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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도 뉴욕타임스의 특파원이라는 말에 구미가 당겼던지 연락원을 통하여 어느날 정오에 정판사에서 쫀스톤 씨와 단독 회견할 것을 승낙하였다. 이것은 나중에 쫀스톤씨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지만 약속한 시간에 정판사로 가서 연락원이 안내해주는대로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앉아 있노라니까 어디서 왔는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박헌영이가 마치 바람과 같이 나타났었다고 한다.”  (김을한, 여기 참사람이 있다, 신태양사, 1960)

 

“박헌영은 내외신문기자를 수시로 만나 해명하기에 바빴었다.뉴욕타임스 서울특파원 존 스톤 기자는 이러한 가운데 14일 오후 박현영과 회견했던 것이다. 박헌영은 이 회견에서 결정적이며 매국적인 발언을 했다.” (박성환, 파도는 내일도 친다, 동아출판사,1965)

 

“우익이 좌익을 매도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또 다른 사건은 1월 5일 박헌영이 외신기자들과의 면담에서 뉴욕타임스 서울특파원인 존스톤에게 신탁통치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었다. 존스톤은 박헌영이 “조선에 대한 소녈의 일개국 신탁통치를 전대 지지하며 5년 후 조선은 소련의 일연방으로 참가하기를 희망한다”고 기사화했다. 이러한 내용이 보도되자 한민당은 즉시 존스톤의 말을 인용하면서 “박헌영을 타도하자”라는 팸플릿을 배포하였다.…이 사건으로 인해 박헌영의 명성은 크게 상처를 입었다. 심지어는 좌익들 가운데서도 그는 조질적인 친소주의자로 낙인찍혔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1월초부터 우익집단들은 공산주의자들을 ‘한국을 소련의 일부로 만들고자 하는 나라를 팔아먹는 소련의 꼭두각시들’로 매도했다는 점이다.” (브루스 커밍스 지음, 한국전쟁의 기원 하, 청사,1986, 김주환 옮김)

 

“1946년 1월 5일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합의된 조선임시정부 수립 방안의 수용 여부를 놓고 국내의 정치세력이 반탁과 찬탁으로 첨예하게 대립돼 있던 때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박헌영은 내외신 기자들과 회견을 가졌다. 이 회견에서 박헌영은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을 절대지지 하며 조선의 현 단계는 소비에트화 단계가 아니라 민주주의 변혁과정에 있다는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 내용은 다음날 <조선인민보> 등에 보도되었는데 박헌영이 늘 하던 이야기를 되풀이한 것인지라 별다른 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지나갔다. 그러나 10여일 뒤 미군정은 보도자료를 통해 1월 15일 오전 7시5분 샌프란시스코 방송이 박헌영이 <뉴욕타임스> 특파원 리처드 존스턴(Richard Johnston) 기자에게 자신은 소련 일국에 의한 신탁통치를 지지하며 장래에 조선이 소련방의 하나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발언했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이 내용을 “조선을 소련 속국으로-상항(桑港)방송이 전하는 박헌영씨 희망”이라는 표제를 달아 크게 보도했다.”  (한겨레21, 2002년 1월 30일 395호)

 

동아일보 1946년 1월 20일자 1면, “뉴욕타임스”엔 오보는 업다,  쫀·스톤씨와 박헌영씨의 회담 진상경위
박헌영씨는 영어로 말해줫다, 취소요구는 상항방송전에 신청

 

지난 15일 상오 7시5분의 상항방송은 조공책임비서 박헌영씨가 지난8일 내외기자에게 소련일국의 신탁통치를 희망하는 동시에 5년내에는 조선이 소련의 일연방화한다는 취지의 담화내용이 뉴욕·타임스에 실린것을 가지고 이는과연 사실인가하고 상항방송원이 격월한 언사의 힐문이잇자 국내각계에서 박씨에게 대한 힐책과 분노의열이 비등하고 한편 조공측에서는 17일 구구한 변명을 하엿는데『뉴욕타임스』특파원『존·스톤』、씨는 18일 하오 3시40분 반도호텔에서 박씨와의 회담경위를 말하여 그진상을 석명하엿다

 

문 박헌영씨와 맛난일이 잇는가
답 지난8일 내외기자단과 가치맛난는데 내 질문에 대하야 박씨는 우리에게 영어로 말해주엇다

문 박씨의 담화내용이 우리국내에서 지금 큰 문제가 되고잇는데
답 국내에서의 문제흥부는 나는 몰은다
『뉴|욕·타임스』는 정확한 사실만 보도하는 신문이다 따라서 내가쏜 기사는 내가 책임지겟다

문 박씨는 현재문제되어 잇는것과가흔 말은 하지 안햇다고 변명하는데
존씨 당신네들은 영어를 잘 알어드르시오
기자 잘모릅니다
존씨 그러면 박씨가 나와는 영어로 말하엿스니 당신네들은 몰랏슬것 아니요

문 박씨는 당신(존씨)을 불러서 이 담화기사에 대한 취소를 요구하엿다는데
답 박씨는 나를 부를 권리도 없고 나는 불려갈 의무도 없소 취소를 원한다면 그것은 박씨가 직접 뉴 욕타임스사에 대해서 하여야 할것이다

문 그럼 그뒤(8일이후) 박씨와는 만난일이 없는가
답 박씨가 나를 차저와서 단두사람이 서로 영어로 전반에 한말을 취소해 달라는말과 재성명을 발표하겟다고해서 취재한일은 잇다

문 박씨는 무어라고 하며 취소를 원하든가
답 내(朴)생각에는 내 말을 잘못알아드른것 가트니 취소해주오 그래서 나(존씨)는 잘못아러듯지는 안햇다고 말한즉 그(박씨)는 그럼 다시 성명하겟다고하여 재성명을 발표하겟다함으로 나는 내손으로 박씨의 재성명서를바더 응낙올 어든후에 다시 타전햇스니 18일부 뉴욕·타임스지 상에는 게재되엇슬 것이다

문 박씨는 무엇때문에 한번한말을 취소햇슬가
답 그건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문 그럼 박씨가 쪼ㄴ씨를 차저온것은 상항방송이 잇기전인가 그후인가
답 기록을 보기전에는 모르겟고 나는 그문제의 상항방송을 듯지도 못햇지만 지난15일 이전의 일일것이라고 생각한다(문제의 상항방송은 15일 아침에 전해왓다)

문 소청박씨의 재성명의 내용은 무엇이라고 햇나
답 그것은 뉴욕·타임스를 보아야 알것이다 그러니까 당신네들이 전번것을 아른방법으로 알수도 잇슬것이다

 

 
동아일보 1946년 1월 20일자 1면, “뉴욕타임스”엔 오보는 업다,  쫀·스톤씨와 박헌영씨의 회담 진상경위

 

동아일보 1946년 1월 12일자 2면

탁치수락철회요구
대표상경、여박(呂朴)양씨에
반탁을 부르짓는 소리 점차 노파가는 지금 지방에서도이반탁에 대한 운동이 봉화가치 일어나고 잇다 지난7일 전주(全州)시에서는 조선독립촉성 전주위원회(朝鮮獨立促成全州委員會)주최로 시내상생국민학교에서 각단체학생 청년단 등 2만여명이 모여 신탁반대 전주부민대회를 열고 여운형(呂運亨)씨와 박현영(朴憲永)씨에게 신탁은 우리양심으로 밧지못하겟다는 결의문을 작성하야 발송하기로 결의하고 이여서 남녀학도들이 혈서를 쓰고 또한 피끌는 열변이있었는데 우리는 한뭉치로 뭉치자 매국적모략배를 물리치자는 기세도노포개 시위행진을 하였다 이번부민대회에서 작성한 결의문을 가지고독립촉성위원회위원 김심원(金心元)씨는 11일아침 입경하였는데 려운형、박현영양씨에게 보내는 결의문은 다음과갓다

결의문
중앙인민위원회려운형씨조선공산당 박헌영씨에게 귀회(貴會)귀당(貴黨)에서 1월3일 신탁통치안을 수락한다는 성명은 민족적 양심으로 용서할수업다 원컨대 귀회는 기과오를 반성하야 즉시해성명의 철회를 전주부민대회의 결의로써 요구한다
대한민국28년 1월7일 전주부민대회

 

동아일보 1946년 1월 16일자 1면

박헌영의 매국언동
한민당에서 배격을 결의
한민당에서는 15일 긴급간부회를 개최하고 박헌영의 이언명은 조선의 독립을 말살하는 매국적행위이라고 규정하고 이것을 전국민적으로 배격키로 결의하얏다

결의
조선공산당책임비서 박헌영이 금월 8일 외인기자단에게 대하야 조선에 대한 소련일국의 신탁통치를 절대찬성하며 5년후는 소련방의 일속방(一屬邦)되기를 희망한다고 언명한것은 조선의 독립을 말살하고 소련의 노례화함을 감수하는 매국행위임으로 본당은 3천만민중과 더부러 전국민적으로 이를 배격함
대한민국 28년 1월 15일 한국민주당

 

동아일보 1946년 1월 16일자 1면

조선을 소련속국으로
상항방송이 전하는 조공박헌영씨 희망
지난 8일 조선공산당책임비서 박헌영은 유피뉴욕타임쓰 등 외국인기자단에 대하야 조선에 대한 소련의 일국신탁통치를 절대지지하며 5년후 조선은 소련의 일련방으로서 참가하기를 희망한다고 언명하였는데 이통신이 미국에 전하야지자 금15일 오전 7시5분 상항방송에는 이 뉴스를 전하는 동시에 과연 조선인은 소련방의 일련방이될것을 희망하는가하는 격월(激越)한 언사(言辭)의 힐문(詰問)이 잇엇다

 

동아일보 1946년 1월 17일자 1면

유·피가 전한
문제의 전문
박헌영씨담 요지
조선공산당비서 박헌영은 신문기자회담에서 알·하|지중장은 진실한 민주주의원즉에 의한 단체는 탄압하고、반동단체에 대하야는 관대한 태도를 취하고있다고 말하는동시에 민주주의적독립조선은 20년내에 소련에 포함될것을 주장하얏다。 그는 또 조선의 소련단독신탁통치를 찬성하나 조선사람 일반이 즉시 소련연방이 되는것을 원치안는다고 말하였다

 

동아일보 1946년 1월 18일자 1면

탁치지지、임정부인
공산당의 소아병적태도
경과발표 안재홍씨
주시하엿든 오당대표회의는 16일 제3차의 회동이 잇섯는데 의연공산당의 확집으로 최종적결렬을 보왓는데 이에대하여 안재홍씨는 다음과갓흔 담화를 발표하엿다
미소공동회담을 압헤노코 오당회의는 적지안케 기대되든편이나 16일 오후3시부터 시내모처에서 제3차로 모이게된 오당대표간담은 공산당측이 끗끗내 신탁통치지지를 고집함에 인하야 드디어 결렬되고 말엇다 14일 오후 단암정모처에서 열린 오당대표회담이 예상보담 수삼일 느진것은 공산당측에서『임정』소집의 비상정치회의를 부인함에 돌아보아 관계측에서 숙의한결과『임정』소집의 관계를 끈허 순연한 민간오당의 발기로 비상국민회의 가튼것을 발기하야 민족전선통일과 과도정권의 자주적수립을 준비코자 함이엇으나 동합석상에서 공산당측은 사당대표회의를 그대로 계승키를 주장하야 신한민족당의 발기당됨을 거부도하고 선결문제되는『탁치』에 대하야는 어데까지든지 전면적지지를 고집하야 탁치반대를 역설하는 민족주의삼당대표들과 서로 양보하지안코 그대로 밤깁허 산회(散會)하엿는데 16일 회합에는 한국민주당은 공산당대표 박헌영씨의 유·피통신과『뉴욕·타임쓰』기자에게 발표하엿다는『조선에 대한 소련일국의 신탁통치를 절대찬성하며 5년후에는 소련의 일속방됨을 희망한다』는 말성되는 문제로 그 배격도중에 잇슴에인하야 처음부터 합석치 아니하엿고 국민당측에서는 종내알선관계도잇서 뒤늣게 참석하엿스나 공산당측에서 여전히 신탁지지를 고집함으로 토의의 필요도 없다고 인정되여 그대로 산회하고 말게되였다 인민당측은 14일 회합에서부터 지난 사당『큼미니케』의 정신을 좀더 명백하게 들어내어 삼상회의에서 조선의 자유독립국가건설을 원조하는것은 지지하나 신탁통치는 반대한다는의사를 명백하게 표시토록 문구수정을 주장하엿으나 그것도 공산당측의 반대로 도로에 그첫다

 

동아일보 1946년 1월 18일자 1면

오해이냐 왜곡이냐
1
작년 12월 3일부로 미국『뉴욕』에 잇는 『국제 뉴스위크』지가 소련은 불원간 북조선해안에잇는 원산청진량부동항에대한 특별권리를 요구하게될것이 예상된다 운운의 기사가 게재되엿다는 보도가 입전되엿고 또 동12월 27일로써 종료된 막부의 삼상회의에서 조선에관한 신탁통치제가 결의되엿다는발표가잇은 이내 우리민족의 신경은 극도로 흥분긴장된가운데 이민족적굴욕인 탁치반대열은 날로 고도화되고 잇거니와 이 막부삼상회의의 결의에 의하야 개최되고잇는 조선현지 미,소양주둔군대표회의에 우리 삼천만의 시선은 집중되게 되엿다。
2
그런데 이처럼 흥분과 긴장과 관심이 집중되고잇는 형편인지라 우리삼천만의 신경은 극도로 첨예화되고잇는 때도때 작15일 조선공산당책임비서 박헌영씨가 유피뉴욕타임쓰등 외인기자단에 대하야 조선에 대한소련의 일국신탁통치를 절대지지하며 5년후 조선은 소련의 일련방으로서 참가하기를 희망한다고 언명하엿다는 통신이 미국에 전하여졋다는 상항방송이 전파되게되매 애국지성으로 오르지 자주독립만을 염원하는 우리민족의 분노가 경일층격동(更一層激動)되지 안을수없게 된것이다。
3
박헌영씨는 여상미상항방송(如上美桑港放送)에 대하야 사실아닌 『떼마』를 언어관계로 오해가 되엿는지 그러치안으면 고의로 왜곡하엿는지 몰은다고 하엿고 동시에 조선에서는 사회주의건설이니 소련즉시편입이니 하는것은 결코 올치못하다고본다 라고하야 이를 변해함에 이르럿거니와 이제 그변해의 내용과 유피가 전하엿다는 통신의 내용과는 너무도 격차가 심하니 그어느것을 신빙함이 올흔가하는 확실한 근거를파악할 길이없다 그리고 박헌영씨는 그 개인박헌영씨가 아니라 공책임비서라는 자격으로 외인기자단을 대하였을것이매 조공으로서 탁치문제에 대한 태도가 탁치를 절대지지하기 위하야 반탁운동으로 대중을 선동하야 반반탁의 기만적대시위운동까지를 감행하였다는실천적사실등과 유피의 통신내용과를 결부하여볼때 박씨의 변명만으로는 유피통신원의 오해라고만 들리기에는 그 신빙성이 박약타하지 안흘수없으며 설사 백보를 양하야 이를 오해라고 하드래도 적어도 이 중대신탁문제에 관한한 조공의 지도자 박씨의 외인기자단에 대한 언명 그자체로서 그오해의 책임을 져야할것이 대중운동지도자로서의 양심일것인 동시에 또한 조공으로서도 이에 대한 책임적태도를 명백히 하지안흐면 안될것이다。

 

동아일보 1946년 2월 19일자 1면

미국기자와 박헌영씨의 문답
정확한 사실임이 조사로 판명
군정청공보국 발표
일미국인기자에 대한 비난을를기 위하야 다음의 기사를 발표하는 바이다 지난 1월26일 박헌영씨는 유육(紐育)타임스지 기자 존스톤씨를 조선으로부터 방축하기를 요구한다는 공문서를 서명날인하야 미군사영관에게 제출하얏고 동시에 조선인기자 수명도 존스토씨에게 대한 비난서에 각각 서명하였다 즉 박씨는 1월5일 기자단회현석상 자기가 발표한 성명서중에 존스톤씨는 완전히 공산당당수의 성명을 오해하야 인용하얏다는사실을 특별히 비난하얏다 미군사령관은 이비난을 대단히 중대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백반조사를 시켯다 조사한 결과의 사실은 다음과 같다 조선공산당 정식대변자로 박씨는 1월5일 기자단회견에 미국인기자를 초청하였다 3명의 미지특파원 존스톤씨 마속크씨 콘월군조는 미군사영부 피·알·오장교 턱카대위와 동반하야 정식으로 기자단회현에 출석하였다 미국인기자회현석상에서는 모다 영어를 사용하였다 당시기록한 턱카대위와 존스톤씨의 수기중에는 질문한것과 대답한것이 있는데 그내용은 정확한것으로큰월군조도 기후에 그정확성을 인정하였다 즉 박씨와 조선인기자의 비난중에 인용된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질문(존슨톤)조선을 소련일국의 신탁통치로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케 생각하는가
대답(박씨 영어로)나는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이의가 없다 즉 우리는 소련일국신탁통치에 이의가 업다

질문 장내조선의 정치적발 전과정에 대한 의현여하
대답 우리는 소련화한 사회주의적 노선에따라 10년내지 20년안에 자주독립민주주의국가로 발전되기를 바란다

질문 이것은 결국 가까운 장래에 조선을 소련방의 일연방국으로 하고저 조선을 소련화하게 되는것이 아닌가
대답 그러타고 볼수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불가능하다

질문 왜 지금은 불가능하냐
대답 현재조선인은 이것을 조와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지리적으로 보아서 지금 소련방에 포함되는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기자단회현석상 영어로한 중이상이외는 박씨가 하│지장군이『조선의 진정한 민주주의정신』을 억제한다고 하며 하|지장군을 적극적으로 공격한것이 대부분이 였었다고 출석한 미군인기자들은 승인하였다 존스토씨의 회현전내용을 송신하였으나 뉴육에 송신중 일부만이 선택되였음으르 전내용은 발표되지 않엇다 박씨가 존스톤씨의 사유문서를 어떠케 알게된는지 모른다 이것은 존스토씨와 뉴육타임스지의에서는 발표되지 못한다 그러나 조사중 존스톤씨는 조사재료로 이 기자단회견에 관한 발표되지않었든 기사를 제공하였다 박씨와의 문답내용의 인용문은 여기에 발표한바와 같으며 당시 참석한 다른 신용할만한 미국인의수기나 발표에 의하야 증명되였다는 것이다 박씨의 기자단회현이 있은 몃일후 쫀스톤씨는 1월5일 발표한것을 박씨가 부인하였다는 다른기사를 썻는데 그것 은이미 뉴육타임스지에 발표되였다 그럼으로 전술한 기사를 보아서도 쫀스톤씨는 1월5일 박씨의 발표중에 박헌영씨와의 회현내용을 잘못인용하얏다는 중대한 책임을 면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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