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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oryⅡ 74 : 민주의원 개원

Posted by 신이 On 6월 - 3 - 2013

“전국에 반탁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1946년 1월 4일 임정은 당면정책의 구체적 방안으로 비상국민회의 소집을 성명하였다. 이에따라 2월 1일에는 국내외 각계각층 대표자를 망라하여 소집된 회의에서 28명의 최고정무위원이 선출되었다. 이 정무위원회가 그 본래의 성격과 명칭을 약간 달리하여 2월 14일 민주의원으로 개원하고 하지사령관의 자문기관으로서 과정(過政) 수립을 촉진시키는 사명을 띠게 되었다.”  (동아의 지면반세기, 동아일보사, 1970)

 

동아일보 1946년 2월 15일자 1면

남조선대한국민대표 민주의원 성립
역사적결성식을 작14일 오전10시 군정청 제1회의실에서 집행
새천지에 새광명의날
민족적영예에 감읍의 순간

 2월14일 오전9시 이날이시각은 한국이 주권국가로서 자주정부의 복구를 향하야 비약하는 세기의 획기적 신기원을 짓는날이다 민족적영수 이승만박사를 의장으로 김구주석 김규식박사를 부의장으로하야 역사적 남조선대한국민대표 민주의원성립식이 군정청제1회의실에서 막을 올리었다
이승만박사、김구주석、김규식박사기외의 28명의 직원이 열석하고 방청석에는 김성수씨 임영신씨 구자옥씨등의 착석이 끗난후 10시에 이승만박사로부터 별항과가튼 연설이 잇슨후 김규식박사의 하|지중장에게 보내는 선언문 낭독과 이어서 하|지중장의 성명서 낭독이 있었고 김구주석의 연설이 있었다 김규식박사로부터의 선언문은 지상에 기입된 일점일화이 우리의 진정한뜻과 우리의결의를 표명한것이며 열석한의원 28명의 성명배후에는 혹은 반세기 혹은 멧십년간을 광복대업을 위하야 노력과 희생으로 일관한 삼천만의 영도적인물로 건국의 대업을 등에지고 나왓다는것을 강조하였으며 안재홍씨를 위시하야 원세훈 김준연 김선 김려식씨등의 소회과 결의의 표명이 있은후 상오11시50분 역사적식을 맛치엿다 이자리에 오직 공산계열의 불참가는 유감된일이며 대표의원28명중 출석23명 결석5명인데 그 씨명은 다음과 같다(○표는 결석의원)【사진은 회장전경】

국민대표의원 (28명)
이승만、김구、○려운형、김규식、김준연、○함태영、이의식、백관수、○정인보、최익환、김법린, 김도연、○김창숙、김려식、박용희、장면、조완구、황현숙、백남훈、백상규、권동진、황진남、원세훈、김선、김붕□、안재홍、○조소앙、오세창

 


동아일보 1946년 2월 15일자 1면, 남조선대한국민대표 민주의원 성립

 

동아일보 1946년 2월 15일자 1면

표리일체의 통일체
국의의 최고위원과 민주의원

임정을 중핵으로한 통일공작의 최종단게로서 비상국민회의의 결성을 보앗고、이어서 과도정권의 수립을 위한 산파적임무를 마튼 최고정무위원의 선정을 보앗다。 이와동시에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하야 그기초공사에 노력하는 미군정을 보좌하여 미군정과 합작야 적게는당면한 민생문제로부터 크게는 장내할 정식정권문제에 이르기까지、조선과 조선민족의 행복을 위하야 활동할 『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이 성립되였다。 이리하야 비상국와 이 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은 이신동체적성격과 표리일체적임무로써 현재급장래에 긍한 조선의 대소문제를 토의하고 대소문제에 간여할 의무와 권위를 가지게 되였다。

이승만박사를 중심으로 김구、김규식 정부주석의 연석하에 각당각파、각계각층을 배경으로하야 추선된 애국자제씨가 일당에 참집하야 민족통일의 실적을 표시하고 자주독립의 추□□□□사적 순간이 아닐수 없다。 해방이후 그러케도 노력한 통일、그러케도 파문만튼 통일이 이제 그 제일보를 밟게되었스니 금후는 대도(大道)라、붕정만리(鵬程萬里)의 대업을 일보로써 달성케된다할진대 14일 조조에 시작한 이 일보의 진군이 얼마나 의의가 있으며 얼마나 가치가 있으며、따라서 그 일보일보의 족적에 빗나는 광영이 얼마나 장관일 것이냐?
결성되기까지는 행여나 그릇이 깨여질가 조심되고 근신되던 우리는 이제 결성이 되엿는지라、마음노코 비판하고십흔 흥분과 □격을 느낀다。 비판을 위한 비판、시비를 위한 시비를 강작하려는취모멱자적(吹毛覓疵的) 심경으로서가 아니라기보다 진을보다 선을 보다 미를 추구하고、희망하고、애무하려는자 불능이(不能已)의 순정으로서 우리의 욕심을 말하고십다.

첫재는、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이란 당당한 이름우에『남조선』이란 관사가 붓게된일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순수함스없는 민족적비회(悲懷)와 의분(義憤)을 느낀다。 음울한 중압과 모욕감까지도 느낀다。 이 비합리적관사를 붓치지 않을수없는 사태를 초래한 그 38장벽의 철폐는 언제나 될것인가?
둘재는、과도정권수립의 최고정무위원회란 당당한 이름미테 연명된 인사중에는 우리가 전폭적으로 숭앙(崇仰)하고 신뢰할수없는바가 잇슴을 솔직히 지적하지 않을수없다。 인물의 관록과 경중이 너무나 등차잇슴에는 기이한감을 느끼지 않을수없다。 그러케될수박게없는사정도 잇스리라、또는『첫숫갈에 배부른법이 없다』는 속담과같이 현단계의 처사는 매사가 초창이라、최선이 잇슬수 없으리라、그러나 그러타고 하여서 불완불비(不完不備)를 그대로 긍정함은 다음의 발전을 위하야 크나큰 암종(暗腫)이 되는법이니 최고당국자는 이점에 의하야 명실상부한 최고권위의 구성에 노력하여야 할것이다。
3
좌익계열의 참여가 미미한 정도에 이르럿슴은 원내 출발부터의 근본문제라、구태여 이 결성체 자체의 허물이 아니매、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무시하고라도 매진할수박게 없스려니와 그러나 좌우합작을 의도하던 조선의 완전통일을 위하야는 좀더 양심적이오、애국적인 좌익지도자의 참여를 꾀할필요가 잇슬것이다 그리하야 금상첨화의 통일체로서 완전한 자주독립에의 일로를 직진하여야 할것이다。 이런의미에서 문호는 그대로 개방하야 자유로운 통로를 두라、덕불고(德不孤)라 필유린(必有隣)、유종(有終)의 공은 그편에 잇다。

 

동아일보 1946년 2월 15일자 1면

갈망독립에의 전조
민주의원에 보내는 이박사 연설

(전략)1919년、1923년、1929년에 걸처 독립을 위하야 고생하고 독립을 위하야 생명을비친 애국적 여러선배들이 이자리에 있엇든들 오늘날 최후의 목적이 달성된데 대하야 오즉이나 놀내실것입니까 우리동포와 위대한 연합국의 피로써 암어(暗漁)한 과거수십년동안 한국이 노력하여오든 최고목적이 드듸여 이루어진것입니다(중략)
나는 오늘 개인의 자격으로 제위를 대하는것은 아니외다 웨 그러냐하면 나는 국민을 대표하야 국민의 소리를 전하여달나는 부탁을 바든까닭입니다 오늘이야말로 한국국민이 영원히 잇지못할 기념할 날입니다 오늘이야말로 한국의 발전과 주권국가로서 독립한 자주정부의 복구를 향하야 비약하는 신기원을 짓는날이올시다 오늘 나는 재남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성립을 발표함에 제하야 기피 영광을 느끼는바입니다 고문자격으로써 하|지중장에게 협조하랴는 이의원은 한국을 급속히 독립국가로 맨들려는 여러정당수뇌자들과 오랫동안 협의하고 신중히 고려한남어지에 성립된것임니다 이의원의 성립은 한국에대하야 지대한 의의와 이익이있고 우리가 모다 갈망하는 통일된 독립한국의 적달성의 전조가 될것입니다 지금 이자리에 참석하신 민주의원의 제위는 각단체의 원칙과 이론과 주의를 대표하신분입니다 다같이 우리는 공통한 목적의공통한 입장에 서있으며 다같이 우리는 우리의 상위점을 해결하야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으로하여금 진보발전하야 완전히 성장할수있게하랴는 유일한 목적을 위하야 우리의힘을 뭉치였읍니다 대동단결하기 위하여서는 우리는 우리를 분열시키는 사소한 논쟁을 배격하고 오직 우리의 국가자유라는 큰목적에 헌신하였읍니다(이하략)

 

 

댓글 한 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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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 by 김선생 — 2019/03/22 @ 8: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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