하였다 그렇나 여차한 조치는 소수의 강력한 조직단체가 교사하는 혼돈상태를 제래(齊來)할 소지를 맨드는것이라하여 이에 반대하였다 토의중 미국대표『오스틴』씨는 소련에 대하여 그들이 외국군대가 있는동안 자유선거시행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소련지대에서는 자유선거가 시행되였다고 말하는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라고 말하였다

소(蘇)거부 불구코
소총회안 추진
【뉴욕15일발AP합동】UN총회전체회의에서는 13일야(夜) 소총회설치안을 41대6표로 가결하였다 즉 소련급소련측『뿔럭』5개국은 이에 참가치 않을것을 선언하였으나 대다수국가는 이러한『뽀이콧트』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추진시키기로 결정하였다 권위측소식통은 이에 대하야 다음과같이 말하였다
미측이 소총회에 참석할 권위있는 대표를 필요로하고있음은 확실하나 이대표는『워덴·R·오스틴』씨를 지도자로하는 현 UN미측위원중에서 선정되지는 않을것이며 소총회대표는현 위원과는 별개로 선출될것이며 소총회관계전『멤버』들은 소총회이외에는 현 UN위원과는 하등관연이 없을것이다
이상의 조치의 의도는 소총회대표를 소총회출석과 저촉되는 기타UN에서의 전위원으로부터 자유로운 입장에 두라는데 있을것이다

 

동아일보 1947년 11월 16일자 1면

북조선의 인민
신정부 지지확신
【프럿싱15일발UP=조선】재미한인위원여회대표 임병직씨급임영신여사는 다음과같이 성명하였다
소련급 북조선의 소련괴뢰정권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북조선인민은 모든기회를 이용하여 소련당국이 오는 선거에 그들의 참가를 허락하던않아던간에 이선거를 통하여 선정된 국민정부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이에추종한다는 그들의 의사를 표시하려고 기도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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