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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oryⅡ 51 : 신년호 백두산 사진

Posted by 신이 On 1월 - 24 - 2013

 

 해방 후 처음 발간하는 신년호 1면 사진은 백두산 천지의 모습이었다. 조선의 영산(靈山) 백두산이 새해 첫 지면에 자리를 잡는 것은 당연했다.  

 


동아일보 1946년 1월 1일자 1면
커트는 영봉(靈峰) 백두산상의 서기(瑞氣)예 잠겨잇는 천지의 장관

 

  백두산은 오랫동안 민족혼의 상징이었다. 신년호 1면 사진으로 게재할 수 없었던 세월이 있었다. 해방을 맞아 새해 새아침에 신문에 나온 백두산의 천지는 상서로운 기운에 잠겨있다. 이날 “이 강토를 수호하는 백두의 영봉에는 새로운 새해의 새로운 아침볕이 비쳤으리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새해의 감흥에 젖어들 수 없었다. 1945년 을유년은 해방의 해였지만 동시에 수모의 해였다. 그해 12월 말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코리아(조선)에 대한 신탁통치가 결정된 것이다.   

 

  따라서 신년호 1면 사설 ‘신정일언(新正一言)’ 1의 어조는 비감했다. 사설은 “신정 벽두에 맹서할 삼천만의 일관한 신호는 오직 ‘자력으로 최후의 일인(一人) 최후의 일각(一刻)’이라는 정신에 있다. 그리고 ‘외모(外侮·외국으로부터 받은 모욕)의 극복은 내부의 단결’이라는 노력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정신과 이 노력으로써 ‘각 길로 한 신지(新地) 완전한 자주독립’이라는 피안을 향하야 맹진할 뿐이겟다. 병술의 새해여! 복을 바드라. 이 겨레의 소원과 소기를 위하야 복을 바드라.” (1946년 1월 1일자 1면 사설)

 

 각 신문사가 새해를 맞아 1월 1일과 2일 휴간하기로 했으나 신탁통치결정으로 신문은 계속 발간됐다. 2

 

 신년호에 백두산의 모습이 다시 등장한 것은 대한민국 건국의 해인 1948년이다. 춘곡 고희동 선생의 백두산 그림을 1면으로 게재했고 2~3면에 걸쳐 백두산 영봉의 사진을 ‘자주독립’의 염원이란 설명과 함께 실었다.

 


동아일보 1948년 1월 1일자 1면
춘곡 고희동 화백의 그림

 


동아일보 1948년 1월 1일자 2~3면
백두산영봉

 

“조선민족의 전통적인 정기와 이 나라의 그윽한 신비를 지니고 아세아의 동방하늘에 높이 솟은 장엄 웅대한 백두영봉(白頭靈峰)을 우러러 새해를 맞은 겨레의 감격 다시금 새로운 바 있다…올해에야 국권이 회복되면 우리 아니 이 성지를 깨끗이할 것이 아닌가?” (1948년 1월 1일자 3면) 3

 

        동아일보 1948년 1월 1일자 4면

       1948년 무자(戊子) 월력. 물자가 귀하던 시절 일년내내 안방에 걸어놓고 볼 유용한 달력이었다.

 

 

Notes:

  1. 사설-신정일언(新正一言), 동아일보 1946년 1월 1일자 1면.

    1
    오늘이 새해의 첫날이다. 이른바 해방후의 첫새해다. 이 강토를 수호하는 백두의 영봉에는 새로운 새해의 새로운 아츰볏이 비첫스리라.
    2
    을유의 후반은 해방의 해엿다.
    그리고 동시에 수모의 해엿다. 백년의 파란을 격근해요, 만대의 치욕을 바든해엿다. 이얄구진 을유의 제야를 발키면서 밝어오는 신정의 초서를 상상할때 진실로 형언키어려운 만감에 소조를 모를지경이다.
    3
    “탁치”의 이유가 자타의 어디에잇슴을 구태여따질 필요도없다. “탁치”의 내용에 수정할 여지가 잇고없고를 구태여일카를 필요도없다. 미성국, ㅁ개족에나 해당한 이 국욕을 그대로 질머지고 우리의 심경에 새해다운 새해의 감흥이 생겨질 도리가 없다.
    4
    타력의환멸을 만끽한 우리는 자력의 고귀를 더욱더 통감하엿거니와 신정벽두에 맹서할 삼천만의 일관한 신호는 오직
    “자력으로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이라는 정신에 있다 그리고
    “외모의 극복은 내부의 단결”이라는 노력에잇다. 이 정신과 이 노력으로써
    “각 길로 한신지(新地) 완전한 자주독립”이라는 피안을 향하야 맹진할 뿐이겟다.
    병술의 새해여! 복을 바드라. 이겨레의 소원과 소기를 위하야 복을 바드라.

  2. 근고, 동아일보 1946년 1월 1일자 1면.

    신정 1, 2 양일은 휴간하기로 각 사가 협정하엿섯스나 비상정세의 발생으로 신문은 계속발간하기로 하엿습니다 동시에 신년특수호의 발행도 일절중지하기로 하엿사오며 따라서 의례적인사 신년인사도 그만두기로하엿사오니 독자제씨는 서량하소서
    동아일보사

  3. 백두산 서기 받아 금년은 자주독립, 동아일보 1948년 1월 1일자 3면

    조선민족의 전통적인 정기와 이 나라의 그윽한 신비를 지니고 아세아의 동방하늘에 높이솟은 장엄웅대한 백두영봉(白頭靈峰)을 우러러 새해를 맞은 겨레의 감격 다시금 새로운 바 있다
    오늘도 동해로 떠오르는 태양의 별은 눈옷 입은 이 산의 봉오리와 굳게 얼어붙은 천지(天池)의 빙면(氷面)을 비칠 것이니 조선민족의 새 아침은 장엄하게 밝어가려는 것이다
    아지못게라 이 민족의 비분이여!몇해동안 이 신비의 땅에 외인군마 머므르고 횡폭한 도끼(斧鉞) 신림(神林)을 벌작하여 점차로 엣 모습이 거칠어 간다하거니 올해에야 국권이 회복되면 우리 아니 이 성지를 깨끗이할 것이 아닌가?(사진은 백두산 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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