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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것이 K의 글임을 설명하였다.” 1

  유진오가 김성수 대신 신문에 글을 썼다고 말한 K는 매일신보 기자 김병규였다. 2 김병규는 영문팸플릿 ‘The Traitors, And The Patriots(반역자와 애국자)’가 나왔을 당시에도 매일신보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매일신보는 아놀드 군정장관의 인공부인 성명에 대해 ‘아놀드 장관에게 충고함’이라는 ‘H생’ 명의의 반박문을 게재했다가 2일간의 정간처분을 당했다. ‘H생’은 정경부장 홍종인이었다. 3 일제시기 말 정치부장으로서 저명인사들에게 학도지원병 격려의 글을 청탁했던 이원영 4은 해방 후 매일신보를 떠나 막 자유신문을 창간한 참이었다.

 

  김병규가 매일신보를 그만 둔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5 매일신보 경성일보 출신의 좌익기자들이 많이 참여했던 민전 산하의 문학가동맹에서 활동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6

 

  동경제대 불문과 출신의 김병규는 서울대 사범대 강사를 하면서 1948년까지 활발하게 번역과 평론활동을 벌이다 문단에서 사라져버렸다. 7

 

  이후 김병규는 1956년 북한에서 번역 출간된 루이 아라공의 ‘공산주의자들’(평양:국립출판사) 전 6권 중 제 1권의 번역자로 다시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북한에서 1991년 발행된 세계문학전집 제 26권 스땅달의 ‘붉은 것과 검은 것’(평양:문예출판사)이 김병규가 번역한 것으로 소개돼 있지만 이 전집이 1960년대 중반부터 출간되기 시작됐고 역자후기 등이 없어 언제 번역했는지는 알 수 없다. 8

 

 

 

 

Notes:

  1. 유진오, 인촌선생추념기, 고대신보 1956년 2월 20일자 1면.

    K가 써서 인촌 선생의 이름으로 발표한 글을 K가 거(居)하는 단체가(또는 K자신이) 영어로 해역(解譯)하여 정치적 공격에 이용한 것이다.

  2. 유진오, 양호기, 고려대 교우회 신문 고우회보 1972년 7월 5일자 7면.

    신문이라야 그 때 우리말로 간행되는 것은 총독부기관지인 ‘매일신보’ 하나뿐이었다. 나한테 그 명령을 전달해온 것은 매일신보 기자인 김병규(金秉逵)군이었다. 김은 일본고등학교 시절부터 나와는 편지를 주고받던 수재 타입의 청년인데, 동경제대 불문과를 다니다가 일본서 법문계 학생들이 학병으로 끌려 나갈 때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와 매일신보 기자를 다니고 있었다.

  3. 유진오, 편편야화-해방과 나, 동아일보 1974년 5월 2일자 5면.

    매일신보 편집국을 들어서니 장철수 기타의 사람들이 달려들어「오메데도로」(경사스럽습니다)를 연발한다。 정인익 편집국장을 만나 수상의 유고「게라」를 보았다。 그리고 홍종인 군을 따라 조사실로 가서「포츠담」공동선언이 실린 만주신문을 보았다。

  4. 이원영 전 매일신보 정치부장, 언론비화 50편, 한국신문연구소, 1978, 95쪽.

    정치부장으로 있던 1944년 어느 날인가 하루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과 도서과장이 나를 만나자는 것이었다. 또 무슨 명령이 있으려니 하고 잔뜩 긴장해서 갔더니 그들은 별다른 이야기도 없이 요정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일반적인 세사(世事)에 관한 것이었으므로 별다른 것이 아니겠거니 하고 헤어지려는데 도서과장이 나에게 큼직한 취재 활동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부탁이란 소위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을 위해 한국 청년이 전쟁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한국이 대동아건설에 강력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청년을 고무하는 강연회나 글을 쓰도록 날더러 송진우 안재홍 여운형 홍명희 제씨(諸氏)와 교섭하라는 요지였다. 나는 별다른 저항 없이 그들의 요구를 따르고 말았다.

  5. 김병규, 수난의 학병과 함께, 학병 제2집, 1946년 2월 25일자,73쪽.

    이글은 학병동맹 참사가 일어난 처음부터 학병동맹 회관에 인접한 사회과학연구소에 유숙하다가 애무하게 학병들과 같이 피검, 도경찰부(道警察部)에서 2일간 유치당한 후에 석방된 김병규(金秉逵)씨(모신문사 기자)의 수기다.

  6. 이상돈, 공산당전술해부-특히 그 선공술에 대하여, 주간지 신태평양 1947년 8월 30일자 8호 5면.

    일제시대에 매일신보 경성일보에서 왜적의 전쟁수행을 위하여「언론보국에 정신(挺身)하였고 왜군의 전쟁 살인 철학을 정당화시키기에」문필보국을 하던 악질언론인과 신문기자가 공산당원이 되어 적반하장격으로 대성질호(大聲叱呼)하는 것은 양심의 자살행위가 아니고 무엇이랴。일제에 충성을 다하던 분자들이 민전(民戰)산하의 문학가동맹의 중요직을 차지하여 인민문학을 운운하며 반동문학 타도를 절규하는 기관기상(奇觀奇相)이야말로 세기적 골계극의 일막이 아닐 수 없다.

  7. 김병규 역, 앙드레 지이드의 좁은 문, 을유문화사,1948, 259쪽.

    저자약력. 1912년 경북 영주서 출생. 일본 동대 문학부 불문과졸업. 동 대학원 중도퇴학. 해방후, 국립서울대학 급(及) 경제전문학교 강사를 역임. 현재, 국립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강사에 취임. 역저술에 ‘미국론’ 기타 문학평론 등;= 이 책 외에 김병규가 번역한 책은 A 지그프리드의 ‘미국론’(을유문화사,1947)가 있다. 을유문화사가 발행한 학풍 1948년 9월호에 ‘앙드레·지이드 론’, 같은 해 11월호에 ‘학문과 학도’란 글을 발표했다.

  8. 김병규 역, 루이 아라공의 공산주의자들 제 1권, 평양:국립출판사,1956, 334~343쪽.

    역자후기. 역자 김병규.;=김병규가 북한에서 번역한 책은 이밖에 라 퐁테느의 ‘우화집’(조선문학예술총동맹 출판사, 1963)와 앙리 바르뷰스의 ‘포화:분대의 일기’(평양:국립문학예술서적출판사,1958)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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