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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oryⅡ 58 : 3.1 운동 기념(5)-동아일보 사설

Posted by 신이 On 4월 - 18 - 2013

   3·1운동이 남긴 값진 유산중의 하나는 민족 언론의 출범, 곧 동아일보의 발간이었다. 일제시기 나라 없는 민족의 소리를 대변하는 동아일보는 어둠 속에서 민중의 길을 밝히는 등대였다. 1

 

  해방 후에도 동아일보는 삼일절 사설을 통해 삼일정신을 되새기면서 민족의 당면과제에 대한 지표를 밝혀나갔다.
  첫 삼일절을 맞는 동아일보 사설은 동아일보 논설반 촉탁기자를 했던 정인보가 썼다. 2 정인보는 ‘광복선열의 영령 앞에 삼천만 다함께 머리 숙이자’란 제목의 사설에서 남북분단과 좌우대립을 질타하면서 “국가 민족 이외 어느 집착이 노화(爐火)속 일모(一毛)가 되지 아니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사설은 이어 “의(義)로 나가는 길에 가로막을 무엇이 없다”고 단언했다.

 

  두 번째 맞이하는 삼일절 사설은 건국혼란을 국난(國難)으로 꼽고 자주성과 단결력을 집결해 자주독립의 목표로 총진군하자고 역설했다. 3 “국제정의발현의 기초와 원동력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민족 내부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바이다.”

 

  세 번째 삼일절을 앞두고 유엔소총회에서 독립단계로서 가능지역에서의 총선거가 결의되자 동아일보 사설은 “이것이야말로 삼일정신의 결실”이라고 환영했다. 4 “완전독립이라는 산정을 올라가는데 우선 의지할 수밖에 없는 바위를 가능지역의 선거에 관한 소총회 결의에서 찾게 되었으니 이거야말로 삼일정신이 결실하였다고 볼 수 있다.”

 

  건국 후의 당면과제는 남북통일이었다. 1949년 동아일보 삼일절 사설은 “당당한 독립국민으로서의 첫 번째의 국경일을 맞이하게 되매”라고 기뻐하면서도 “하루빨리 남북통일을 완수하고 명년의 이 날에는 명실상부하게 거족적 국경일로 남북의 삼천만이 다같이 한마음 한뜻으로써 즐겁게 노래하고 힘껏 뛰놀며 이날을 경축하자”고 제안했다. 5

 

  1950년 삼일절 사설은 국제적으로 “민주진영의 일익을 담당하여 냉전이 가장 우심한 대륙의 일단에서 민주보뢰(民主堡壘)의 중책을 다하여야한다”고 지적했다. 또 국내적으로는 “민의를 반영시키는 민주정치와 민생문제해결을 위한 경제부흥을 긴급과제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설은 “남한민심하나 단결시키지 못하고 어떻게 남북통일을 운위할 것인가”라며 위정자들에게 “선열의 민주정신 대무외(大無畏·모든 일에 두려움이 없음)의 민족대도에 돌아가라”고 촉구했다. 6

 


동아일보 1950년 2월 26일자 2면에 실린『삼일절 노래』의 악보. 정인보 제(製) 박태현 작곡으로 총무처에서 제정하여 우리민족으로서 다 같이 세창하기로 되었다는 설명이 나와있다.

 

 

 

Notes:

  1. 민족의 함성, 3·1운동 단면 8장-⑧유산, 동아일보 1969년 4월 5일 3면

    3대 민간지 창간, 민족언론의 출범
    3·1운동이 남긴 또하나의 값진 유산은 민족언론의 출범이었다。새로 부임한「사이또」(재등실(齋藤實))총독은 소위 문화정치를 표방하고 이 겨레의 숨통을 다소 터놓겠다는 선심을 썼다。 친일신문으로 시사신문、민족진영에는 동아일보 그리고 중립지로 조선일보의 3대 민간지 발행을 허가했다。 민족을 대변할 동아일보에는 인촌 김성수를 중심으로 이상협 장덕수 등 쟁쟁한 지사들이 모여들었다。 신문을 통해 선진국의 근대사상을 일반에게 일깨워주고 국민과 지도자를 얽는 끈이 되고자했다。 장덕수가 쓴 1920년 4월 1일자 창간호의「주지를 선명하노라」는 이렇게 되어있다。
    『오인은 신시대가 이미 왔다아니하노라。 오직 암흑중에서 쟁투하는 해산의 고를 가지고 웅웅한 신문명의 자와 명명한 신시대의 서광이 멀리 보이도다 하노라。 보이도다。 보라。 기천만의 남여민중이 그를 향하여 노력하는것을。이러한 때에 동아일보는 생하도다。어찌 그 생이 우연하리오。』
    동아일보는 이렇게해서 소리없는 민족의 함성을 우렁차게 대변하기 시작했다。 항일적인 논조에 못마땅했던 진고개(현 충무로)의 일인 상인연합회대표가「사이또」총독을 찾아가 항의했다。
    『동아일보는 불령선인(不逞鮮人)들의 집단인데 어째서 이따위 신문을 허가해 주었읍니까。 』
    「사이또」는 대답했다。
    『동아일보는 조선민족의 뱃속에서 끌어오르는 가스를 방출시키는 연돌이다。가스를 방출시키지않으면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폭발되고마니까。 』
    그러나 동아일보는 단순한 연돌일 수 없었다。 거듭되는 정간과 구속을 무릅쓰고 어둠속에서 민중의 길을 밝히는 등대가 되었다。 3·1운동이후 민족의 실력을 키우자는 운동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교육의 각방면으로 번져갈 때 동아일보가 그 중심이 된 것도 실로 우연은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 스스로 봄을 찾으려는 이 민족의 투쟁은 더욱 집요하고 더욱 끈질기게 전개되어갔다。
    3·1운동이 남긴 가장큰 유산은 그것이 민족사에 남긴 불멸의 의미였다。위와 아래가 없었고 구세대와 신세대가 없었으며 남과 여가 없었던, 그래서 온겨레가 한데 힘차게 뭉쳤던 거룩한 신화였다。그것은 한시대의 종말이 아니라 한시대의「시작」이었다。
    근대민족주의가 여기서 비롯되었고 근대민주주의가 여기서 싹을 피웠다。 온갖 간계와 보복과 옥고를 디디고、온 국민이 주역이 되어 함께 선언했던 줄기찬 독립정신, 온겨레가 그것을 다시 가꾸고 북돋고 또 꽃피울 때、우리의 선대가 그토록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물려준 유산은 역사속에 영원히 살아나는 것이다。

  2. 동아일보 1946년 3월 1일자 1면

    광복선열의 영령(英靈)앞에 삼천만 다함께 머리숙이자
    정인보(鄭寅普)
    1
    우리선열은 아시나닛가 일구(日寇·왜구)가 일소된 우리 국토에서 처음으로 국경일의 전례를 행하나이다。황포탄 물소리에 오인함을 석그며 파자고국(巴子古國)의 산장속에서 태극기 한(恨)가득히 날리던 이 절일마다 일도령광(一道靈光)이 언제나 그곳을 위요(圍繞)하얏스려니。 선열의 쓰러지신을그대로가 낫낫이 우리나라를 되이르키는 어귀찬 □주(柱)라 지금에 잇서 더욱이 그 성향을 듯는듯하니 우리 엇지 스사로 자사념(自私念)을 둔다하오리까。
    2
    우리선열은 아시나낫가 우리국토는 적이□러가자 뒤이어 남북이 동강난지 달수로 여달 달이오 이 정당 저 정당 분운하던 북새가 저윽이 지낫스나 아즉도 오른쪽이니 왼편이니 합니다 종각의 인경소리 뎅뎅하며 28년전 이 날에 전 국민의 독립정신을 부루지지던 독립선언서를 다시 읽어 광파시킴을 비롯하야 모듬과 행열 곳곳마다 성대함을 보는 우리는 촉처(觸處)에 감격되는 바 무엇으로 형용할 수 업나이다 선열의 끼치신 피줄기가 우리 자체에 순환되지 아니한다면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 순환이 정식(停息)되지 아니할진대 우리엇지 그 지사의 계승에 자력치 아니하릿가。
    3
    생각하건대 기미독립운동을 을사이래 싸혀나려온 선열의 피의 격발됨이오 오늘날 이 성전은 기미이래 싸혀나려온 선열의 피로 장식됨이니 우리민족의 방래(方來)의 광명과 행복과 □업의 어노 무엇이 선열의 열이아닌 바 잇스리가 순국이라는 말을 지난 세월에 흔히 써왓스나 순은 도사의 의라 을사、경술 대변란과 생을 한가지 아니하신 열적으로부터 기미운동의 제 선열 최근에 미치기까지『위국사신(爲國捨身)』하신 여러분의 일을 종합하건대 모다 광복일로로 분류하는 상속적 대파(大波)이니 엇지 순으로써 일커름에 그칠 바이렛가 하물며 오늘에 잇서서렛가 그러나 우리 선열을 추념함에 잇서 향을 피여 분욱(芬郁)을 상승케하는 것으로한다 하오릿가 노래를 불러 음향이 사철케하는 것으로 한다 하오릿가 종종의 의식 종종의 행사 이만하면 이날의 유감이 업다 하오릿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야는 일체를 바리는 이 일단□정신이 각개의 뇌리에 과연 엇더케 되여 가지고 잇는가를 각개 스사로 도라보아 여기에 대하야 무됨이 업도록 여뒴이 업도록 거들 나아가 이를 더 진발하도록하는 노력이 꼿향이오 노래오 의식이오 행사인을 아나이다 우리 아모리 연생하는 사념이 잇다한들 선열유혈의 과거를 생각할 때 국가민족이외 어느 집착이 노화(爐火)속 일모(一毛)가 되지아니하렛가 뜻압헤 어려움이 업슴을 선열은 자신으로 보이섯나이다 의(義)로 나가는 길에 가로막을 무엇이 업슴을 선열은 두렷하게 나타내섯나이다 우리 선열의 과거를 추염함과 아울러 그 지사를 이어바더 나갈 것을 다함게 맹서하고자 하나이다

  3. 동아일보  1947년 3월 1일자 1면

    조선현단계의 당면과제-삼일투쟁은 민족 해방의 원동력
    1
    1919년 삼일투쟁의 감격을 29년만에 다시 맞이하는 민족적 기념일이 바로 오늘이다。이날의 의의야말로 조선민족의 해방투쟁사상 신기원을 이루었을뿐아니라 넓이 아세아민족해방의 여명에 박차를 가하였다고 아니할수없다。1차 대전후 제국주의 열강은 동양시장의 개척경쟁에 여념이 없는 한편 신제 일본제국주의는 평화애호의 조선、중국민족에게 침략제일보의 촉수를 뻐첫스니 그것이 바로 1910년 경술국치의 일한합병으로 구현되였든 것이다。그러나 인류의 정의와 민족의 정열은 역사발전의 엄숙한 법칙 하에서 부절히 운동하고 정리되고 축적되는 것이다。그리하야 일제 침략 후 와신상담 십년만인 1919년 기미의 민족투쟁은『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를『슬로간』으로 일멱부란의 전민족적 혁명역량을 민족해방전에 총집중하였든 것이다。 이것은 문화민족으로서 유구한 역사적 전통을 총검의 유린으로부터 호지(護持)하는 동시에 아세아 약소민족의 해방전선에 있어서 조선민족의 국제적 입장을 뚜렷하게『크로스·업』하였다는데 세계사적 의의가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이와같이 삼일혁명은 민족해방과 반제투쟁사에 있어서 획기적 계기를 재내(齎來)하였을뿐 아니라 그의 투쟁력은 면면히 계승되고 강화되어 드디어 8·15 민족해방이라는 세기적 성과를 전취하게까지 이르럿든 것이다。오늘 삼일기념일에 제하야 우리는 과거의 위업과 감격을 회상하는한편 그의 역사적 혁명성을 재생산 재강조하야 당면과업인 민족통일방법에 자(資)함으로써 기념의 의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2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의 철쇄에서 해방하려는 것은 사상의 좌우나 계급의 대입을 초월한 전민족의 본능적 의욕이였고 공동목표이었든 것이다。 일본□반으로부터 식민지 민족해방을 목표로 전민족적 혁명역량을 총집결한것이 삼일투쟁인데 이로써 조선민족의 혁명적 단결력과 투쟁력은 위대하였다고 아니할 수 없다。 민족의 흥망 국가의 위기에 처하야 전민족의 박연일체(薄然一體)와 행동통일을 기하는 것은 근대민족의 공통현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전쟁중에 영노동당、보수당의 정치휴전안、항일전에 있어서 중국의 국공합작 등은 모두 공동국난을 타개하기위한 민족적 요구에서 출발한 정치행동의 통일이다。 민족유린、국가병합이라는 역사적 국난에 봉착하야 신음하든 우리는 드디어 민족해방이란 기치하에 정의승리라는 파사(破邪)의 의검(義劍)을 드러 민족의 총역량을 반제투쟁에 집결하였다는 사실이야말로 자유민으로서의 면목을 세계에 빛냇을 뿐아니라 자기발전으로서의 민족적 자주성을 발휘하였던 성스러운 기념일이라는 것을 인식해야한다。삼일투쟁의 희생선열의 유지를 밧드러 조국재건도상 혼란시기의 당면국난에 제하야 우리는 오로지 허심탄회의 애국적 양심으로써 국난타개를 위한 행동통일의 무조건 요청을 지적하는 바이다。 이와같이 29년전 삼일투쟁에서 비로소 일제침략이라는 국난에 처하야 거족적 행동통일로써 민족단결의 강인성과 위대성을 실증하였거든 건국혼란이라는 국난에 당면하야 우리 본연의 자주성과 단결력을 정돈 집결하야『자주독립』의 목표에 지향해서 총진군 하는 것이 당면임무인 동시에 역사과업수행의 선행요건이 아니면 안될 것이다
    3
    8、15 해방후 두번째 맞이하는 삼일기념일인 오늘의 조선의 현실은 과연 어떠한가。국제적으로는 미소관계의 동향과 향배에 좌우되고 있으며 민족적으로는 도탄의 고에 빠저있는 민생문제로 말미아마 국민생존권의 유지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이 생생한 현실사태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해방후 일년반의 정치혼란과 경제 파멸의 연원과 조건을 과학적으로 구명하며 분석하고 정리하는데서 이성적 판단과 행동적 방향이 자재할 것이다。 미소양군의 조선분단 점령으로 말미아마 삼팔경계의 국민화는 아세아평화수립에 있어서 불필요한 긴장과 무의미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동시에 미소연합군의 국제의와 민족해방이라는 전쟁목적의 구체적 실천을 기대 요구하지 않흐면 안될 것이다。 이러한 국제정의발현의 기초와 원동력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민족 내부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바이다。 개인이나 국가나『스스로 노력하는 자에서 도음이 있고 발전이 있는 것이다。』 타력의존의 사대사상은 반듯이 민족을 멸망시킨다는 과거역사를 회상하면서 우리는 전후 국제정세의 추이와 미소양군 대조선정책을 구명 해득함으로써 을흔 진로를 개척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독립을 확보한 막부삼상결정 후 어느 듯 삼년채 되는 오늘에 있어서 그 지연의 책임은 우리들의 분열과 대입에만 귀의시키고 있다는 현사태를 직시하면서 명일의 예단을 불허하는 급전환의  극동지구 내지 태평양정세의 파문은 우리에게 타산의석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는 바 있지 않으면 안된다。
    8、15 해방 후 쓰라린 체험을 통하야 우리는 자성하는 바 있는 동시에 외력의존의 타율적이 아니라 자주적 창의와 역량을 집결하는데서만 비약과 발전을 기할 수 있다는 규칙을 오늘 삼일기념일에 재감명하며 독립전취의 신출발을 맹서함으로서 선열을 추모하는 광휘의 삼일투쟁을 기념하지 않으면 안된다。

  4. 동아일보 1948년 2월 29일자 1면

    3·1정신을 고조
    소총회결의를 보고
    1. 30년전 3월 1일을 기하여 우리 민족이『자주민』임을 결의하였고 우리국가가『독립국』임을 선언하였다。 또 이천만민족이 독립전취를 위하여 봉화와 같이 궐기한 것도 30년전의 이날이였다。일제의 철제가 우리 근역을 짓밟자 어찌 우리로서 민족적인 의관이 없었으랴、이날를 기하여 삼천리 국토는 피의 항쟁으로 물드렸으며 독립을 절규한 이천만 형제자매는 일제 관헌에 학살、투옥 혹은 모욕을 당하였든 것이다。 때마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 민족자결이 세계평화를 건립하는 대도인지라 밖으로는 이와같은『인류평등의 대의』를 파악하고 안으로는 합병이후 맺첫든 난관이『민족자존의 정권』으로 폭발하여 그와 같은 거사를 보게 되였다。이 어찌 민족정의의 발로라 하지않으리오、그러나 일제의 폭악은 가열(苛烈)하여 그들의 총불앞에는 어찌할수 없었으나 이 수욕의 통분가운대에 삼일독립정신은 더둑 굳게 결정되여 조국광복에 대한 염두은 날로 커질뿐이였다。

    2. 일제의 발악은 우리의 생명을 빼앗고 인권을 유린한다는대 고치지 않었으며 심지어는 국어를 말살하고 성명까지 빼앗으랴 하였으나 30년전의 이날을 계기로 발현된 독립정신만은 빼앗을수가 없었든 것이다。그러나 해방전에는 이 3월1일을 어찌 입밖에 낼수가 있었으랴 일제의 발악이 날로 심하여지매 오날의 이날이 있기를 굳게 믿었지만 마음으로만 삼일정신을 견지하여 30년을 지나게 되었다。 해방이 된 오늘에 있어서는 이 3월1일을 국경일로 마지하여 선열의 독립정신을 추념하게 되었으니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으리오 우리는 선열의 삼일정신을 견지하여 신탁에 과감히 싸웟다。그리하여 국제상 부동(不動)의 원칙이라고까지 궤변하든 신탁조항이 독립노선에서 말소되었을뿐 아니라 독립하는 단계로서 가능지역의 총선거가 국련소총회에서 이 삼일절을 전후하여 가결되었으니 더욱 감명이 깊다 할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삼일정신의 결실이라 하겟다。

    3. 26일 소총회에서 미국대표가 제의한 안 즉 조선인민의 자유와 독립을 급속히 달성하는대 관하여 협의할 민족대표를 조선의 가능한 지역에서 선거하되 이것이 국회를 구성하며 나아가서는 국민정부를 건립한다는결의가 31대 2로 가결되었다。물론 이 결의가 완전독립을 전취하는 최후적 단계라고는 생각하지 안는다。미국대표가 진술한 것와 같이『필요한 단계』일 것이며 가능한 지역에서 우선 독립정부를 세워놓고 이것을 교량으로하여 완전독립을 전취하자는 것이다。우리는 해방이라는 미명하에 국토가 양단되어 전신을 결박당하였다。또 국제협조라는 미명하에 맞지안는 정치형태와 국제신탁을 강요하여 전신불수를 만드러 노왔다。
    물론 조국의 완전독립을 위하여 국제협조가 필요한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아는 일이지만 그것은 우리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며 그거나마 마샬안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는 예단하기 어려운 차제 우선 두 팔이나 결박을 풀고 반신이나 회복하는 것이 완전독립을 전취하는대 필요한 유일의 길이 아닐까、따라서 완전독립을 달성하는대는 아직 전도가 요원한 만큼 가능지역의 선거에 관한 소총회의 결의만을가지고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럴수록 독립전취에 대한 삼일정신을 더욱 견지하여야 할 것이다。다만 완전독립이라는 산정을 올라가는대 우선 의지할 수 밖에 없는 바위를 가능지역의 선거에 관한 소총회 결의에서 찾게되었으니 이거야말로 삼일정신이 결실하였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우리는 꿈에도 완전독립을 이저버리지 않을 것이다。우리민족이『자주민』임을 결의한 삼일절을 마지하여 더구나 소총회의 가능지역 총선거에 관한 결의를 보고 더욱 우리 국가가『독립국』임을 세계에 천명할 필요를 느낀다。 우리는 삼일정신을 견지하여『최후의 일각 최후의 일인』까지 독립완수에 매진하기를 삼천만 민족의 이름으로 맹서하는 바이다。

  5. 동아일보 1949년 3월 1일자 1면 사설

    삼일절에 제하여
    1
    오늘은 3월 1일! 우리 겨레 삼천만의 최대 국경일인 삼일절이다。 『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강권주의의 희생』으로 되어『유사이래 수천년에 처음으로 이민족 감제의 통고를 맛본지 10년』인 31년전에 온갖 학대와 갖은 압박을 참고 견디다 못하여 우리가『조국혼』의 불멸을 표명키 위하여 우리나라가『독립국』임을 세계 만방에 포고하며『배선족(倍鮮族)』의 건재를 입증키 위하여 우리 겨레가『자유민』임을 자손대에 사유한 날이 바로 이 날이다。그러나 우리는 10년 정치의 무서운 강압으로 인하여 촌박도 소유치 못하고 오직 적수공권뿐인지라『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유일의 배경으로 하며、『이천만 민중의 성충』을 최대의무기로 삼아 악도왜적의 정면으로 용감히 진군나팔을 불기 시작하였으매、이날부터 우리강토 삼천리의 방방곡곡에는 저 악독무쌍한 왜적의 총검 하에 우리 겨레의 성혈이 쉬임없이 흐르기 시작하며、의육이 아낌없이 찢어지기 비롯하였다。 이날이야말로 우리 겨레가『인류평등의 대의』를 천하에 극명하며、『민족 자존의 정권』을 영겁히 향유키 위하여 인류공존 동생권을 전취하려고 완전한 자주독립을 확보할 때까지 최후의 일인、최후의 일각까지 싸울 것을 굼게 맹서한 날이다。 그러므로 이날은 우리 겨레의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가장 거룩한 최대최고의 국경일이다
    2
    그러나 우리 겨레는 기미이래 년년세세 돌아오는 이날을 강도의 총검이 유난히 더 번쩍이는『유계(幽戒)』속에서 맞이하게 되었음으로 이 경스러운 국경일을 의의있게 정성껏 기념하기는커녕 차리리 울고싶어도 마음껏 실컨 울 수도 없이 이십유(有)육년간이나 오직 안보이는 눅물、안들리는 울음속에서 이날을 맞이하고 보내고 하게 되었으니 그 민족적 적분과 통한이야 이로 다 형용할 수 있었으랴。그러나『인류통성과 시대양심이 정의의 군과 인도의 간로써』우리를 호원하여주매 해방 후 3년간은 아무런 간섭이나 제재도 받지 않고 이날을 기념하여 오다가 이제는 당당한 독립국민으로서 이날을 맞이하게 되 도간 많은 선열들의 조국의 독립과 동포의 자유를 찾기 위하여 뿌린 성혈에 대하여 다시금 경위의 며리를 숙이는 동시에 삼일의 유래와 삼일의 이념과 삼일의 지표-즉 삼일의 정신을 한번더 회상하며 이 날을 기념하고 이 날을 동경하려든 이 순간에 실로 형용키 어려운 천감만회가 일시에 교집함을 금할 수 없게 된다。희비의 감회가 한데로 얼키며 고락(苦樂)의 정경(情景)이 차제로 부침함에 우리는 오늘의 이 국경일을 기념함에 당하여 웃어야 좋을까 울어아 옳을까 그 갈피조차 차릴 수가 없게 된다。
    3
    그러면 40년간『무국(無國)』민의 설어운 신세을 면하고 당당한 독립국민으로서의 첫번째의 국경일을 맞이하게 되매『우리의 고유한 자유권을 건전하여 생왕(生旺)의 락(樂)을 포학(飽學)할 것이여 우리의 자족한독창력을 발휘하여 춘란(春蘭)한 대계에 민족적 정화를 결뉴』하여야할 우리 겨레에게 무슨 슬픔이 있는가。 회고하면 기미의 독립운동-즉 삼일의 정신은 남여의 별도、노소의 차도、좌우의 파도、지역의 내외도 전연 없는 유일무잡한 전민족적 단일전선이었거늘 오늘날 우리의 끝 이 나라의 형편은 과연 어떠한가。 명색은 48개 우방의 승인을 받은 당당한 독립국가라고 하지마는 국토는 의연히 남북으로 양단되고 민족은 좌우로 분열되어 동포의 근 삼분지일이 우리와같은 기쁨으로써 이 국경일을 맞지 못하게되니 이것이 어찌 우리 겨레의 천추원한이 아니고 무엇이며、민족적 치욕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나 삼망(三望)은 흥자(興者)의 금물이며 락등(落騰)은 패한의 자기(自棄)다。 우리 민족의 화동 국토의 통일을 속히 실현하기에 유엔 한위도 최대의 성원력조를 아끼지안는 터인즉 우리 겨레는 각자가 저 성스러운 삼일의 정신을 잘 체득하여 모두 소이를 버리고 대동에 합류하도록 힘쓰자。그리하여 하로빨리 남북통일을 완수하고 명년의 이 날에는 명실상부하게 거족적 국경일로 남북의 삼천만이 다같이 한마음 한뜻으로써 즐겁게 노래하고 힘껏 뛰놀며 이날을 경축하자。이것이 최대국경일인 오늘을 맞이하여 최대의 축원이며 최고의 이상이다。

  6. 동아일보 1950년 3월 1일자 1면

    삼일절을 맞아
    31주년이되는 오늘 삼일절을 당하여 정의와 인도와 생존과 도영(導榮)에 입각한 민족적요구를 만천하에 현시하여 조국광복에 공훈이 지대한 모든영령에 삼가 재배하옵고 국내외적으로 형극에 충만한 우리의 앞길에 광명과 가호를 나리실지며 겨레의 한사람 한사람이 최후의일각까지 광명정대한 민족정기에 입각하여 정당하고 자유로운 의사의 소유자가 되게하소서。정의와 인도에 입각하여 옳은것을 옳다하고 그른것을 글다하는 자유로운 의사표시가 결코 용역하지 않다는것은 허다한 희생이 증명하는바와같지만 그럴수록 대무외(大無畏)의 대도(大道)에 입각할때에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선열의 유훈(遺訓)이 더욱 뼈에 사모치는바있다。 우리의 선열은 추호의 사심도없고 배타적정도없이 정의와 인도에 입각한 민족적요구를 자유롭게 발휘하는 이난사업을 31년전 오늘 민족자존의 정권을 영유케하기 위하여 자손만대에 선양한것이다。 거룩한 자유정신없이 이선양이 불가능하다는것을 우리는 잘안다。그러기에 민족자존의 정권이 확립된 오늘에있어서 우리가 이날을 기념하고 선열을 추모하는것은 광복된 조국을 경하하고 선열의 공훈을 찬양하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실로 선열의 위대한 자유정신을 계승하기를 맹서하고 결심을 새로이하는 날이어야할것이다。

    오늘 우리는 국제민주진영의 일익을 담당하여 냉전이 가장 우심한 대륙의일단에서 민주보뢰(民主堡壘)의 중책을 다하여야하며 이 국제적임무완수와 관련하여 국내적으로는 민의를 반영시키는 민주정치와 민생문제해결을 위한 경제복흥을 긴급과제로 하고있는것이다。이 국내과제를 충분히 해결하지못한다면 국제적임무까지도 잘수행할수없음은 이제 한개의 상식으로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세를 운위(云謂)하고 비상시국을 운위하여 민의를 무시하고 경제복흥을 지연시켜 정치는 안전성을 잃고 민생은 도탄에 헤매는 형편이니 이 민족을 수호하는 선열의 영령인들 어찌 안도할수있으며 격심한 국제경쟁이에 우리의 후진성은 어떻게 극복되며 우리의 민족적긍지는 어떻게 유지될것인가。이래가지고야 어찌 자자손손의 영구완전한 경복을 도영할수있으며 광명하고 정대한 정의의군과 인도의간과를 어디서 찾을것인가。사심과 이해를 초월함이 지금과같이 급함이없고 민족적역량을 총집결함이 지금과같이 급함이 없다。 사심과 이해에 구애한다면 단3인도 단결할수없거늘 황전민족의 집결에 있어서랴!일절를 타기하고 오직 애민 애족의 성충에 돌아가라!아부와 사심으로 권력에 수종하는것이 집결은 아닌것이다。 또 그러한 태도로 단결을 촉구할수도 없는것이다。 실로 일모도환(日暮途還)의 감을 금할수없다。 이나라 위정자지도자들은 자계목욕하고 사심을 버리고 오직 민족적입장으로 돌아가서 선열의 민주정신을 계승하라。

    민족해방을 갈구한 선열의불타는 애족심은 그대로 민주개혁의 정신인것이다。이 민주개혁을 실천할 용기가없이、봉건적신분관계와 소유관계와 착취관계를 청산함이 없이 썩어빠진 관존민비의 폐풍(弊風)에 사로잡혀서 권력남용과 인권유린을 자행하면서 제아무리 민족의 혈연과 지연의 자연적조건과 문화와 정치와 경제의 역사적조건을 운위한다하더라도 민족은 단결되지않는다。부(富)하지않음을 원하지않고 고르지않음을 원하는법이다。우리의 선열이 민족해방을 위하여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일각까지 싸울때에 무슨회 무슨당이 있던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슨회、무슨당을 무시하는것이 아니라 모든회 모든당을 포섭하는 태도다。 오늘 이민족존망지추(民族存亡之秋)에、국제적 국내적임무가 산적하여 다사다연한 이때에 왜 이 대국적태도를 취하지못하고 관료만이 애국자요、정권에 참여한자만이 흘로 선하다하느뇨。 □존□선적태도자체가 배타적이거늘 어찌 민족적단결을 염원하는 태도라아랴。이러한 배타적독선적태도로 단결하였다는 사실을 모르노라。남한민심하나 단결시키지못하고 어떻게 남북통일을 운위할것인가。 민족과 남북통일을 구두선으로 한다고 민족이 단결되고 남북통일이 실현되는것은아니다。 선열의 민주정신 대무외(大無畏)의 민족대도에 돌아가라。 민의를 반영시키고 독선을 버리라。그리고 선열의 가호를 빌고 민족의 장래를 숙고하라。 신대지(新大地)가 안전에 전개할지며 화풍난양(和風暖陽)에 만물이 소생할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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