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를 통해 본 선거]<下> 역대 대선에서 드러난 시대정신은?
○ ‘안보’→‘안정’→‘경제’ 등 선택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여야 후보가 내세운 가치들이 확연하게 대비됐다. 여기에는 유권자들이 각 후보에게 당시 기대했던 가치도 반영돼 있다. 특히 ‘선거전(戰)’이라는 단어가 주요 키워드로 등장한 5대 대통령 선거(1963년) 이후로 여야 진영 간 대립 구도가 더욱 뚜렷했다.
5대 대선에선 ‘군사정부’와 ‘야당 단일후보’가 가장 많이 쓰였다. 당시 5·16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장악한 군부가 재집권하느냐, 군정 종식을 내건 옛 정치인으로 민정 이양을 하느냐가 국민적 관심사였다. 모두 7명의 후보가 난립해 후보 단일화는 야권의 최대 과제였다. 결과는 공화당 후보였던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키워드인 ‘군사정부’의 승리였다.
7대 대선에선 3선 개헌을 단행한 박 대통령과 40대 기수론을 앞세운 김대중 신민당 후보가 맞붙었다. 당시 박 대통령의 키워드인 ‘국가안보’ ‘(민족의) 영도자’ 대 김 후보의 키워드인 ‘정권교체’ ‘부정부패’로 선거 구도가 짜였다. 선거는 공화당이 승리했지만 개헌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심이 이반해 53.2% 대 45.3%의 팽팽한 접전을 이뤘다.
직선제 개헌으로 16년 만에 대선이 부활된 13대에는 여권이 기치로 내세운 ‘안정’ ‘(민주화운동 여파) 수습’과 국민들의 기대가 반영된 ‘(야권) 단일후보’ ‘민주정부’ 등이 맞섰다. 그러나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후보와 평민당의 김대중 후보로 야권이 분열된 데다가 ‘흑색선전’ ‘지역감정’ 등 과열 혼탁 양상으로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의 ‘안정’이 선택됐다.
17대 대선의 경우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키워드인 ‘경제’ ‘정권교체’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키워드인 ‘부패척결’의 대결구도였다. 정 후보는 이 후보의 BBK 주가조작 의혹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후보의 아들 병역면제 의혹을 겨냥해 “이번 선거의 목표는 부패세력의 척결”이라고 규정했다. 결과는 ‘경제 대통령’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유권자는 선거 당시의 시대정신이 담긴 어젠다에 따라 더 적합한 후보를 선택한다”면서 “‘도덕성’이 어젠다인 16대 대선에선 이회창 후보가 아닌 노무현 후보를, ‘경제’가 키워드인 17대 대선에선 정동영 후보가 아닌 이명박 후보가 선택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수립 이후 초기 대선에선 여야 구분 없이 유권자들의 바람이나 시대적 관심사가 하나로 압축됐다.
제헌국회에서 선출한 초대 대선에선 ‘남북협상’ ‘남북요인회담’ ‘남북총선거’ ‘(미)군정’ 등의 단어가 가장 많이 쓰였다. 광복 이후 남북요인회담을 통해 총선거를 실시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이상론(김구)과 남한만이라도 우선 선거를 실시하자는 현실론(이승만)이 대립했던 시대상황을 드러낸다.
이승만 대통령과 조봉암 후보가 맞붙은 2대 대선과 3대 대선에는 각각 ‘개헌’과 ‘야당연합’이 최대 화제였다.
19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직후 치러진 15대 대선에선 ‘경제파탄’ ‘경제위기’ ‘정권교체’가 최다 키워드로 등장했다. 당시 여권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에 대해 ‘3김 청산’으로 대응했지만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다. 이 후보의 관련어 가운데 ‘(3김) 청산’은 ‘아들’ ‘병역면제’ ‘대선자금’ ‘경제파탄’ ‘친인척 비리’ 등 본인과 여권의 부정적 키워드에 묻힌 탓이다.
16대 대선의 경우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키워드가 대선 흐름을 주도했다. ‘행정수도’ ‘개헌(분권형 대통령제와 4년 중임제 공약)’ ‘햇볕정책’ 등 공약 관련 사항뿐만 아니라 ‘국민경선’ ‘노사모’ ‘노풍(盧風)’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 등도 주목을 받았다. 반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15대보다 더한 ‘병풍(兵風)’ 관련 키워드에 시달렸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