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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oryⅡ 81 : 기자협회 지방순찰대

Posted by 신이 On 6월 - 3 - 2013

“과도정부하에서 기자들은 다시 분열됐다. 47년 8월 동아일보를 필두로 민중일보, 현대일보, 독립신문, 부인신문, 대한일보, 중앙통신 등 7개 신문사 기자들은 좌익 기자들이 주도하는 기존 조선신문기자회에 대항해 별도로 ‘조선신문기자협회’를 결성했다. 위원장은 동아일보 고재욱이 맡았다. 우익언론을 표방한 이들은 수도경찰청 출입기자회를 탈퇴, 별도의 출입기자단을 조직했다.” (동아일보 80년사, 동아일보사,2000)

 

동아일보 1947년 8월 22일자 2면, 기자협회위원회

조선신문기자협회위원회에서는 19일 하오5시 동아일보사(東亞日報社) 회의실에서 위원장 고재욱(高在旭)씨 사회로 제2회 위원회를 개최하야 9월에 알릴 정기총회를 전국대회로 확대할것과 호남 영남의 남조선지방에 조사단을 파견할것 등을 결정하고 상무위원의 발표가 있었는데 결정된 부서는 다음과 같다

◇총무부 부장∥김광섭 부원∥노일환、이용규、최약한、최재웅、최태응、이동윤、정홍거、신창□
◇선전부 부장∥이용시부원 ∥최약한、정□□、부준현 이명효、구상、이동윤
◇조사부 부장∥노일환부원 ∥김삼규、채기은、양우정 양명복、박용덕
◇사업부 부장∥정홍거부원 ∥이태준、신창□、한응나 류위

 

동아일보 1947년 8월 22일자 2면, 정확한 민정보도, 신문기자협회서 지방시찰대 파견

남조선방방곡곡을 차저 만정을 살피는 동시에 그들은 무엇을 어떠케하고있으며 또한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를 실지에탑사견문하야 공정한 여론을 일반에 전하고저 조선신문기자협회에서는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에 신문기자로서 조직된 시찰대를 파견하기로 되었다 그런데 영남반은 8월 25일 호남반은 몽28일경 각각 서울을 출발하기로 되었는데 기간은 일주일 예정으로 동기자협회에서 방금 착착준비를 진행중에있다

 

동아일보 1947년 9월 5일자 4면, 신문기자협회 시찰대 남조선 현지보고-영남반

 

동아일보 1947년 9월 3일자 2면

기자협회시찰대
영남반귀경
지난 8월 25일 서울을 떠난 경상남북도 지방의 민정을 시찰한 조선신문기자협회 영남시찰대일행 6명은 1일 하오7시 서울역착 열차로 무사히 귀경하였다

 

동아일보 1947년 9월 5일자 4면

신문기자협회 시찰대
남조선현지보고
영남반
정용수특파원
부녀자와 어린이를 선두에
습격시의좌익상투술책
농민은 맹목적으로 순종

농민은 순박하고 허욕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과거 일제아래에서 57종이나되는 그흑독한 공출에도 견디고 참으며 먼|조상으로부터 이어나온 내땅 내고장을 직히며 오직 진실한「삶」의 길을 차저왓던것이다 그러나 착취에만 허덕이던 일제의 식민정책으로 말미아마 우리의 농민이 문화와 교육의 헤택을 받을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어둠속에서 무지(無智)한 채로소위 해방을 마지하게 되었던것이다 5천년역사를 자랑하는 20세기의 이땅 이민족의 8할을 차지하고 있는 농민이 이처럼 무지하다는것을 생각할때 우리는 다시금 그악착한 왜정에 대한 격분을 금치못하는 바이거니와 소위 해방이후 이러케도 순박하고 진실한 농민의 무지를 기화로 표면으로는 농민을 위한듯 가진음모와 흉게를 꾸미어 농민을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소위 좌익게렬의 선동분자를 저주하지 않을수없다 만일 인민을 위한다는 그들의 선동이 없었드라면 아직도 종막을 짓지못한 10·1사건 5·1사건을 비롯한 영남일대에 극화한 대소의 폭동이 일어나지 아니하얏스리라는것은 후세의 사가(史家)가 구지 증명을 하지안트래도 이제 산기록으로서 역력히 반증할수있다

그들 선동분자는 농민에게 무었이라고 부르짓고 있는가 땅을 준다 돈을 준다 식량을 배급한다 듣기만해도 귀가 번쩍따이는 소리뿐이다 우물가에서 냉수를 마시듯 손쉬웁게 거짓선전을 하야 농민의 마음을 휘여잡을때로 잡은다음에는 축창(竹槍)을 맨드러 자위를 해라는 등의 지령을 내리는 것이다 지난 23일 현재로 경북은 50퍼|센트밖에 하곡수집을 보지 못하얏다한다 물론 오랜장마에도 성적이 불량 그원인의 하나있지만은 농민은 공출준비를 마치고도 공출을 주저하고있는 까닭이다 즉농가에서는 자가수요량을 제하고 공출할 하곡을 가마니에 너허서 뜰앞에 내어노코 공출수집원이 집어가기를 바라고 있는것이다 이것은 무엇을말하는 것이냐?다같은 민족을 위하야 공출을 하기는 해야겟는데 서뿔리 공출을 했다가 작년 10·1사건 그리고 또얼마전의 구타사건 등의 경험에 비추어 불의의 화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 하는것이 그들 농민의심경이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영남일대의 농가에서는『하곡수집원이 나온다』하면 가마니에넌하곡과색기를 뜰앞에 준비해놓고 온가족이 피해버리는것이다 오른길을 밟고 오른일을 하면서도 떳떳한낫을 세우지못하는 오늘의 농민의 얄구진 운명은 동정하거니와 과연 누가 그를 그러케 하였을까 하는것을 생각할때 체내에 흐르는 혈액이 갑짜기 역류하는것같다

그리고 지금 다른고장은 모르겟으나 적어도 기자의 눈으로 보고온 영남농가에는 왜정시대의 방공도구대신에 죽창의 준비가 되어있는것이다
먹고 남은식량은 누구를 줄것인가 죽창은 누구를 어찌할 작정인가-도저히 이해키 어려운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작난을 용이하게 어느때나 한다 8월 15일의 초게(草溪)지서습격사건 8월 19일의 연초(延草)지서습격사건 8월 7일의 대산(大山)지서사건 7월 27일의 양보(良甫)지서습격사건 등등 무수한습격사건은그들의 죄악사를 말하는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사건의 방법과 순서가 너무나 공통되는것은 좌익지령에 의하야 맹목적으로 움지기는 좌익식전술이라고 하겟다 폭동을 일으키기전에는 대개 진정을하고 빈틈마다 삐라를 써부친다 다음에는 선동을 한다 그리하야 인심을 극도로 흥분시키고 지서로 몰려가는 것이다 또한 좌익식이라고 탄복하게 하는것은 그들은 습격사건이 있을때마다 최전렬에 순진한 어린이를 내세우고 다음렬에는 부녀자 그다음에는 노인과 일반청년 그리고 최후렬에 소위 선동、파괴분자가 둘러싸게 된다 그러기때문에 경관은 눈앞에 군중이 몰려든것을 보면서도 제지할 도리가 없다

경관도 사람이거늘 죄없는 어린이 부녀자를 향하야서는 발포를 하지못하는 인정심리를 이용하는것이 그들의 유일한 전술이다 이러케 몰려든 어린이 부녀자는 제각금 경관의 양팔양복저고리 허리를 부뚤고『나리 이번만 용서해주세요』하는식으로 매여달린다 이러케 매여달린 다음에는 뒤줄에선분자들이 총을잡고 씨름을하게되는것이다 경관이 총을 빼앗겻다는 소리를 들을때 너무나 비상식적임을 지적아니할수 없으나 총을 빼앗기는것쯤은 영남에서는 상식화된일이다 아모리 무지하고 순박한 농민으로서니 그러케까지 번번히 그들파괴분자에 속아넘어갈까-의심스러우리만큼 그들농민은 순박하고 무지한것이다 이런사태가 도시와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만큼더 빈번하고 정도가 심한것이다 즉 다시 박구어말하면 문화와 교육의 헤택을 받지못하면 못할수록 그만큼 쉽사리 농민은 모략의 함정에 빠지는 선동의 제물이 되는것이다 이것을 반증하는 재료로서는 작년에 실시한 인기투표의 결과 산간벽촌의 경찰지서습격사건 폭동사건등 허다한것을 들수있거니와 지금 당장에 수자적으로 뚜렷이 나타난 지방별의 공출성적을 보면은 뚜렷이 들어나고있다 그리고 또 작년10·1사건의 중심지였던 영천(永川)면은 작년은 물론 일제시대에도 가장 공출성적이 불량햇섯는데 금년에 들어 도내최고의 공출량에도 불구하고 제1위로 백퍼센트의 공출을 완납햇다는것은 실지로 자기자신들이 쓰라린 경험으로서 모략과 음모를 간파했다는것과 계몽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어두운 농민의 눈이 밝어저간까닭이라고 하겟다 때는아직도 늦지안하다 지도자 위정당사자여러분에 고하나니 오늘의 조선의 임무는 첫째도 농민계몽 둘째도 농민계몽 셋째도 농민게몽임을 자각하고 지금 이시간 이순간부터서라도 농촌으로 뛰여들어가지않으면 안될것이다

 

동아일보 1947년 9월 7일자 2면

기자협회 시찰대
남조선 현지보고
(3)
정용수 특파원
가로수에 불온삐라
박동무의 지령이라면
맹종하는 인민의 오산

부산(釜山)에서 마산(馬山)을 경유한 진주(晉州)까지는 시속25마일 평균정도로 달리는 추럭으로 네시간 내지 다섯시간이 걸린다 그다지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기자는 이곳을 여행하며 그 머|나먼 신작로 양편에 10메|터|정도의 규를적간격을 두고 빗살같이 늘어선 도로수에 하나도 빠짐없이 한장이상의 삐라가 부터있는것을 발견하였다 평탄한 길가의 도로수만에 부터있는것이 아니다 하로에 몃사람이나 지날까하는 호젓한 높고 험한 재(峠)에도 부터있는 것이다 대구(大邱)를 조선의 모스코바화하려는 10、1사건실패(?)에 뒤달은 경상북도의 경찰진강화와 아울러 민중의 자각으로 말미아마 그들 좌익게렬이 그선봉을 경남으로전환하고 있는것을 여실히 말하야 주었다 이곳을 지나는도중 차에서 내려 몇몇장을 뜨더보았으나 8·15기념행사에 대한 내용인듯하니까 부친지 얼마안되는듯하는데 기자의 상식과 학식으로는 그지면에 무엇을 썻는지 도저히히 알어보기가 어려우리만큼 악필인 동시에 문장의 전후관게를 알어볼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러한 산간벽촌에 써부친것을 짐작하면 일반농민대중에게 읽히자는것이 목적이라고 하겟는데 지식인연하는 기자가 알어보기 어려울 정도인것을 볼때 기자는『이것을 농민이 알어볼까?|』하는 노파심을 금치못하는동시에 지령(指令)절대주의를 새삼스럽케 지적할수 있었다 인민은 알던 몰으던 어찌 되였던 간에 박(朴)동무의 지령이면은 맹종아니치못하는 기구와 조직은 실로 독재(獨裁)전단(專斷)정권을 꿈꾸는 흉게와□모가 내포한것으로 민주주의국가건설에있서의 장애물인동시에 해방조선의 비애일것이다 이□는 따로히 그들은 영남일대의 농가에 박모(朴某)라 쓰인 연필을 분배하고 있는것을 보면 입으로 총선거를□대하며 그실은 총선거를 □착준비중에 있다는 사실을 전파해서는 커다란오 산(誤算)을 초래할념려가 없지않다 □하간 그들의 정열과 노□□은 우리가 고가로 평가아니지 못할것이다 그러면 민족진영의 운동은 어떤가 대립적입장에서보다 보선법실시를 앞두고 중대한 관심사가 아닐수없다

독립은 이승만 박사와 김구(金九)선생의 두분이 시켜주는것으로만 알고 있다는것이 이제까지의 속힘없는 관념이 아닌가한다 기자가 찾은 영남의 중요도시에 거의 다조직되여있는 정당 사회단체의 지부간부는 서울에 있는 모모지도자에 얼굴을 의혀두는것과 모모회가 조직될때 어떤의자를 차지하겟다는것이 그들의 정치활동보다 소중한것같은 느낌을 주는 경향이 없지않다
정치는 힘이다 그힘의 근원은 어떠한 위대한 지도자가 선천적으로 쥐고 있는것이 아니고 국민개개의 모|든사람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독립을 차지하려면은 방방곡곡에 흐터저있는국민각자가 제각금 힘을 양성하지 안흐면 안될것이다 이러케 양성된 3천만의 힘을 모아 싸우고 지도하는것이 이승만박사요 김구선생이라는것을 지방지도자는 알어야 할것이다
영남반

 

동아일보 1947년 9월 12일자 2면

남조선현지보고
기자협회시찰대
무자비한 인민항쟁
금년들어 폭동방화등
전북에만 99건
호남반
본사특파원 한오혁

조선민족의 참된정의와 양심에서 우러나는 자주적이념으로 공정한 여론을 지도하고 아름다운 민족의식을 선양하야 완전자주독립에 이바지하려고 결성된 조선신문기자협회에서는 이미 영남지방에 시찰대를 파송하야 현지의 착잡한 실정을 들어 각신문지면을 통하야 천하에 보도한바 있었거니와 호남방면에 파견되였던 시찰대도 그소중한 임무를 끝마치고 귀임하야 각각 소속된 신문지면을 통하여 현지에 참산한동정을 소개하기로 되였다
순박한 이땅의 농민 노동자와 혈기미정한 학생청년들에게 부모를 미워하고 형제를 의심케하는 모외국식 허위와모략과 선전선동을 꾀하야 영남지방을 무법상태로 만들고 수만흔 생명을 살상하고 굉장한 재물을 파괴 또는 방화하야 일시국내동포들로 아여금 전률을 느끼게 하든 저 십일폭동사건의 여파는 호남각지에도파급되여 간헐적으로 폭동소요테로등 행위가 공공연하게 감행되든 자최를 더듬어볼때 조선의 실정을 무시하고 또한 철저한 정치성격을 결여한 행정과치안을 담당하여온 군정과 민정책임자들의 무신념 무기력을 새삼스럽게 규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금년 1월부터 7월말까지의 사이에 전라북도에서 만도부안군(扶安郡)하의 24건을 비롯하야 전주(全州)의 16건 정읍(井邑)의 12건 임실(任實)의 11건등 무려 99건의 폭동테로등 사건을 비저내였고 그대부분이 민전(民戰)산하에 소속한 남노당 민청게열의 행위였던것으로보아 얼마전까지 서울을 비롯하야 지방각지에 뚜렸하게 간판을부 치고 행정과치안을 어즈럽게하든 총본부인 남노당 민애청 전평(全評)전농(全農)등 단체들의 무자비한 소위 인민항쟁을 소극적으로 막아보려고하든 무모한 정책의 완전한 실패를 거울삼아 지금은 중앙과 지방각지에서 반민족적불순분자들이 차레로 철창에 가치고 지위와 권력을 이용하려든 반역자들도 뒤이어 참회의 시간을 가찌게된것은 참으로 반가운일이다 그러나 가을서리(秋霜)를 마진 메뚜기(皇蟲)의 무리가 되여버렷다고 속단할수는없는 정세로 벼츨따라 또는 그늘에 숨어 아직도 그악착스러운 손길이 평화스러운 이땅의 농촌과 공장지대에 숨어들어 최후적인 발악을 시험하고 있는중으로 행정치안당국의 부단한 창의와 노력이 절대적으로 요청되거니와 그와동시에 민족적인정당 사회단체에서도 상하종횡으로 긴밀한 연락과 협조로 완전히 그들의 모략과 선전선동을 분쇄청소하고 오직 명람하고 건전한 우리고장을 건설하는 전민족적 지상과업으로 씩?하게 추진하여야 할것을 굼게맹세할 중대한 민족의성스러운 새벽이 밝어오는것을 이저서는 안될것이다(게속)

 

동아일보 1947년 9월 13일자 2면 

남조선현지보고
기자협회시찰대
호남반
본사특파원 한오혁
(2)
청일색의 호남평야
농촌은 파괴에서 건설에
평화의노래 불안을 일축

이땅의 순박한 농민들의 땀과 정성으로 무럭무럭 자리난 호남평야의 벼는 자못 풍성하게 이삭을 드리우고 가벼운 바람결에 청일색으로 물결치고 있으니 이곳저곳에 새모리꾼으로 세워노흔 허수아비조차 이들관을달리는 호남선열차의 수만흔 손님에게 익어가는 가을의 살진우슴을 머금게한다
이강산의 우로를 마시며 자라난 농민과 아울러 이땅농우 (農牛)의 힘은 과연 위대한 것이다 해방이후의 혼란으로 소를 함부로 잡어먹어 금년에는 소한마리의 경지부담면적이 2만5천평으로 증대되여 춘경과 파종그리고 모내기에 적지안흔 불안을 던지게 하였으나 이넓은 평야에 모를 내지못한 손바딱만큼 적은 땅도 볼수없는것은 실로 우리농민들의 초인잔적 노력을 말하여 주는것으로 이제까지 남의 이윤 (利潤)을 축적하기에 온갓 정성과 노력을 바처오든 농민들의 이마에 주름쌀이 펴지게되고 안윽한 농촌은 평화의 나래속에 잠겨 농민의 절대적 승리를 노래하고 있다

우리고장은 산이 만코 벌판이 좁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땅이 기름지고 기후 또한 온화하야 인민의 7활이 농사로서 그생업을 삼고 신생조선조국의 부강평화한 농촌을 건설하기에 선량한 정성을 이바지하고있거든 반민족적불순분자들은 토지를 무상분여한다 또는쌀의 특별배급과 고무신광목농구비료 등 심지어 담배배급까지 한다고 사실과같은 엉뚱한 거짓말로 농민을 동원하야 주먹과 몽뭉이로 위협하며 고추가루봉지와 흉기를 다눠주고는 경찰을 습격하는것이 상투수단으로 농촌도시 공장등을 파괴소란케하고있으니 이런무리들을 이하늘 아레에두고 어찌 민족만대의 번영과 복리를 꾀할수 있을것이랴?

작년에도 하곡과추곡수집반대운동을 이르켜 농민들을 선동위협하야 생각만하여도 몸서리치는 10·1영남폭동사건을 빛어내였으며 비농가식량의 배급사정을 군색하게 하였던 것이지만 농민들도 차침불순 분자들의 선동이 허위와 모략인것을 깨닭게되여 전라북도의 하곡수집은 이미 8월중순까지에 1○○『퍼|센트』를 돌파하였으며 전라남도도 9월중순까지에 그수집을 완료하게 되였으며 추곡수집도 아직 확실한 할당량이 결정되지 않었으나 적당한 할당량만 된다며 이또한 농민들의 자진적 협력을 얻어 훌륭하게 소기의 성과를 거두리라고 전라자신 남북도지사는 각각있게말하고있다 그러나 수확기이전에 지방실정에맞는 적당한할당이 있어야 할것으로 그시기를 일허버리게된다던지 또는 너무과중한 할당량이 있게되면 그책임수량을 수집하기는 곤란할것으로 금년의 농형은 모내기를 필한후 게속하야 1개월이상 장림(長霖))이 지루하고일조(日照)시간이 전혀 없었던 관게로 그발육과 성장이 조치못하야 평년작에 비하면 전북은 8활 전남은 7활6부의 수확량을 예상하는 형편으로 앞으로 쾌청한 날씨가 게속하면 작년농사보다는 훨신조흔 수확을 기약할수 있을것이다

 

동아일보 1947년 9월 14일자 2면

남조선현지보고
기자협회시찰대
호남반
본사특파원 한오혁

민족의갈길 오직하나
관리의 박약한 신념은
건설에의 의욕을 감퇴

1945년 8월15일은 과연 누구를 위한 해방이였던가?왜놈들의 40년 폭정에서 겨우 그실튼 굴레를 버서난 무궁화의동산 삼천리강산의 주인공인 우리겨레 3천만은 38선장벽으로 남북에 나누이고 미소양군이 진주한덕분으로 사상이 좌우중간등으로 갈리어 골육이 상쟁하는 도탄과 혼란은 날을 따라 느러가고 있으나 하등의 정책과 방략이 없으매 국제정세의 복잡미묘한 동향과 아울러 비분강개의 이땅이 겨레들의 염원은 무엇일것이며 지향할 방도는 과연 어떠할것인가?
확고한 신념과 실천력이없는정치운영은 두터웁든 인민들의 신임과지지를 스스로저버리고 안녕과질서까지노문란케하는 결과를가저올것은 너무나 평범한 상식으로 오늘조선의당면한현실이 이모든것을증명하는바라 할것이다
미군정하에 있는 남조선과도정부는 독립정부가 수립될때까지의 과도적존재이라 이에 소속된 관공리들의 신념이 박약하고 또한 고식적이며 미온적일것은 들지않어도 가히 헤아려 알것이아닌가?
그러나 조선국가의 완전독립을 염원하고 민족만대의 번영과 복리를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고 또 그러한 행정의 실천을 꾀하려는 기백이 있었던들 벌서 제2 제2의 민충정공(閔忠正公)과 제2 제3의 이준열사(李准烈士)가 배출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야 침체된 국민의 사기를 진작하고 세게대세에도 크다란 파문을 던질 용기를 고취할수 있었을것이 아닌가?

우리 호남지방 시찰반일행은 전라남북도 행정부면을 살펴보고 이러한점을절실어느까지 않을수없다 이것은 비단 전라남북양도에만 국한된 일이 아닐것으로 중앙청을 비롯하야 각도의 실정이 대동소이할것이매 앞으로 책임있는 행정이 강력하게 추진되여야 할것이다
더구다 말단행정이란 그사람을 얻음으로써 비로소 지향하는 소기의 성과를 것을수 있는것이므로 양행(洋行)을하야 외국어를 안다전지 목사나 장노라고 하야 정치적식결과수완을 무조건 기대할수는 없는것이다
반민족적 볼순분자의 숙정산업경제의 징흥발전 전재동포의 구호안정 성인교육의 철저수행동 만반행정이 전체인민의 복리촉진을 목표로 청변적박력과 노련한 아량으로 오직 한길을 향하여 나아갈때 이땅은 참으로 명랑한 고장이 될것이다
제아모리 민주주의라고 하더라도 그때와 장소에 따라 성과를 올리기위한 강력한 조치를 취할수 있어야할것으로 차침 이러한 방향으로 행정과 치안 방향이 변전하여 가고 있음을오늘에 엿볼수 없는것은 아니로되 그러다 아직도 철저하지안흔 부면이 허다하게 남어있고 또 이것을 더욱 활발하게 운영하여 가는것이 현하당로 책임자들의 과업으로 곡창(穀倉)전라남북도의 과감한 실천을 기대하는바 크다

 

동아일보 1947년 9월 17일자 2면

남조선현지보고
기자협회시찰대
호남반
본사특파원 한오혁

이념은같고 성격이달은
정당、사회단체의 모순
조직활동의 강력한 전개요망

전라남북도의 민족진영 정당단체들의 활동상황은 과연 어떠하였던가
각지방의 특수사정에따라 그활동이 활발하고 또는 침체상태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미 지난 8·15를 게기로 과괴적 인민항쟁을 재연하려고 민전산하 각단체의 음모와 흉게가 사전에 발각되여 반민족적불순분자들은이미 철창에서 참회의날을 보내기도하고 혹은 심산고도로 스스로 귀양사리를 떠나간후이며 기대하든 보선(普選)을 앞둔때이므로 민족진영 각정당사회단체의 활발한활동이 중앙과 지방을 통하여 크게 기대되는바있지만 민족진영에는그이념이 같으면서도 성격을 달리하는 정당과 사회단체가 있어 서로 상대방을 견제하며 합류협력함을 고려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그 전통적인 조직과 선전계몽의 수단방법 내지 전략과 전술이 아직도 보수적 영역을 버서나지 못하고 있음은 심히 유감스러운일이 않일수 없었다 우리 기자단 일행이 전주(全州)에 들어가 처음으로 국민회애국부인회 한민당 한독당청년연맹등 책임자들을 찾어 지나간날의 업적과 금후의 전망에 대하여 가슴을 털어노코 이야기하였으나 포부와 열성과 역량이 있으면서도 상호협력하여 민중의우에 조직을 가지고 또 민중의 속에 깁히 들어가 민중과 함께 호흡올 하며 게몽과 선전과 세포조직의 강력한 운영을 꾀하야 반민족적 불순분자들의 백가지선전과 천가지모략도 마이동풍(馬耳東風)격으로 아무런 성과를 걷울수없이할 필사적 실천력이 부족함을 느끼었다 다시 남원(南原)순창(淳昌)정읍(井邑)광주(光州)나주(羅州)목포(木浦)화순(和順)여수(麗水)등 각지에서 역시 민족진영정당 사회단체와 또 행정치안당국자들과 접촉하는 기회마다 각자의 또는 관연적활동상황을 듯고 또 보앗지만 앞으로 실시될 보선에서 과연 얼마나 한 민중의 신임과 지지를 받을수 있을것인지 적지않은 의아를 품지않을수 없었다

더구나 순창과 같은데는 지도자들의 무력으로 국민회는 해산동양의 상태에 있었으며 청년단체역시 명색만이 남어 있을뿐이였다 그러나 남원의 독촉청년연맹과 정읍촉진대의 활동은 미덤칙한 성과를 과거에도 남기었거니와 앞으로 성인교육의 실천으로 더욱더 농촌에 두터운 히망을 갖게되고 크다란 힘을 얻을수있으며 또 꾸준한힘을 이바지하고 있음을 보게됨은 실로 시원스러운일이었다
앞으로의 보선에있어 중앙과 지방이 긴밀한연락을 가져야할것은 물론이거니와 중앙은 중앙으로 지방은 지방대로 또한 횡(橫)으로의 협조를 돈독하게하야 난립(亂立)될 염러가 없게하고 조직적으로 선전과 게몽에 힘써 인민들의 총체적인 신임과 지지를 얻도록 하여야 할것이다 그러치못한다 할진대 중간파와 반민족적민전게가합류하야 민족진영에 협격도전하여올것을 각오하여야 할것이다(게속)

 

동아일보 1947년 9월 18일자 2면

남조선현지보고
기자협회시찰대
호남반
본사특파원 한오혁

기회를 노리는 비지도자
추파만 보내며 우왕좌왕
진지한 건설적지도자되라

우리기자단 호남반일행은 서울을 떠나 기차로『쓰레코러|』로 대숩(죽림(竹林))욱어진 남국의 안욱한정서를 맛보며 목포와 여수로 일본을 건너다보는 나무까에서 배도 저어보며 왕북 2천6여리의 길을 달리며 십여일동안 이르는곳마다 행정치안관게당욱과 민족진영청당사회단체대표자 그리고 실업게유지들로부터 분에넘치는 환대를받고 지방에 대한 진지한 건설적의욕에 넘치는 그고장의 부르지즘에 귀를러우될기회를갖였음에 서로 감격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8、15이후 언론출판집회 결사의 자유를 악용하는 반민족적 불순분자들을 소위 인민공화국산하에 두고 사실과같은 허위의 모략과 선전을 ㄲ히여오돈 여파가 아직도 도처에 남어있어 잠교대와 같은 독갑이작난이 나타나는때이라 진정한사실을 충실하게 보도하고 민족의 지향하는 여름을 국제적으로 선양하야 참된조국의 완전자주독립에 이바지하려는 숭고한 목적을 표방하는 조선신문기자협회 파견의 기자단을 처음마지하매 각지방의 기대가 크고 그마줌이 장할것은 무리도 없는일일것이다 반세기(半世紀)가까운동안 가진 풍운속에 강도일본의 폭압으로 정치적교육과 그경험 또는 식견에빈약한우에 지금도 통역(通譯)행정을 운영하고있는 마당이라 마치막 가는길은 움직하나이면서도 도중에서 기회를 노리는 동포형제가 만흔것을 이시대의 소치이라고 하기보다 투철한신념이 박약한데 기인함이라할것이다 반민족적집단에 재물을 제공하고 추파를 보내는가하면 민족진영 정당단체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어들어름하는 친구들은 앞으로 좌익어느쪽으로 서든지 부터볼나위도없이 무인고도로 귀양사리가는 보따리집짝을 지금부터 마련하여 두어야 할것을 이저서는 안될것이다 살인 강도 상해 방화 강간 공갈 협박 가산파괴등 가장과염치예속하는 도배들을 인민영웅이라하고 국경일에는 감형석방케하는 오늘 조선의 법치도 괴상하려니와 뭉게상 수로서절대다수이고 질로제일 잔악한폭행을 가한 좌익보담도수에 있어서 절대로적고 질에있어서 정당방위정도로한것이 늘상 말성을 이르키게 되는것은 민족진영의 선전기능과 기술이 부촉한것으로 전북에서 경찰관모집시험에『데로』란 우익이좌의을때리는것이라고 해답을쓴 순경후보자가 있었다는것은 무엇을말하는것인가?

그리고 행정치안당로자를은 엄정중립을 표방하지만 오늘 조국에 정세는 진실로 중립이 있을수없는것이라고 민간관부자들은 입을 같이하야 부르짓는 소리에 관게당국은 어떠게 대처할것인가?
필자주(筆者註)지면관게로 호남시찰기는 이로써 끝내려하며 유달산(儒達山)아래에 자리잡은 설음만흔 목화의 나루터 목포의 설음은 언제나 가시개될것이며 1천7백여개의 크고적은섬을 가진 남해의 치안을 확보할 정비선은 언제나 운항되고 여수(麗水)의 개항장지정은 몇날이나 걸릴것이며 화순탄광에 아직도 남어있는 불순분자는 언제나 숙청될것인가?우리기자단이 통과한 각지방의 발전이 이땅이민족의 귿은단결과 억센신념으로 이루워질때 태극기 휘날리는아래 무궁화송이송이 곱게피는 이동산에 만세소리 우렁찬 세기의 새역사의 새벽은 밝어울것이다(끝)

 

동아일보 1947년 9월 24일자 2면

철(鐵)의 장막
38선답사
북조선인민은
기자협회 시찰대보고
김호진
본사특파원
남조선정부수립을 기대
이박사·김구씨는
삼척동자도 알고있다
기자는 동수용소 소장의 알선으로 수용소에서 월경상황과 북조선 사정을 말하는 동포들의 좌담회를 열기로 하였다
월남동포의 소리

◇우리는 남조선에 하로속히 정부가 수립되기를 기대할뿐이다
◇북조선의 정치는 벙어리 귀먹어리정치다
◇이승만박사와 김구선생이 우리의 영도자임은 삼척동자도 알고있다
◇북조선에 남어있는인민은 순□하고 무식한 노동자뿐이다
◇우리는 누런벼를 남겨두고 월남하였다

기자『어데 서들오섯 소』
김씨『여기 있는 사람들은 북조선각지에서 왓습니다 나는 회령(會寧)벽성면에서 왓습니다』

기자『어찌하여 남조선에 오시게 되였오』
윤씨『우선 식량의 배급도 주지않고 월급이라야 1천5백원밖에 아니주는데 그것으로는『콩가루』도 못사먹고 밀겨울도 못사먹습니다 그래마른창자를 견디다 못하야 최후의 결심을 하고넘어왓습니다 또 추방을 당하여 오는이도 있지요』

기자『남조선에도 식량사정이 대단이 골난한데?』
윤씨『암니다 그러나 배가곱하도 마음편히 □는것과 불안속에 마음을 조리며 굼는것은 달이니깐요 그래굴머도 마음의나 편히 굴무려고 왓습니다』

이때 기자는 동포들 사이에 끼여 앉어있는 중국인(中國人)두사람을 발견하여
기자『당신네들는 중국사람 아지요』
진씨『네 그렀음니다 사리원(沙里院)에서 왓음니다

기자『당신네들은 어찌하야 넘어왓소』
진씨『몸도앞우고 첫재 배급도없고 밀가루를 사먹을수 없어 서울의 친구를 차저가는 길임니다』

기자『당신네들도 38선을 숨어 넘어오섰오』
진씨『그렀음니다』
하고 기여넘어온 형용을 하여보였다

기자『당신네들이본 북조선의 실정을 믈리여 줄수없소』
진씨『나는 사리원에서 요리집을 하였는데 우리중국사람들에게는 소련군이나 보안대원이 구찬케굴지는 아니하였으나 조선사람들은 고동을 받고있는것은 사실입니다』

기자『팔노군(八路軍)이 북조선에는 만히있다는데』
진씨『평양과 해주에 만히 있는데 부호(不好)이요 이북중국인들은 전부 악감정을 가젓소』

기자『북조선의 정치는 당신네들이 볼때 었떠합디까』
왕씨『무어라고 간단히 말할수는 없으나 조선사람들은 대부분 좋와하지는 악니합디다』
이상과같이 말을 한후 더말하기를 실허하였다

기자『북조선동포는 남조선에 무슨기대를 가지고 있는것은 없오』
송씨『남조선만이라도 정부가 서길 바라고 있읍니다 남조선의 보선(普選)이 실시된대서 북조선동포들은 큰기대를 가지고 있읍니다』

기자『딩신네가 아시는 남조선의 지도자는 누구누구요
박씨『이승만 김구 씨는 삼척동자라도 압니다』

기자『그외에는 정게인들은 모르시요』
박씨『김성수(金性洙)장덕수(張德洙)씨등도 합니다』

기자『어떠케들 아시요』
사씨『너무욕설악선전을 하야 다들 머리에 젓다십히 하였읍니다 이분들의 욕설은 벽에다 뺑기로 써노았으니깐요』

기자『북조선을 좋다고하며 남아있는사람은 어떠한 사람들이요』
유씨『아무것도모 르는 농민들과 □어도 좋다는 공산주의자들밖에 없을것입니 다 나도 농민의 한사람인데 만히 속았읍니다 비판력이있는 사람은 앞으로 한사람도 남지않 을것입니다 농민이 못사는 원인은 나도 『조이삭』을 털어먹고 논에 벼가 누러케된것을 두고왓읍니다、웨 그러케하겟읍니까 금년에는 현물세가8차나있다는 말이 있읍니다』

 

동아일보 1947년 9월 25일자 2면

철의 장막
38선답사
허울좋은 토지정책
소득은 전부 현물세로
학교는 붉은 군대교육
기자협회시찰대보고
김호진 본사특파원
본사특파원 최경덕촬영

이하는 수용소에서 월남동포의 말하는 북조선현실과 월남감상등의 노천좌담 제2회이다
월남동포의 소리
◇북조선같은 토지무상분배라면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 첫재 소득이라는것은 현물세로 빼앗기고 만다
◇식량사정은 말할것없다 신곡기전에는 평양에서 개성까지 쌀을 사러가는 형편이다
◇38선같이 무서운고개는 처음넘었다

기자『식량사정은 어떠하오』
유씨『그것은 물어보실것도 없지요 신곡기전에는 정주(定州)평양(平壤)에서 개성에까지 쌀을 사러오니깐요 밀겨울이야기를 하겟슴니다 소위 북조선에는『해방떡』이라는것이 있읍니다 해방떡이라는것은 밀겨울을 물에 단거둔후 그물을 먼저마시면 식욕이 당김니다 그때 밀겨울과 소나무속껍질를 너허만든『송기개떡?혹은 해방덕』을 먹는데 그래도 그것을 먹으면 얼마간 요기는 됨니다 지금 청단(靑丹)에는 밀겨울과 소나무껍질로 만든『엿』(이(飴))같은것이 넘어오고 있읍니다』

기자『토지무상분뱨에대한 농민층의 감상은』
조씨 북조선같은 토지무상분배라면 농사질 사람이 없읍니다 첫째 소득이라는것은 현물세로 빼앗기고 무엇이 내것되는것이 있어야지요』

기자『북조선정치는 어떠하오』
윤씨『다른말하지않고『벙어리와 귀머거리』를 만드는정치라고 하는것이 제일 좋을것입니다』

기자『남조선의 경찰관들을 맛낫슬때 감상이 어떠합디까』
김씨『먼저 38선을 넘자마자 맛나는것은 남조선 경찰관들인데 호랑이보고 놀랜놈이 고양이보고 놀랜다는격으로 북조선 보안대원들한테 워낙 놀랜관게로 첫번에는 이제는 또경첫구나하고 대함니다 그러나 자연말하고나면 아아감사합니다 하는 감이듭니다 첫째 친절합디다』

기자『여러분이 38선을 넘어오실때의 감상을 말슴하여 주십시요』
박씨『38선같이 무서웁고 험악한곳은 처음 넘어왓슴니다

다음은 천진한 소년들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거짓없는 이들!이들은 천사다 그리고 이나라의 일꾼들이다 말하는소년은 신의주(新義州)오일인민학교 4학년 박모(朴某)(□)이다
기자『너는 누구하고 왓니?』
박군『할머니하고 아버지 집안식구가 다함께 왓서요』

기자『웨왓나』
박군『아버지가 살수없다고 밤에 몰래 동내를 나와 석달걸려 왓어요』

기자『학교에서 선생님이 무엇을 가르처주시데』
박군『책공부이외에 김구 이승만 타도를 들었으며 붉은군대이야기를 들었어요』

기자『그래 이승만 김구씨를 너이들은 어떠케 생각하니』
박오『이승만·김구씨는 우리의 지도자로 압니다(서슴지안코)』

기자 어째서 지도자로 아는가 누가 가르처주더냐』
박군『안요 동무들도 그러고 어른들이 몰래 그런이야기를 하는것을 들었어요』

 

동아일보 1947년 9월 26일자 2면

철의 장막
38선답사
동족간에 적대시
자칫하면 총살
어마어마한 경계선
기자협회시찰대보고
김호진 특파원기(記)
최경덕 특파원사(寫)
월남인의 소리
◇남조선은 평화의땅 우리의고향
◇우리는 초근목피(草根木皮)를 먹어도 마음편히 살고싶다

여기가 내고향
환희·낙누(落淚)
수용소풍경
본문은 파업으로써 남조역치상□보에 활□하고 있는 □□관과 □하하자 한숨쉬는 동포들의 정경

불안과 긴장의 38도선
개성에서 서북방으로 3십리가량 토성(土城)역을 지나 경의선철도선을 끼고 험악한 산길을 올라가면 여현지서(礪峴支署)에 도달한다。 이곳부터 4백메|타전이 38선의 최전선(最前線)이다。 이곳까지 안내를 한 조(趙)서장은 기자를 보고 저초가집이 지서이요하고 가르칸다。 동네는 7호이다 초가집앞에는 무장한순경이 서있다。 국경선을 지키는 경찰서같은감을 준다。이곳서 다시 최전선을 향해 거러갔다。 여기에는 유명한 칠보(七寶)석회공장이 건너편으로 멀리 바라보인다。
가는도중 지난번 미병(美兵)3명이 납치당한곳이 바로 여기요하고 가르처준다。 『저기가 38도선이요』하고 말할때 불안을 느끼든 기자는 혈압이 함진(亢進)하는듯한 흥분과 동시에 몸에 긴장이 퍼진다。
날씨는 좋다。 둘러보면 역시 조선다운 기복(起伏)과 색채 오곡이 무르익는 논과 밭이 다하는곳에 우르러 메|트의 먼산이있고 그위에 한없이 높고 푸른 가을하널이 널려있다。

보안대원들의 전투준비
내앞에서 약5백 메|터 거리에있는 여현(礪峴)역구내에 주문하고있는 보안대원들이 일행을이상이역이고 전투준비를 하랴고『차려』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북의 마을이 바라보인다 아무망원경(望遠鏡)도 필요없다 포푸라나무가지에 까치둥이 뛰여노는 어린이、달려가는 닭의 속도까지도 역역히 손에잡히일듯 보인다 허기야거리라고 목측·(目測)불과 천오백메|터박게 아니된다 이원근법(遠近法)은 당연하다 38도선이라하야 경기(競技)장 모양 회줄을 처노흔것도 아니요 판장을 한것도 아니고 철조망을 친것도 아니다 그낭 접속(接續)하는 조선의 땅이다 다만 고(高) 1메|터에 전주겨른 패말뚝을 박아노흔것이 경게선말뚝이다

저쪽도 우리나라것만
동내마다 붉은기ㅅ발
마을멀이 붉은 소련기가 휘날리는것이 북조선다운 감상을 줄뿐이다 조선사람이면서 조선의 땅을 바라만보고 마음대로 가지못하는 우리의 운명은 가슴을 뚜다리며 울어도 시원치 않을일이다
38도선은 국제공약이라는 커다란힘이 틀림없는 민족에게 보여주는 조혼표본이다 마음은 떨린다 어느듯 눈물이 나의 안구불어른거릴뿐이다

보안대와 싸우는 경비경관
그때 경비순경이 오래섯으면 저쪽에서 총을 발사하니 가기를 재촉한다 더보기 실타는듯 발길를 돌리였을때 56명의 인부가 세멘트떼미를 경게선 앞에서 싸고있다 이것은 남조선과도 정부의 허가로 상인이 북조선에 세멘트를 사들이고있는 장소라 한다 세멘트는 한포 310원식 매주4만포가 이곳에서 거래되고있다한다
돌아와 지서로들어가니 6간밖에 아니되는 초가집속에서 순경10명이 주재하고 있다 남포의 석유냄새 풍기는 이곳에서 이들은 때로는 월남한 보안대원들과 싸워가며 오로지 정열만으로 치안을 확보하끄 있다

27대1의 대담한 경비
일방 북조선측에는 소련병40명 보안대원30명소방대원(준군인(準軍人))2백명이 이남으로 총뿌리를 겨누고있는 이살판에서 용감하게도 근무를 하고있는것을 볼때 남조선경찰의 미덤직한감을 느낀다 벌서 오늘도넘어온 이재민이 5、6명이 지서앞뜰에서 우중거리며 있다

 

동아일보 1947년 9월 27일자 2면

철의 장막
38선답사
농우공출(農牛供出)을 강요
⑤ 반항하면 납치
60노파가 전하는 애화(哀話)
기자협회시찰대보고
김호진 특파원기(記)
최경덕 특파원사(寫)

이하는 북조선으로부터 남하한 동포들의 거줏없는 북조선농촌실태를 말한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살판속에서도 남북의 물자교환이 실시되고 있음을 볼수있다(기자)
기자는 그중 평양서성리(西城里)에서 월남하였다는 최(崔)씨 부인가족을 만나 이야기를 듯기로 하였다 이들은 이사짐보통이 8개를 가지고왓는데 비용이 15만원들었다하며 월경안내자에게 2만원의 길안내삭슬 주었다한다 노인은 눈물을 흘려가며
『나는 세금 십만원을 못내여 넘어왓읍니다 넘어와보니 내나라에 온것같고 내친척을 맛난것같고 부모를 맛나는것 같습니다 나는 살아넘어온것만 다행입니다』라고 월경감상을 말하였다
월남자는 포감금총살?
그런데 지난 9월14일부터 북조선에서는 월남자를 방지하고저 월남하면 체포후 감금한다는등 총살한다는등 가진 선전을하며 월남자를 방지하고 있는데 만일 월남하는자를 발견하면 보안서원은 총을 발사한다고한다

면내못금세(金稅)
방추(放追)
다음 동지서에 근무하고있는 이히태(李喜台)순경은 일선근무의 감상을 다음과같이 말한다
『처음 부임하였을때는 사실 공포심을 가지고 부임하였읍니다、가끔 낫이나 밤에 보안대원들이 월경하여와서 교전을 하는데 우리는 잠못자는것이 제일 고통입니다。 한때 보안대원들과도 정면으로 맛난일이있는데 그때는 개인일개인으로맛나 이야기한대이있읍니다。 그후 이사실을안 소련군측에서는 일선에 조선인을 내어보내면 북조선의 비밀을 남조선에 알린다하야 최근에와서는 조선보안대원을 제2선에 돌리고 최전선에는 소련군이 나왓있옵니다。우리는 죽엄을 두려워하지 않읍니다。 오늘 죽을지 내일죽을지 모르는 운면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쪽에서 총을 발사할때에는 눈물을 먹음고 이쪽에서『방아쇠』를 자바단깁니다。 우리의 같은동포가 이같이도 하여야 할까하며 울고싶은때가 만습니다。 하르바삐 독립이되여 저38선이 깨저야지요』
이은으로부터 월경하는사람은 매일 평균3、40명이라한다

조서장담(趙署長談)
그런데 특기할『38선의 비화』를 조(조선연(趙善衍))』서장은 다음과같이 말한다
『어느때든가 하로는 늘근 송(宋)모라는 노파(68)가 월경하였는것을 경비순경이 취체를 하고 가진보찜을 조사한즉 의외에도 보찜속에서 손때무든 식도(食刀)하나가 나왓다 그래 순경이 하도 딱하여서 노인이 험한곳을 너머오시는데 남조선에 식도가 없을까바 이것을가지고 오시요 한즉 노파는『허。이식도를 가저온 내력을 이야기하리다하며 내아들(35)이 밭에서 일하는데 보안서원이 와서 소(牛)공출을 하라고 하기에 여보농사군에게서 소를 빼아서가면 누가 농사지워 줌답디까하고 반항을 하니까 몇일후 내아들은 간곳없이 사라지고 말았는데 그후죽었다는것을 알고 나는 추방을 당하였읍니다 나는그원수를 내숨이 끈허지기전에 내가 쓰든 이식도오 갚겟다고 가지고왓다는 연유를 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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