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를 통해 본 선거]<下> 역대 대선에서 드러난 시대정신은?
2002년 이회창 대세론 ‘병풍’ 거짓 폭로에 날아가… 지나친 공세 ‘역풍’ 부르기도
5대 대선을 20여 일 앞둔 1963년 9월 24일, 윤보선 민정당 후보가 전북 전주 유세에 나서 폭로했다. 대한민국 선거에서 네거티브전의 개막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다음 날 동아일보는 1면에 “윤 씨의 발언은 크게 정치문제화하면서 대통령 선거전이 이념 대결로 번졌다”고 썼다.
공화당은 이를 매카시즘 수법이라며 역이용했다. 공직 채용에서 연좌제를 폐지한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빨갱이’ ‘혁명’ ‘보수정당’ ‘사상적 대결’ 등 윤 후보가 제기한 이념 논쟁 관련어들이 최대 키워드가 된 선거에서 반사이익을 본 박 후보가 당선됐다. 불과 15만6000표 차였다.
역대 선거에서 네거티브 이슈는 선거 판도를 여러 차례 바꿨다. 양 진영 간 폭로와 반격으로 선거마다 네거티브 이슈가 주요 키워드로 떠오르며 국민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 스포트라이트를 더 받고도 종종 낙선하는 현상도 여기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직선으로 치른 10번의 대선에서 6번은 신문에 더 많이 거론된 인사가 고배를 마셨다.
16대 대선에서 일찌감치 ‘대세론’을 형성했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낙선한 결정적인 이유도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 때문이었다. 분석 결과 당시 선거의 키워드 가운데 이 후보와 관련된 단어는 ‘병역 비리’ ‘병역 면제’ ‘병풍(兵風)’뿐이었다.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행정수도’ ‘개헌’ 등 공약과 관련된 단어가 주목받은 것과 차이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신민당 후보가 맞붙은 7대 대선에선 두 후보와 관련해 ‘충돌사건’ ‘경호원’ ‘폭력행위’가 가장 많이 쓰였다. 1971년 1월 인천 강화, 경기 김포에서 벌어진 김 후보의 경호원 일행과 경찰 간 폭력사태를 말한다. 여당은 이를 “김 후보 주변에 깡패 집단이 양성되고 있다. 해체시키겠다”며 선거 쟁점화했고 효과를 봤다.
네거티브 공세가 ‘역풍’을 부르기도 했다. 14대 대선에선 김영삼 민자당 후보와 김대중 민주당 후보와 관련해 ‘지역감정’ ‘부정선거’ ‘관권선거’가 키워드가 됐다. 정부 기관장들이 대선 승리를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초원복집 사건’ 관련어다. 하지만 관건선거보다 도청을 통한 폭로의 부도덕성이 부각되며 오히려 영남 집결을 불러왔다.
‘BBK’ ‘주가조작’ ‘실소유주’ 등 폭로 관련 단어가 도배됐던 17대 대선에선 공격을 받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경제’라는 키워드로 맞서면서 표심이 다르게 움직였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