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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oryⅡ 52 : 새해 띠풀이

Posted by 신이 On 1월 - 24 - 2013

  

 1945년 해방의 해는 을유년으로 닭띠 해였다. 신년호에 12지(支)에 대한 소개는 단골로 등장했다.

 

  해방 후 첫 신년호가 나온 1946년 병술년은 개에 대한 소개로 시작됐다. 1946년 1월 1일자 2면 기사는 조선의 젊은이들을 파수꾼으로 비유한 뒤 “조선을 지키는 충실한 개의 임무를 다하자”고 권한다.

 

금년은 개의 해이다。
개는 제주인의 집을 직힌다。
집을 직히기에는 나지나 밤을 가리지안는다。
충실한 개는 제집을 직히기에 제주인을 보호하기에 제 생명을아끼지안는다。
조선의 젊은이들이여!우리는 조선땅을 직히고 조선의 주권을직힐 의무를 가젓다。
개와같이 충실하게 밤이나 나지나 언제나 이땅이백성 이주권을직힐 의무를가젓다。
우리는 조선의 파수꾼이다 조선을직히는 충실한 개의 임무를다하자。
외적이 올때 우리는 웨처 조선의 혼을불러 이르키자。 한데 뭉처서 피와 죽엄으로 항거하차。 도적이 우리의 땅을 한거름도 드려노치못하도록-이것이 금년의 일이오 우리민족의 최고의 명령이다。
동아일보 1946년 1월 1일자 2면

 

  복간 후 주간으로 있던 소오 설의식은 1947년 정해년 신년호에 ‘정해변(丁亥辯)’이란 제목으로 돼지의 큰 덕을 칭찬했다. 1 볼품은 없지만 돼지의 포용력, 희생정신, 용맹스러움은 분명히 본받을만한 덕목이라는 취지다. 2

 

  1948년 무자년은 쥐의 해였다. 3 신년호는 쥐의 장점으로 성실근면과 기민한 행동, 앞날을 위한 준비습성을 꼽았다. 역시 결론은 “우리를 대표하여 대중의 이익을 옹호 대변할 수 있는 선량한 애국지사가 모조리 선택되어 조국을 중흥 재건하는 동량(棟梁)으로 쓰일 것이거니 우리는 보다 더 너그러운 지혜를 각자가 가져야 할 것”이었다.

 

  6·25때 62세로 납북된 신정언은 일제시기와 해방공간에서 야담가로 활약했다. 신정언은 1949년과 1950년 신년호에 연달아 소와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신정언은 동아일보에 근무한 적은 없으나 창간초기 설산 장덕수가 창간사를 쓰던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4

 


동아일보 자료사진
신정언 씨

 

  기축년인 1949년 신년호에서는 소와 관련된 전설부터 야사까지 풀어냈다. 경인년인 1950년 신년호에서는 호랑이도 제약부경(濟弱扶傾), 즉 ‘약한 나라를 구제하고 기울어지는 제신(諸臣)을 도와서 붙들어 준다’는 정신이 있다는 것을 야담을 통해 전하고 있다.  5

 일제강점기에도 이 같은 기사가 있었다. 무진년이었던 1928년 신년호에 용 6에 대한 기사가 있고 신미년인 1931년 신년호에 양 7의 풀이가 실렸다. 갑술년인 1934년 1월 2일자에는 새해의 주인공인 개(犬) 8에 대한 환영사를 늘어놓는다. 병자년인 1936년 신년호는 관련 기획기사를 풍성하게 풀어놓았다. 9 이 해의 신춘문예 만문(漫文)의 제목이 ‘쥐와 인생’ 10이었다. 무인년인 1938년 11 신년호 12의 호랑이 13 기획기사도 풍성했다. 1939년 기묘년 신년호는 토끼 14를 다뤘고 1940년 경진년은 용 15이 다시 등장했다.

 

 

 

Notes:

  1. 소오생(小梧生), 정해변(丁亥辯)-도야지의 대덕론(大德論) (상), 동아일보 1947년 1월 1일자 2면.

    금년은 세차(歲次) 간지(干支)로 정해(丁亥)다。 풀어서『도야지해』다。 부르기가 거북한 이름이다。 더럽고、못나고、먹기만 하고 놀기만 하는 일절의 악명을 왼통 도야지에게 몰리어『돼지같은놈』『돼지같은놈』하고 거세가 일치하야 남으래는 관계상、어감만으로도 불쾌한 이름으로 정칙(定則)이 되였있다。
     불쾌하거든 애초에 쓰지 말일이다。쓴다고 하면、자(自) 갑자을축(甲子乙丑)으로부터 임술계해(壬戌癸亥)에 이르는 육갑(六甲)의 노선은 수미일관(首尾一貫)이니 하는 수 없다。 요지음 세태처름 방편대로 만드는『뒤범벅』일 수는 없다 성립이 급하다고 기정된 정수의 법문을 즉석에서 곳치는 입법의원처름、그렇게 간단하게 정인의『호랑이』로 돗칠수는 도저히 없다。

    작년은 병술이니『개』요、재작년은 을유니『닭』이다。 닭이라 하면 새벽을 연상하야 서광을 의미하고 각성을 연상하야 태동을 의미한다。그래서 그랫는지、을유의 재작년에 해방의 서광을 보앗고 대업의 태동을 보았다。새날이 밝는다고 닭은 울었지만 아직도 새벽이였든지라、강산은 얼빤한 어둠 속에서 갈피를 못찾엇고 민중은 늦잠이 풀리지 못한 채 허둥지둥하였다。『닭』으로 표현하기에 거이 알맞는 정도의 동태였음은 묘한 일이다。
    개는 영역감에 민첩한 동물이오 영지욕(領地慾)에 탐람(貪婪·탐냄)한 동물이다。그러므로 자령(自領)을 편수(偏守)하기에 사력을 다하며 더퍼놓고 배타를 일삼아 짓(폐·吠)기를 잘 한다。침경(侵境·국경을 침범함)은 고사하고 접경(接境)도 못할 정도로 날뛰고 야단이다。그리고 백따귀만 맞나면 으르렁거리고 싸움을 잘한다。냄새도 잘 맛지만 꼬리도 잘 흔든다。한술 밥에도、한덩이 고기에도 꼬리를 흔들며 아양을 부린다。이렇게 쓰다가보니、개 이야기가 아니라 작년 일년간 걸어온 우리 자신의 자화상 가태서 붓이 저절로 멈추어진다。자괴와 자책을 느끼는 까닭이다。

    을유(乙酉)가 그러코 병술(丙戊)이 그런지라、정해(丁亥)의 금년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혹은 무엇을 계시하는가? 엉터리없는『해(亥)』자(字)에 연(緣)을 달아서 도야지의 대덕을 논해보자。
    도야지라고 더러운 것을 자진하야 즐거워할 이치는 없겟다。 집이건 자리건 더럽게 하여 주니까 그저 감수할 뿐이겟다。 다못『오불관언(吾不關焉)』하는 태음적(太陰的) 기질이 유달리 드세일 뿐이다。미추(美醜)와 편부(便否)에 대한 둔감이라 하기보다도 그를 초월한 태연자약(太然自若)이니 말하자면 포용(抱容)중에도 대포용이다。
    『하해(河海)는 불관(不關) 오독지수(汚瀆之水)』라 하야 하해가 가진 관용의 지덕을 일카르거니와、이 같은 논법으로는 도야지의 그 점이 도야지의 미덕이다。차라리 이 잡을 나위도 없이 광막한 대덕을 본떠시 금년 일년은 태음적으로 나갈 수 없을가? 숙시(熟是)라 할 것 없이 숙비(熟非)라 할 것 없이 대둔감(大鈍感) 대포용(大抱容)으로 거세정조(巨細精粗·거대하고 세미한 것과 정밀하고 거친 것)(추)를 한입에 걷어 삼키고 상하좌우를 한 팔에 끼어 품는 그러되 대연자망(大然自茫)하는 그러한 지도자가 과연 없을 것인가? 해년을 위하야 우선 우리는 이것을 대망한다。 (게속)

  2. 소오생(小梧生), 정해변(丁亥辯)-도야지의 대덕론(大德論) (하), 동아일보 1947년 1월 4일자 1면.


    먹기만 하고 놀기만 하는 것을 도야지의『악(惡)』으로 지목하야 도야지를 남으랜다。『제똥 구린 줄은 모른다』는 속담도 있지마는 책기(責己)엔 불충(不忠)이오 책인(責人)엔 충(忠)인 식으로 책돈(責豚)에는 어찌도 그리 분명한가? 먹기만 하고 놀기만 하여서 그야말로 도야지 같이 살찐 사람이 인세에는 과연 없는가?
    도야지는 놀고 먹을지언정 그래도 최후는『살신성인』의 희생을 천생(天生)으로 각오하였다。 사람에게 이 각오가 있는가? 중생의 번영을 위하야 자신의 일명을 버리는 희생을 감수하는 대덕을 가진 자、과연 몇이나 되는가? 글 아는 도야지 있어 만일 이 수록을 읽는다면 독파지차(讀破至此)에 빙그레 웃을 것이다。그리고 다시 한번 방성(放聲)하야 대곡(大哭)할 것이다。

    도야지를 못낫다 함은 그 체국(體局)을 가르침이리라。특히 없는 듯한、쩌른 목과 명목만의 꼬리를 가르침이리라。미상불『볼품』으로는 낙제다。거듭 말하거니와 오직『볼품이 없을 뿐』이다。그 뿐이다。 이『볼품』때문에『못낫다』고 하는 것은 볼품만으로 발나 마치려는 덜 익은 사람들의 덜 익은 말이다。
    불품 있는 꼬리로는 금류에 공작(孔雀)이 있고 수족(獸族)에 여우(狐)가 있다。필자는 이 공작의 꼬리를 미워한다。 그 오만불손한 꼬리! 유한(有閑)『매담』의 부화(浮華)와 같은 그 잡색의 어지러운 꼬리, 시대가 시대인 만큼 형식의 장식에 흐르는 값싼 무지개적(的) 환몽의 상징 같은 그 꼬리를 필자는 즐기지 않는다。더구나 간사하고 요망한 여우적 꼬리、하늘거리고 날름거리고、이리로 알랑、저리로 달랑거리는 그 환술적 꼬리는 애초에 불취다。

    도야지에게 있어서는 볼품 있는 꼬리가 본질상으로 필요치 않었다。볼품보다도『속품』으로 살아가는 도야지의 처세관으로도 그러하거니와 청빈(淸貧)에 자안(自安)하야 누옥에 자적하는 그 심법상으로도 아부에 필요한 흔드는 꼬리의 소유가 필요치 않었다。척추동물로서의 지체와 명분을 확보하기 위하야 꼬리의 명목을 명(名)우면 그만이다。 이로써 못낫다 할진대 차라리 명분 있는 속품의 못난이가 될지언정 기루 같은 볼품의 잘난 이는 안되겟다-하는 것이 도야지의 소신이오 소수(所守)일 것이다。사람으로서 도야지의 이 심경에 공명하는자 그 얼마나 될 것인고!

    도야지는 목이 쩌르다。사뭇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쩌르다。없기론 생선이 일위요 포유족엔 아마 도야지가 상석일 것이다。그러나 목이 쩌르니까 반듯이 못낫고 길어시 반듯이 잘낫다는 논법은 어디에 있는가? 목이 길기론 기린이 수석이다。 그러나 길어서 흠이다。그 길다란 목을 느리여 좌로 우로、혹은 전후로 상하로、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그 주인대 없는 겁정이 태도와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며 어슬넝 어슬넝 걸어가는 그 보조는 풍신 좋은 체능와는 전연히 딴판이다。이로써 기린 자신에 욕은 될지언정 자랑될 이치、천만에 없다。
    도야지는 다행으로 쩗어서 고든 목이다。 고집은 세일지언정 좌고우시(左顧右視)의 추태는 있을 수 없다。 목표를 향하야 일선으로 직진할 뿐이다。그러기에『저돌지용(猪突之勇)』이라 하야 부탕도화(赴湯蹈火·위험을 피하지 않음)의 용(勇)과 검산도수(劍山刀水)를 초개(草芥)같이 보는 용은 오직 도야지에 있을 뿐이다。
    정해의 금년은 도야지의 대덕을 본뜨자。 대포용、대희생、대용맹으로 신지를 향하야 일로로 직진하자!。

  3. 올해의 주인, 서공(鼠公)의 유래, 동아일보 1948년 1월 1일자 3면.

    꼬리는 붓털로, 혜택도 있었으나, 지금엔 흑사병매개자(黑死病媒介者)로 낙제
    날이 밝으니 정해(丁亥)를 보내고 무자(戊子)의 새아침을 마지한다.
    송구영신(送舊迎新) 밝은 해에 미련을 남기고 새해에 희망을 붙이려한다 새해-새해라 하니 무엇이 신통한 것이 갑자기 기다리다 나타나는 것도 아니며 어제와 오늘이 그다지도 다를 것이 없으려만 그래도 사람이란 새날에 희망을 걸고 행복되기를 믿음으로써 성장발전을 보아왓든 것이니 우리는 이 날을 마지하여 어데다 희망을 두고 무슨 행복을 찾어야할 것인가?
    과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육갑이나 십이지에 인연을 붙이고 팔괘를 따지는 것도 쑥스러운 일이지만 이 해를 쥐해라 일커르는 무자의 첫날 은근히 쥐를 생각게 되는 아지 못할 심정도 없지 않다。
    자(子)는 방향으론 정북이요 시각으론 날이 밖귀는 밤중이오 달(月)로는 십일월이오 동물로는 쥐에 해당하니 서수삼백(鼠壽三百)으로 능히 백리밖에 일을 안다하거니 쥐의 족속을 따저 보면 여러가지로 재롱 잘 부리는 다람쥐를 비롯하여 땅속만 뒤지는 두더쥐 낮에는 쥐인양하고 밤이면 새틈에 끼이는 박쥐 과학의 시험대에 자조 오르는 힌쥐 쌀뒤주와 곳간출입을 재간으로 하는 보통쥐 등이 있고 인도(印度) 지방의 쥐는『강가루(대서·袋鼠)라 하여 개처럼 커서 동물원의 구경거리가 되고 구라파의 쥐는 생쥐와 같이 직으며『아메리카』쥐『미키마우스』는 영화(映畵)에도 나타나 벼락부자를 낳기도 하였다.

    그러나 쥐는 음(陰)으로 활동하므로 그 몸이 불결하며 ‘페스트’와 같은 무서운 전염병을 매개하고 먹을 것을 찾어서는 닥치는대로 구멍을 뚤코 치아(齒牙)의 성장을 조절하기 위하여 의복이며 서책이며 궤짝 등을 함부로 무러 뜯어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생활에 받는 피해 실로 직지 않거니와 최근 조사에 의하면 전선(電線)을 쏠아 누전(漏電)의 원인을 만들어 화재까지 일으키는 것이 발화 총 건수의 십분지 일이나 된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옛날 우리조상들은 쥐가죽으로 방한구를 만들어 썻으며 쥐꼬리를 약으로 대려먹고 쥐 수염으로 붓(筆)을 만들어 썻다고하니 전혀 쥐의 신세를 입지 않은 바도 아니고 수양제(隨煬帝) 양광(楊廣)이가 이백만 대군을 모라 고구려를 침노하려하매 고구려의 양식을 먹고 자라난 쥐들은 하롯밤 동안 평양성 서족(鼠族)에 동원령을 나리고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장군을 도읍고 저 밤중에 적진(敵陣)에 잠입하여 이백만개의 활(弓)시위(줄)를 물어 끓음으로써 그 당시 유일한 전투무기인 활을 전부 무용지물로 만들었기 때문에 싸음도 못하여보고 살수에 빠저 전멸을 당하고 살어 도망한 자 불과 수천명에 지나지 않었다고 하니 쥐의 공훈 또한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것이 호랑이 담배피울 시절에 쥐가 남긴 공훈일는지 모르나 그 후손인 오늘의 쥐는 도의를 이저버린 미물이다 만주방면으로부터 흑사병균(黑死病菌)을 날러다 이미 북조선에 전파한 때이라? 남조선에서도 오만원의 현상으로 쥐를 잡게하니 더츠로 약으로 몽둥이로  닥치는대로 쥐를 박멸하여야 백해를 제할 수 있을 것이다 가위 쥐 족속의 수난시다라 할 것이다 이상으로서 쥐에 대한 기자의 짤븐 상식주머니를 털어놓았거니와 쥐의 성격과 활동과 생활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점은 과연 무었일가?

    ◇우선 그들의 성실근면한 점으로 팔일오이후 팽창된 국민의 감격과 흥분을 이용하여 제가 아니면 정국을 수습할 수 없을 듯이 날뛰므로서 정게를 더욱 혼탁케하고 있는 정치 모리꾼과 자기 뱃속만 채이려는 반민족적 도배들은 본연의 자태에 돌아가 성실근면하게 국가민족을 위한 일을 마련하여야할 것이며 학생은 학생으로서 직공은 직장에서 사무원은 관청과 회사에서 성실근면을 역행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로 미런하고 우직하지 말어야 할 것이니 각자가 처한 사회의 환경을 보아 기민하게 행동을 가저야할 것이다
    ◇셋째로 앞날을 위한 준비가 있어야할 것이니 쥐는 언제나 굴속에 상당기간 소비할 식량을 확보하는 습성이 있고 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입구(入口)와 출구(出口)두 구명을 뚤허두는 지헤를 가지고 있거니와 우리도 만일을 위한 만전의 심산게략과 예비적인 경제적 축적을 가저야할 것이지만 모리꾼의 준동과 행정시책의 졸렬로 ‘인푸레’만 격성되어가고 있으니 쥐이상의 공작과 활동으로도 오히려 뜻을 이룰 수 없이 되었다
    그러나 금후 일주일 남짓하면 우리 정부를 수립하기위한 국제연합 조선위원단이 서울에 들어와 사무를 개시하고 총선거의 준비를 진행시켜 삼월삼십일 이전에 모든 사업을 완료하고 국회가 성립되면 정부가 수립되고 국권이 우리 손으로서 우리를 위한 진실한 시책이 운영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인민을 기만 농락하고 인민의 고혈을 빨려하든 도당은 완전히 선거에서 제외되고 진실로 우리를 대표하여 대중의 이익을 옹호 대변할 수 있는 선량한 애국지사가 모조리 선택되어 조국을 중흥 재건하는 동량(棟梁)을 쓰일 것이거니 우리는 보다 더 너그러운 지혜를 각자가 가저야할 것을 오늘따라 요청된다.

  4. 신정언(申鼎言), 우(牛)의 전생차생(前生此生), 동아일보 1949년 1월 1일자 3면.

    감구(感舊)의 회(懷)
    내가 동아일보 지면에 붓을 대하려하니 옛일의 새로운 것이 많으나 특히 화동마루턱 벽파풍창(壁破風窓)한 사옥인 편집국에서 당시 주간이든 고 설산 선생이『취지선언』이라 제한 창간의외 문구 수정을 토의하던 생각이 새로워진다。슲으다。설산 선생은 속절없이 갔으나 동아지는 또한 축년 신춘을 마지하게 되었다。이에 나는 설산 선생이 맨드신 동아지가 아국의 언론문화을 위하여 소와같이 씩씩히 건투하고 아울러 동아지의 천추에 빛나는 필치로써 설산 선생의 영원한 명복을 빌고저 한다。

    우의 생리적 특징
    우는 동물학에 속한 부분이 너무나 어수선하다。즉 척추동물 중 포유류에 속하였고 포유류중에서도 유제류이며 유제류 중에서도 우제아류(偶蹄亞類)며 우제아류 중에서도 반추류요 반추류중에서도 동각과(洞角科)며 동각과중에도 우족에 원하였다 우족은 자연우족과 인공우족이 있다。자연우족에는 원우(原牛)、가우(家牛) 등 여섯 종류가 있으니 우리가 보통으로『소』라하는 것은 즉 가우다。 가우를 또한 구별하면 류원우(類原牛)、대액우(大額牛)、장액우(長額牛)、단액우(短額牛) 등이 있으니 그 구별의 표준은 대개는 우의 액으로써 정한 것이다 그런데 소위 인공우라 하는 것은 철、석(石)、고무 등으로 우를 맨들 제품 혹은 조각물을 말한 것이다。 인공우중에 특이한 것은 지나삼국시대에 한의 제갈량의 목우(木牛)다。 즉 제갈량이 기산에 출사(出師)할 때 목우로써 자연우와 같이 군량운반에 사용하였다는 것이다。그런데 우제류중에 우가 다른 동물에 비하야 생리적으로 특징을 가진 것은 소위 반추다。 반추는 이미 먹었든 식물을 다시 토하야 저작하야 생키는 것이다。이 반추는 다 같은 우제류에 속한 양과 록 등에도 없고 오직 우의 독특한 생리적작용이다。

    그 전생은 우신왕
    우는 현세에서는 한낫 동물로써 천대를 받는다。그러나 □국(國)의 우신왕이라는 존엄을 가젓다 우왕신의 책임은 오직 인간의 죄인을 다스리는 사법궁임으로 우신왕국의 설비는 다만 지옥뿐인 것이 특색이다 그런데 그 지옥의 재판은 이심제다。
    (일)은 마두신(馬頭神)이 담당한 것이 있고
    (이)는 우두신(牛頭神)이 담당한 것이다。그중에서 최고심의 책임을 가진 것이 우두신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십팔숙 중의 일선관이요 또 한편으로는 염라국왕의 시종으로 근무하였다 그 시종이 되는 우는 대체로 빈우(牝牛·암소)를 채용하였다 그런데 우시종(牛侍從)은 우연한 사정으로 잠시 공무를 게을리 한 벌로써 지상에 방축이 되여 일생을 고역으로 지내게 하였으니 그 우시종은 지금 지상에 있는 우의 시조다. 그런데 칠월칠석에 나타나는 견우는 우중의 성우(聖牛)로써 우신왕국의 선관이니 성우타함은 목자에게 평화롭게 끌려가는 형상을 가르켜 말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우는 신화중 제일위의 지(地)벌를 가졌다. 또한 □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꿈에 우가 보이는 것은 조상의 현몽이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의 전생은 그 존재가 고귀하였으나 잠시 과오로 말미아마 차생에서는 지극히 천대를 받는 동물이 된 것이다 이에 수양에 뜻을 가진 선비로는 일고(一考)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의 종교상 지위
    어떤 종족이던지 종교적 관념이 없는 종족은 없다。다만 그 숭배의 대상물이 문야의 차이를 따라 서로 다를 뿐이다。예컨데 태양、전광뢰성(電光雷聲)、풍우(風雨)、운무(雲霧)、금석(金石)、암토(岩土)、초목(草木) 심지어 생식기까지가 각각 그들의 종교적 숭배물 되었다。 그러므로 우가 종교적 숭배물이 된 것도 의외의 사(事)라 할 수 없을 것이다。즉 옛날 애급(埃及)과 인도에서는 우신이 있음을 인식하고 우를 숭배하였다。특히 인도에서는 불교상 신우(神牛)가 있다하였으니 그 신우는 즉 수우(水牛)를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인도인은 수우이외에 백우도 숭배하고 백우 중에도 빈우(牝牛)는 더욱 존귀히 숭배한다。그러므로 인도인은 우육을 금한다。그래서 인도인과 회회교도(回回敎徒)사이에 각금각금 충돌이 생긴다。그 까닭은 □ 교도는 돈(豚)를 숭배함으로 돈육을 금식한다。그런데 회회교도가 우를 살하는 때 인도인은 대노하고 인도인이 돈를 살하는 때 회회교도가 분개하여 필경은 일대충돌을 일으키게 된다。우는 일반적으로는 천대하는 동물이나 그 종교상 지위가 비범한 것으로 보아 기왕 우(牛)도 태여날 바에는 애급이나 인도에 태어나는 것이 우로서는 상팔자의 우라 할 것이다。

    대금업자의 화신(化身)
    우는 이상과 같이 신화상 토자도 되고 종교상 신앙물도 되었으나 또 한편으로 □□자(者)는 사후에는 반드시 우로써 화(化)하여 고역으로써 벌을 당한다는 것이다。그것은 흉악한 대금업자가 사후에 우로써 화한 실례의 기록이 있는 까닭이다。즉 류취(類聚) 제 삼십구권 우편(牛篇)에 아래와 같은 실기가 있다
    당정원시대 해감현에 대문이란 흉악한 대금업자가있었다。 그는 취리가 너무나 가혹하여 린인(隣人)의 원성이 충문하였다 그런데 대문이 죽은 뒤에 그 이웃 농가에서 우가 거문송아치를 생산하였는바 엽구리에만 백모가 생하고 그 백모는『대문』이란 이자(二字)의 자형(字形)이 또에 우가 되었다고 떠들었다 대문의 자는 크게 부끄러워 그 우를 매입하여 그 백모를 불로 살으고 동리인들을 명예훼손으로써 법관에 호소하였다。관인이 그 우를 관청에 끌어드리어 진가를 검사할 새 그 백모가 또한 솟아나오며 대문이자가 또렷이 나타났다。 관인이 기이히 생각하고『대문아』라고 불렀다。그 우는 고개를 고덕이며 눈물을 흘렸다 하였다。 그 기록의 진부는 하여하였든지 요컨대 인(人)을 해(害)하고 기(己)를 리(利)하려는 것을 경계한 기록인 것은 틀림이 업는 것으로 생각한다。

    국사상의 기형우(畸型牛)
    천지간의 만물 중 혹시 상태(常態)의 조직을 떠나 기형(型)을 일운 것이 불무한 것으로 보아 우인들 어찌 그런 기형물이 없다 할 것인가 우리 국사상에도 기형우의 기록이 적지 아니하다 그것을 일일이 매거(枚擧)키는 곤란함으로 수례(數例)를 들어보고자 한다。
    (일) 신라 파사왕 5년 5월에 고(古)타 군주로부터 청모색의 우를 납(納)하였다 청모색우는 일종의 기형우(牛)라 칭하였다。
    (이) 신라 혜공왕 2년 2월에 개(個)요 5개중에 특히 일개는 천공을 가르치듯이 우으로 뻗치었다。오각이란 것도 분명 기형이여늘 허물며 일각이 우으로 뻐첫다는 것은 기형 중에도 기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삼) 백제시조 온조왕 25년 춘삼월에 한성산에서 마(馬)가 우를 나엇는 바 그 우는 일두이신(一頭二身)인 기형우이었다。왕은 크게 괴이히 생각하고 일관에게 길흉을 물엇든 바 일관은『일두이신은 대왕께서 장차 린국을 겸유하야 일국을 일우실 징조입니다。』라 하였다 그 뒤 왕은 과연 마한(馬韓) 변한(辨韓) 등을 병탄케 되었다 이러한 기형우는 우리 국사상에도 많거니와 특히 지나사상에는 그 예가 허다하다。

    아국 최초의 농우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우를 중시하였든 것은 사기의 기록이 잘 증명하는 바이다。그런데 사우(飼牛)는 다만 농가에서만 한 것이 아니요 관영으로도 사축하였다。그래서 관우、민우의 구별이 있었다。관우의 목적은 만일 민우가 부족해야 작농에 영향이 미치게 될 경우에는 관우를 빌려주어 작농의 실시가 없게 하였다。국사상 천 규모로서 관우를 공급한 것 종왕 십년이다 특히 이 태조는 건국초로부터 삼금법이라는 법률을 반포하야 우를 함부로 도살하는 것을 엄금하였다。그런데 우를 작농에 처음 사용케 된 것은 신라 제22세 지징왕 3년부터 시작하였다。이와 같이 리 나라의 농우는 유구된 유래를 가졋스며 법의 보호도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그런데 우는 작농이외에『우는 성자의 승물』이라는 말이 있다。그래 그랫는지 지나사의 일례로만 몰지라도 제(帝)요가 현인(賢人)인 소부(巢父)에게 천하를 양(讓)하려할 새 소부는 사양 후에 우를 승하고 전원를 향하였다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세종조의 명상인 맹사성이 늘 우를 기하였다한다。
    결론 우는 비록 미물이라 할지라도 인생과 직접 관계가 많으므로 그에 관련된 문헌도 적지 아니하다. 그러나 지면관계상 우가 화폐의 원조가 된 것、우의 관상、투우경기、우점의 길흉、우분(牛糞)의 다과(多寡)로 빈부를 구별하는 풍속 우각이 꼬부라진 전통 등에 대한 것은다음 기회를 양(讓)하고 축년을 마지하여 우와 같이 온순하고 우와 같이 힘차게 작업하여 민국의 장래가 영(永)

  5. 신정언(申鼎言), 인년축필(寅年祝筆), 구호(丘虎)의 육(肉), 동아일보 1950년 1월 1일자 4면


    제약부경(濟弱扶傾). 이 말은 인간의 가장 높은 미덕을 표현한 것이다 그 뜻은 약자를 건지고 경자를 붓잡아 준다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정신인가
    제약부경의 본능은 동물에게도 있다는 실례를 드는 것이 구호의 육이란 글씨의 골자다. 그 골자로써 경인의 신희(新禧)를 맞이하려는 것이 이 신춘의 축필이다

    기고 날고 뛰고 자멱질하는 짐승의 종류가 60여만이라 한다. 그 60여만의 짐승들을 통틀어 동물계라 한다 동물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을 맹수라 한다. 호랑이는 맹수 중의 하나이며 그 문벌도 대단이 혁혁하다
    즉 동물계를 나누어 8대 부문으로 하고 문을 다시 나누어 오대류로 하고 류를 또 다시 나누어 양대파로 하였다
    그런데 호랑이는 제일문에 속한 척추동물이요 척추동물의 오대류 중에 제일류에 속한 표유류요 표유류의 양파 중에 제일파에 관한 육식성파다
    그러므로 호랑이는 동물계에서 그 문벌이 혁혁하다는 것이다

    동물 중에 특히 육식성파에 속한 것은 모두가 맹수요 맹수는 대개가 무자비성이다 호랑이도 물론 무자비성이다 특히 엿글에『폭호림하(暴虎臨河)!』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은 자비성이 없는 호랑이 중에도 일층 폭악한 호랑이는 산중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산수가 서로 연접이 된 곳을 차자 다닌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산길과 물길이 연접된 곳이래야 잡아먹을 것이 많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가장 폭악하고 또는 침략성과 착취심이 많은 것은 부동항(不凍港)을 욕심내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호랑이는 자비성이 없는 맹수이면서 독특한 성격이 셋 있다 (일)은 근신이요 (이)는 집단생활이요 (삼)은 연애생활이다
    즉 표범이나 살굉이나 이리 등은 닥치는 대로 해치나 오직 호랑이는 제가 해를 받을 의심이 생기기 전에는 함부로 덤비지를 않는다 또한 다른 것들은 산등성이로 왕래하나 호랑이만은 반드시 산가으로 다닌다 그것은 해를 당할 경우에 피신하기가 용이한 것을 취한 것이다 이것이 근신성의 일례다.
    또한 다른 것들은 제퓰대로 생활을 하나 호랑이는 집단적 생활을 한다 가령 어떤 호랑이가 비명을 낼 때에는 여러 호랑이가 원근을 불문하고 몰려들어서 그 호랑이를 구호한다 다시 말하면 호랑이는 공존공영으로 거부권을 쓰지 않는다 그것이 집단생활의 일례다
    또한 호랑이는 반드시 짝을 지어 다닌다. 즉 가족제도를 부인치 않는 것이 호랑이가 사랑의 생활을 하는 일례다 호랑이는 맹수이지만 이러한 특성이 있어 그 무자비성을 함부로 부리지 않음으로『산중군자다!』라는 별명까지 있게 된 것이다 이 별명은 오직 호랑이만 가진 것이 우연한 사실이 아니다
    호랑이는 그와 같이 산중군자의 칭이 있으므로『구호의 육』이란 기이한 일까지 생기게 된 것이다

    때는 이태조가 □국(國)한 초엽이다
    당시 함경도 덕원 땅에 이칠이란 상인이 구고라는 노동자에게 상품을 질머 지우고 행상을 떠났다 구고는 무실무가한 가련한 남자이었다. 그런데 구고는 도중에 불행이 득병하여 볼개미 고개 지금 신흥지경(新興地境)에 이르러는 쓰러졋다 이칠은 산중에서 어찌할 수 없어 부득기 구고를 버리고 갔다 구고는 쓰러진 자리에서 3일간을 혼도하였었는데 뜻밖에 입안에 젖꼭지 같는 것이 들어있으므로 빨어 보니 훌륭한 젖(乳)이었다 구고는 그것을 먹고 정신을 차려보매 천만 뜻밖에 암호랑이가 젓을 먹인 것을 알었다 그 뒤로 구고는 회생하였을 뿐 만 아니라 그 호랑이는 마치 한 식구와 같이 매일 여러 짐승을 잡어다 주었다 구고는 그 고기를 팔아서 성가를 하게 되었다 세상사람는 그 기이한 내용을 자세히 안 뒤에 그 짐승들의 고기는 구고의 호랑이가 잡어다 주어서 파는 것이라 해서
    『구호의 육!』
    이란 말이 생긴 것이다 동물도 제약부경의 정신이 있다 그런 정신의 인연이다(끝)

  6. 용의 기략(紀略), 동아일보 1928년 1월 1일자 20면.

  7. 양자해(羊字解), 동아일보 1931년 1월 1일자 16면.

  8. 갑술(甲戍)맞이, 동아일보 1934년 1월 2일자 19면.

  9. 역학 상으로 본 자년(子年)의 운세, 동아일보 1936년 1월 1일자 37면.

  10. 쥐와 인생, 동아일보 1936년 1월 1일자~11일자.

  11. 무인(戊寅)과 인물, 동아일보 1938년 1월 1일자 9면.

  12. 조선사상(朝鮮史上)의 무인(戊寅), 동아일보 1938년 1월 1일자 9면.

  13. 호생원(虎生員), 담배 먹든 때 회고담, 동아일보 1938년 1월 1일자 22면.

  14. 기묘(己卯)와 인물, 동아일보 1939년 1월 1일자 5면.

  15. 금룡(金龍)에 난 인물, 동아일보 1940년 1월 1일자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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