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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oryⅡ 32 : 인촌과 애산 (1)

Posted by 신이 On 10월 - 19 - 2012

 

애산 이인이 1945년 8월 하순 ‘임시정부와 연합군 환영준비회’를 조직하면서 인촌 김성수를 부위원장에 위촉한 것은 항일민족운동동지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인은 항일변호사였다. 1942년 12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끌려갔다가 1945년 초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인이 해방의 소식을 듣고 8월 15일, 서울에서 처음 들렀던 곳도 세종로 동아일보사였다. 김성수는 55세, 한살 위인 이인은 56세였다. 둘 다 일본유학을 했지만 같은 기간에 유학한 것은 아니다. 김성수는 1914년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를 나왔고 이인은 1918년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임시정부와 연합군 환영준비회는 9월 4일 서울시내에 배포한 전단 1에서 “이제 멀지 않아 우리 임시정부와 연합군은 민족해방의 귀한 선물을 가지고 이 땅에 들어오게 되었다”며 “정치적 견해와 외교적 관계를 초월해서 다 같이 우선 마음껏 환영하고 위로하고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환영준비회는 우익인사 중심으로 구성됐다. 권동진이 위원장에, 조병옥이 사무장에 뽑혔다. 그러나 이날 건국준비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선출되는 변호사 허헌이 김성수와 나란히 부위원장에 올라있어 눈길을 끈다. 허헌은 병원에 입원중이었다.

 

  김성수가 부위원장직을 수락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인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단체나 정당을 만들 때 사전 상의 없이 아는 사람 이름을 나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2 위원장으로 추대된 권동진도 거동이 불편해 결국 이인이 위원장을 맡았다. 3

 

  김성수가 부위원장의 역할을 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10월 20일 연합군환영회에서 이인이 개회사 4를, 조병옥이 환영사 5를 하고 권동진이 “연합군 만세” “미합중국 만세” “대한독립 만세” 6를 선창한 것으로 미뤄 당시 간부로 선출됐던 사람들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개회 선언을 한 오세창 7은 준비위원, 악단의 지휘를 맡은 현제명은 실행위원이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1945년 10월 20일 중앙청에서 열린 연합군환영식

 

 

 

Notes:

  1. 자료대한민국사 1, 1945년 09월 04일, 임정 및 연합군환영준비회 조직[출처: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조병옥, 김성수 등 유지는 종로 청년회관에서 임시정부와 및 연합군을 환영하는 환영준비회를 조직하고 환영절차 등 환영에 대한 일체의 준비를 급히 하고 있다. 위원장은 다음과 같으며 동회에서 일반위원의 긴밀한 연락을 바라고 있다.

  2. 최영희 김호일 공편, (애산)이인, 애산학회 편, 과학사, 1989, 193쪽. 정당발기인만 하더라도 사전 상의 없이 아는 사람 이름을 나열했다가 항의를 받는 등 실제의 혼란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3. 이인, 나의 제헌국회의원시절 전후, 신동아 1977년 7월호, 동아일보사, 147쪽. 회장인 권동진 씨가 전신불수라 말도 잘못하고 거동도 못하여 결국 내가 대신 회장직을 맡아 해방 후 처음 중앙청에 태극기를 꽂고 연합군환영대회를 성대히 끝냈다.

  4. 자료대한민국사 1, 1945년 10월 20일, 경성시민주최 연합군환영회 개최[출처: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현제명이 지휘하는 고려교향관현악단의 모차르트작곡 교향곡이 끝나자 이인이 등단하여 개회사를 말한 다음 전원 기립한 가운데 우리들의 애국가가 시작되었다.

  5. 조병옥, 나의 회고록, 민교사, 1959년, 147쪽. 내가 환영사를 하려고 단상에 등단하자 수만 군중들은 우뢰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환희와 감격에 넘치는 만세소리가 천지를 진동케 하였던 것이다.

  6. 자료대한민국사 1, 1945년 10월 20일, 경성시민주최 연합군환영회 개최[출처: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다시 하지중장의 인사가 있었고 아놀드장관의 답사가 있은 다음 권동진의 발성으로 연합군 만세, 미합중국 만세, 대한독립 만세를 우렁차게 외친 후 소완규의 폐회사와 군악대의 취주로 환영식은 0시 25분 끝났다.

  7. 자료대한민국사 1, 1945년 10월 20일, 경성시민주최 연합군환영회 개최[출처: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왼편으로부터 아놀드소장, 하지중장, 이승만, 권동진, 오세창 바른편 가슴에 붉은 백일홍 꽃송이를 꽂고 차례로 자리를 잡고 그 뒤로 고급장교진이 들어 앉아 뉴욕타임즈, 에이·피 통신사 등 외국기자단과 영화반들까지 휩싸여 각 신문사의 사진반이 일제히 촬영 한 동안 샷타를 끊는 소리가 지나간 뒤 정각보다 조금 늦게 열한시 십분 오세창으로부터 개회를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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