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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oryⅡ 5 : 반갑다, 동아일보

Posted by 신이 On 5월 - 4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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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가 1945년 12월 1일자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강제 폐간된 지 5년 4개월 만이었다. 타블로이드 4면(12월 3일자부터 2면)의 빈약한 규모이기는 하나 의지와 각오는 어느 때보다도 굳었다.

 

 

1945년 12월 1일자 1면


 

 

 

 동아일보는 중간하면서 창간 당시의 3대 사시-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를 내걸었다. ‘속간(續刊, 간행을 중단하였던 신문을 다시 계속하여 간행함)’이 아니라 ‘중간(重刊, 이미 펴낸 것을 거듭 간행함)’이라 한 것은 일제에 의해 숨통이 끊어진 신문을 다시 살려낸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일제치하에서 네 차례 정간조치를 당한 뒤 속간호를 낼 때와는 다른 각오였다.

 

 

 제호(題號)는 1930년부터 1938년까지 8년간 쓰다가 총독부당국의 지시로 바꿨던 그것이었다. 김돈희 선생의 휘호 ‘東亞日報’에 이상범 선생의 도안이다. 흰 바탕의 한반도 주위를 빈틈없이 둘러싼 무궁화로 부활했다.



 

 

 1면 머리에는 중간사(重刊辭) 1를 싣고, 이를 영문 2으로 번역해 소개했다.  중간사는 설의식 주간이 썼다.

 

 


 중간사-주지(主旨)를 선명(宣明)함


 …신문도(新聞道)의 고유한 직능과 사명이 사상(事象)의 충실한 보도에 있음은 물론이려니와 그렇다 하여서 단순한 전달기관에 구안(苟安)하기에는 우리의 요청이 너무도 거대하며, 불편부당의 언론이라 하여 시비의 병열(倂列)과 곡직(曲直)의 혼잡을 그대로 용인하기는 우리의 지표가 너무 확연하며 우리의 정열이 너무도 강렬한 바 있다.

 

 우리는 이미 붓을 들었다. 이 붓이 꺾일지언정 이 붓에 연결된 우리의 혈관에는 맥맥(脈脈)한 생혈이 그대로 격류를 지으리니 시(矢)─바야흐로 현(弦)을 떠난지라, 회의준순(懷疑逡巡)이 있을 수 없으며 좌고우면(左顧右眄)이 있을 수 없다. 오직 우리는 인도와 정의에 칙(則)하고, 대의와 명분에 순(殉)하는 강철 같은 의지로써 춘추의 정필을 잡으려 할 뿐이니, 이리하여 우리의 이 붓이 왕사(王師)의 전위(前衛)되기를 자면(自勉)하며, 파사(破邪)의 이검(利劍)되기를 자기(自期)한다.

 

 만천하의 동지여! 형제여! 자매여! 우리의 염원을 바르다 하시고 우리의 단성(丹誠)을 미덥다 하시어 엄혹한 편달을 아끼지 말지며 절대한 성원을 늦추지 말아 광복의 홍업(鴻業)을 대성하여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미래영겁에 빛나게 하라.

 

 단기는 4278년 12월 1일(서기 1945년), 동아일보 동인 일동은 삼가 이 일문(一文)을 초(草)하여 해방전선에 의혈을 뿌린 재천(在天)의 영령께 봉고(奉告)의 예를 갖추며 아울러 3천만 동포의 심장에 격(檄)한다.


 

 

On Republication-An Enunciation of Aims

 

 The unfailing will of God has brought liberation to this land, and the unending protection of the revered spirits of our fathers has restored to this “chosen” people vitality of freedom, a mark of divine approval of the merits of those that laid down their lives for our national cause and of the glorious exploits of the crusaders of justice in the Far East. A fated scene of historic change, term it as you will, how can we accept it without gratitude and without a sense of beatitude?

 

 The “Japanese flag cancellation” case lent the desperate Japanese oppressors an excuse to silence our press forever. In this day, however, the resurrected Tong-a Daily means to glory in her new life, and, freshly enunciating her aims, to take a mose solemn vow, before the thirty million brethren, to stand by them through thick and thin. …

 

 

 


 각계에서 보내온 축하의 글과 글씨도 실었다. 백범 김구 선생은 축필을 보냈고 이승만 박사, 주한미군사령관 하지 장군, 미군정장관 아놀드는 축사를 기고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중경에서 귀국한 다음날인 1945년 11월 24일 오전 김구(가운데)는 이승만(왼쪽)의 소개로 하지중장을 만난 후 상견례기념촬영을 했다.

 

 


 


 축(祝) 동아일보 복간(東亞日報 復刊)

 경세목탁(警世木鐸)

 

 


 자유로운 전도(前途)축복-조선주재미군사령관 3 

 
 










































 경하불이(慶賀不已)-민정장관 쉬쓰 대장 4 

 

 




 지도기관 되어라-이승만 박사의 말씀 5


 

 

 


 석일(昔日)의 위력 재발(再發)-아놀드 군정장관 6



 

 

 

 






































 횡설수설(橫說竪說) 7도 부활했다.


◇당면한 우리의 첫 일이 무엇이뇨? 가르되 첫째는 우선 독립촉성, 둘째는 우선 독립촉성, 셋째는 우선 독립촉성! 




2면


 

 

 

3면

 

 

  휴지통 8은 3면에 실었다.

 

 

4면

 

 

 


 이에 앞서 조선일보는 1945년 11월 23일자로 속간호를 냈다.  9


 
 

 



Notes:

  1. 중간사-주지(主旨)를 선명(宣明)함, 1945년 12월 1일자 동아일보

     

     천도(天道)─무심치 않아 이 강토에 해방의 서기(瑞氣)를 베푸시고, 성조(聖祖)의 신의(神意), 무궁하시어 이 천민에게 자유의 활력을 다시 주시니, 이는 오로지 국사(國事)에 순절한 선열의 공덕을 갸륵타 하심이요, 동아에 빛난 십자군의 무훈을 거룩타 하심이라 세계사적 변국(變局)의 필연적 일면이라 한들 이 하등의 감격이며 이 하등의 홍복(鴻福)인가?

     

     일장기말소사건에 트집을 잡은 침략자 일본 위정(僞政)의 최후 발악으로 폐간의 극형을 당하였던 동아일보는 이제 이 날을 기하여 부활의 광영을 피력하며 이날을 기하여 주지의 요강을 다시금 선명(宣明)하여 3천만 형제와 더불어 동우동경(同憂同慶)의 혈맹을 맺으려 하는 바이다.

     

     창간 이래로 20여 년 간 압수삭제의 난장(亂杖)이 천도(千度)를 넘었으며 발행정지의 악형이 4차에 이르러 만신이 혈흔이었으나 그러나 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하였던 동아일보는 갖은 모욕과 갖은 박해를 받아가면서도 오히려 민족의 면목을 고수하기에 최후의 고절(苦節)을 다하였던 것이다.

     

     적(敵)은 집병자(執柄者)라, 1938년 8월 10일 필경 살해를 당하고 말았던 것이니, 시일에 민족은 감각을 잃었고, 지성을 잃었고, 정조를 잃어 이 땅의 일월(日月)은 빛이 있는 듯 없었으며 탐정(貪政)의 행패는 그 극에 달하여 이른바 공출은 걸레와 잡초에 이르고, 약탈은 성명(姓名)과 언어에 이르렀으며 겸하여 망량(도깨비)의 조악(助惡)이 날로 더하매 천지는 진실로 암흑한 바 있었으나 8월도 15일, 벽력이 일순(一巡)하자 창천(蒼天)은 한 고비 높아졌으며 대지는 그대로 넓어졌으니 이 하등의 장관이며 이 하등의 성사(盛事)였던가?

     

     동아일보는 창간 벽두에 一. 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하노라. 二. 민주주의를 지지하노라. 三. 문화주의를 제창하노라. 의 3대주지를 선명하여 언론보국의 대강을 삼은 바 있었거니와 이 주지를 통하여 흐르는 일관한 정신은 예나 이제나 다름이 없다. 시세의 제약을 따라 용어의 한계가 있었음은 세고불피(勢固不避)라 하는 수 없었거니와 경경일념(耿耿一念)이 오직 민권의 창달을 주장하고, 민생의 안도를 희구하여 민족전체의 영원한 번영을 위하여 필정(筆政)의 전능(全能)을 경주하려는 단성(丹誠)은 금석(今昔)의 별(別)이 있을 리 없다. 이제 중간에 임하여 우리는 창간 당초의 3대주지를 그대로 계승함에 하등의 미흡을 느끼지 않거니와 현국에 처한 우리의 주지를 구체적으로 부연한다고 하면 대개 아래와 같다.

     

     一. 첫째로 우리는 시간 공간이 자별(自別)한 우리의 독자성을 고조한다. 5천년 동안 시간의 집적으로 육성된 우리의 전통과 긍지, 아세아적 영역의 풍토로 순화된 우리의 이념과 향기로써 민족의 완성, 민족문화의 완성을 부익(扶翼)코자 한다.

     

     二. 둘째로 우리는 민주주의에 의한 여론정치를 지지한다. 그리하여 민의에 의한, 민의를 위한, 인민의 정체를 대성하여 국권의 존엄과 국운의 발양을 위한 모든 건설을 협찬코자 한다.

     

     三. 셋째로 우리는 근로대중의 행복을 보장하는 사회정의의 구현을 기약한다. 그리하여 기회균등의 공도(公道)에 의한 이상사회의 실현을 추진코자 한다.

     

     四. 넷째로 우리는 철두철미한 자주호혜의 정신이 교린(交隣)의 원칙 됨을 신봉한다. 그리하여 영토의 대소, 국력의 강약 등 차별을 초월한 국제민주주의의 확립에 기여코자 한다.

     

     란(欄)을 달리하고 붓을 다시금 다듬어 축조적(逐條的)으로 해명할 기회가 있음을 약속하거니와, 우리는 이상과 같은 주지로써 우리의 행동궤범을 규정하는 동시에 이 선을 연(沿)하여 여론을 환기하며 중의(衆議)를 응집하여 대도(大道)를 개척하고 정궤(正軌)를 부설하려는 것이다.

     

     신문도(新聞道)의 고유한 직능과 사명이 사상(事象)의 충실한 보도에 있음은 물론이려니와 그렇다 하여서 단순한 전달기관에 구안(苟安)하기에는 우리의 요청이 너무도 거대하며, 불편부당의 언론이라 하여 시비의 병열(倂列)과 곡직(曲直)의 혼잡을 그대로 용인하기는 우리의 지표가 너무 확연하며 우리의 정열이 너무도 강렬한 바 있다.

     

     우리는 이미 붓을 들었다. 이 붓이 꺾일지언정 이 붓에 연결된 우리의 혈관에는 맥맥(脈脈)한 생혈이 그대로 격류를 지으리니 시(矢)─바야흐로 현(弦)을 떠난지라, 회의준순(懷疑逡巡)이 있을 수 없으며 좌고우면(左顧右眄)이 있을 수 없다. 오직 우리는 인도와 정의에 칙(則)하고, 대의와 명분에 순(殉)하는 강철 같은 의지로써 춘추의 정필을 잡으려 할 뿐이니, 이리하여 우리의 이 붓이 왕사(王師)의 전위(前衛)되기를 자면(自勉)하며, 파사(破邪)의 이검(利劍)되기를 자기(自期)한다.

     

     만천하의 동지여! 형제여! 자매여! 우리의 염원을 바르다 하시고 우리의 단성(丹誠)을 미덥다 하시어 엄혹한 편달을 아끼지 말지며 절대한 성원을 늦추지 말아 광복의 홍업(鴻業)을 대성하여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미래영겁에 빛나게 하라.

     

     단기는 4278년 12월 1일(서기 1945년), 동아일보 동인 일동은 삼가 이 일문(一文)을 초(草)하여 해방전선에 의혈을 뿌린 재천(在天)의 영령께 봉고(奉告)의 예를 갖추며 아울러 3천만 동포의 심장에 격(檄)한다.


  2. On Republication-An Enunciation of Aims, 1945년 12월 1일자 동아일보

     

     The unfailing will of God has brought liberation to this land, and the unending protection of the revered spirits of our fathers has restored to this “chosen” people vitality of freedom, a mark of divine approval of the merits of those that laid down their lives for our national cause and of the glorious exploits of the crusaders of justice in the Far East. A fated scene of historic change, term it as you will, how can we accept it without gratitude and without a sense of beatitude?

     

     The “Japanese flag cancellation” case lent the desperate Japanese oppressors an excuse to silence our press forever. In this day, however, the resurrected Tong-a Daily means to glory in her new life, and, freshly enunciating her aims, to take a mose solemn vow, before the thirty million brethren, to stand by them through thick and thin.

     

     During the twenty and more years of its publication it suffered suppression or cancellation over a thousand times, and was stopped of publication four times. In the face of all these outrages and persecutions the Tong-a Daily persisted to the very last in upholding the national honour, firm in the conviction of its being the voice of the people.

     

     It was stabbed to death at last by the enemy. Alas for that day! It was as if the race were deprived of its feeling, intelligence and sentiment. Even the sun and the moon looked no longer what they had been. Tyranny reached its zenith, People were forced to part even with their rags and grass. Their names were banned; their language was forbidden. Miscreants egged their already wicked masters on to worse deeds. Thus the country was plunged into complete darkness. Aug. 15th came. With a peal of thunder, as it were, the blue sky looked high over the broad earth. What a grandeur! What a glory!

     

     The three chief aims given out on the very first issue of the Tong-a Daily were to be the organ of the people, to uphold democracy and to advance culture-principles by which to serve the people through press. In the spirit that inspired those aims, there is no change, no difference between past and present. It is true, we were restricted by the then prevailing situation and restrained in the use of language, but the one absorbing thought was to uphold the people’s rights and seek after the general welfare. In the unbending will to exhaust the power of pen in the cause of promoting the prosperity of the entire people, there can be no difference between yesterday and to-day.

     

     In re-opening the press, we do not hesitate to retain those three aims just as they were, still we feel the need of expatiating on them in the light of the present situation:

     

     First, we should like to emphasize our unique racial individuality. By cherishing our traditions and sentiments formed through the long period of 50 centuries and our ideals and tastes nursed in the climate of an Asiatic domain, We mean to contribute toward the perfection of the race and that of the racial culture.

     

     Secondly, we will uphold the democratic polity based on public opinion, thus realizing a polity “of the people, by the people and for the people.” In this way we mean to assist every constructive effort aiming at enhancing national dignity and developing national fortune.

     

     Thirdly, we look forward to the realization of social justice ensuring the happiness of the labouring classes. Thus we mean to accelerate the advent of an ideal community based on fair play of equal opportunity.

     

     Fourthly we believe in the thorough spirit of autonomous reciprocity being the principle of dealing with neighbour nations. So we mean to contribute to the establishment of international democracy taking into no account either territorial size or national power.

     

     We promise to dwell on these points later on. Anyway these principles shall rule our conduct, and, at the same time, be the lines along which we shall arouse public opinion so as to pave a thoroughfare, so to speak, for all, to travel in.

     

     Of course, it is the proper function of journalism to give exact information faithful to facts. But our message is too momentous to be contented with being a mere vehicle of information. Loving impartiality as we do, our guiding policies are too definite and our zeal too strong to describe right and wrong indiscriminately or confound the crooked with the upright. The pen may be wrenched out of our hand, but through our veins connected with it shall surge the tingling blood unchecked. The arrow is just gone from the bowstring. There is no room for hesitation. We are only bent upon wielding a righteous pen, adamantine in obeying the dictates of humanity and justice and in being a martyr to loyalty and duty. We will thus strive to be the vanguard of the righteous army and the sword to extirpate the crooked.

     

     Comrades all over the country! Brothers and sisters! Do not grudge giving us constructive criticism, dudging our aspirations to be wholesome and our devotion to be reliable. Let us thus achieve the great task of recovering our sovereignty and make our people shine for all time to come.

     

     On this day, December 1 thin the year of 4278, we the staff of the Tong-a Daily submit this article with due respect by way of consoling the honoured spirits of those that fell in the struggle of liberation of appealing to the hearts of our 30 million brethren.


  3. 자유로운 전도(前途)축복-조선주재미군사령관, 1945년 12월 1일자 동아일보

     

     나는 다년간 압박으로 출판기쁨의 자유를 잃어버렸다가 이제야 자유로운 신문을 창간 또는 속간할 수 있게 된 여러분의 기쁨에 대하야 경하하는 뜻으로 이 글을 보내는 바입니다.

     나는 귀국의 새로운 장래 곳 압박자의 속박으로서도 능히 멸망시키지 못하엿든 위대한 국민으로서의 자유로운 전도를 향하여 새 출발하심에 대하야 동경하여마지 않는 바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여러분에게 여(與)된 새 자유를 선용하여 국민으로 하여금 행복과 번영의 새로운 수준점에 달하게 하는 방도를 수득(修得)하실 줄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달하심에는 조선인 전부가 일치합력하심과 강력한 협조정신과 근로의 열의와 및 귀국을 발전 향상시키려는 진실한 노력을 요하는 바외다.

     여러분이 생활해온 일본적 경제조직의 완전한 붕괴로 인하여 해방직후의 수개월동안에는 곤란이 있을 것입니다. 새 기원의 기초가 서려는 최초의 수개월동안에는 조선국민의 안전에 직면해 잇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열의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나는 조선인전체가 이 세기적 사업에 총력을 집중하여 목전에 노인 위대한 목표에 도달하실 것을 확신하는 동시에 우리가 도달할 목표가 곳 영원한 ○○이 건설○○는 바입니다.

    -미국육군중장 잔 알 하지


  4.  경하불이(慶賀不已)-민정장관 쉬쓰 대장, 1945년 12월 1일자 동아일보

     

    국민에게 보도기관으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공정한 신문을 가지지 못한 나라는 자유의 완전한 능력을 향유할 수업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다각적으로 관찰하야 공평무사하게 보도하는 것이다. 나는 동아일보가 조선의 주요 신문의 하나로서 다시금 그 당당한 지위를 얻게 된 이 경하스러운 날을 충심으로 축하합니다.


  5.   

    지도기관 되어라-이승만 박사의 말씀, 1945년 12월 1일자 동아일보

     

    동아일보가 나온다하니 매우 반갑습니다.

    나는 미주에 있을 때에 늘 동아일보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국내소식을 전하여주는 유일한 동무로 생각하여왔습니다. 그러다가 몇 해 전인가 일본정부의 압박으로 폐간이 된 사실을 알게 되자 우리 운동의 유력한 동지자를 잃었다고 생각하고 매우 슬퍼하였습니다. 이번 귀국했을 때도 의례히 동아일보는 다시 부활되었으리라고 생각했든 것이 그러하게 되지못한 사정을 듣고 대단히 딱하게 생각하고 적막하게 생각했습니다. 동아일보가 민족을 위해서 싸워오고 노력해온 과거의 공로는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바이겠지만 더 큰 사명과 직책은 지금부터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기관이 가진 위대한 힘은 그 건설에 더욱 필요한 까닭입니다.

     

    내외사정을 충실하게 보도하는 것이 첫째 ○○지만 단순한 전달에 그쳐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또 민중의 의사를 여실하게 반영한다고 해서 흑이나 백이나 분간 없이 추종을 하거나 영합한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일정한 주견아래에서 정세를 살피고 판단을 나리고 지도적 임무를 다해야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정으로 보아서 이러한 지도적인 책임 있는 언론기관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다시 발간되는 동아일보에 대해서도 이 같은 기대를 가지고 전도를 축복합니다.


  6.  석일(昔日)의 위력 재발(再發)-아놀드 군정장관, 1945년 12월 1일자 동아일보

     

    오랫동안 중지되었든 동아일보가 속간되니 대단히 반갑습니다. 국내에서 또 해외에서 야기되는 제반사건을 국민에게 알려주기 위하야 신문은 필요한 것입니다. 신문의 직책은 중대한 제사건의 진상을 공정하게 보도하는 것입니다.

     

    신문경영자의 중대한 책임은 출판의 자유를 진실하게 운용하는데 잇습니다. 나는 동아일보가 조선에 있어서 석일의 위대한 영향력을 다시 발휘하리라고 믿습니다.


  7. 횡설수설(橫說竪說), 1945년 12월 1일자 동아일보

     

     ▼일장기말소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지가 돌아다보니 벌서 구년의 세월 ▼피의 전통을 가진 성(姓)까지 빼앗기든 과거를 회상하면서 대도가 트인 오늘에 이 붓을 들고 이 난을 대하니 문자 그대로 천감만감 ▼천이요 만이라도 뭉치면 하나라. 심두에 응집된 초점은 오직 해방의 감격 자유의 감격 ▼세차는 을유라 고진감래의 복 받은 이해도 저물어 가거늘 완전한 자주독립은 어느 때로 기약인가? ▼재자배지 경자복지 하늘은 자조자를 도우리니 독립의 조만은 에누리 없는 우리 자신의 노력여하 ▼망의 통증을 골수로 체험하○도 흥국의 대도를 그르친다면 내력 있는 민족의 면○이 안재(安在)랴? ▼지표는 오직하나 잡음을 섞지 말고 각 길로 한 신지 사당을 끼지 말고 각 길로 한 신지!



    당면한 우리의 첫 일이 무엇이뇨? 가르되 첫째는 우선 독립촉성, 둘째는 우선 독립촉성, 셋째는 우선 독립촉성! 이하 여백



    세월이 좋아서 영어가 폭등 며루치젖같이 폭등, 무도 배추가 폭등, 이 등쌀 저 등쌀에 대중만 살판 죽을판


  8. 휴지통, 1945년 12월 1일자 동아일보

     

     낡은 휴지통이 텅 비인 채 먼지에 묻힌 지 무릇 몇해런고-▼모진 발길에 채이고 짓밟히면서도 썩어 해어지지 안하고 휴지통은 낡은 휴지통인 그대로 책상 밑에서 새우 솜에 먼지를 털고 덩그렁 △울자니 딱하고 웃자니 턱없고 이보오 삼천만 형제요 자매들 휴지통을 붙잡고 웃어야 옳소 울어야 옳소-▼형님은 북쪽에 아우는 남쪽에 내 땅은 내 땅이나 남북의 발길이 막히고 내 겨렌 내 겨레나 편지 한 장조차 띄울 길이 아득해 딱도 하여 답답도 하여-▼마지노선도 치크푸리트선도 무너지자니 모래성이어든-하필 이 좁은 이 땅에 이 어인장벽이오-만리장성이 제아무리 높으단들 돌 한덩이 뽑으면 무너도지련만-▲삼십팔도선은 돌도 아니요 총칼도 아니어늘 높고 또 높아 넘자니 숨이 가쁘고 긋고 또 그어 헐자니 우리 힘으론 어느 날에나 멋바닥을 볼런지?▼이 선이 헐리는 날 그날을 기다려 휴지통도 다시금 먼지를 털고 웃음 가득 기쁨 가득 떨어지는 대로 주섬주섬 담아보리다.



  9. 조선일보 속간사, 1945년 11월 23일자 조선일보


    1. 만천하의 환호와 기대 속에 조선일보가 오늘부터 속간된다. 3천만 동포가 못내 사랑하고 열렬히 지지하던 조선일보가 조선의 자주독립의 큰 물결에 따라 오늘부터 역사적 재출발을 하게 되었다. 1940년 8월 10일, 당시 총독부측의 횡폭(橫暴)무쌍한 강압에 의하여 눈물을 머금고 강제폐간을 당한 이래 어언 5개 성상, 그간 조선에는 참으로 우리 겨레의 복지를 위한 언론은 일언쌍구(一言雙句)도 있을 수 없었다. 아무리 원통한 압제가 있어도, 아무리 억울한 사정이 있어도 이를 거론하여주고, 두호(杜護)하여주고 동정하여 줄 언론기관은 없었다. 우리는 덮어놓고 ‘황국신민’이 되라는 강잉을 받았으며 덮어놓고 징병으로 징용으로 공출로 전쟁에 철저 협력하라는 호령을 듣고 볼 뿐이었다. 우리는 입을 가졌으나 생벙어리 행세를 하여야 하였으며 할 말은 많았으나 호소할 곳이 없었다. 우리는 죽으라면 말없이 죽는 시늉을 하지 않으면 안 될 환경에 놓여 있었다. 굵은 철쇄(鐵鎖)로 얽매이고 날카로운 총검밋테 떨허 오직 노예적 굴종을 하지 않흐면 안 되엇섯다. 확실히 총독정치 36년간에 이 기간가치 언론이 구속된 때는 업다고 단언할 수 있다.


    2. 그러나 이것은 모두 과거의 일이다. 8월 15일 일본의 포츠담 공동선언수락에 따라 조선의 자주독립은 굳게 약속되고 북위38도를 경계로 미소○합군이 조선내에 진주함에 따라 조선에는 오래간만에 언론의 자유뿐 아니라 집회의 자유, 사상의 자유, ○사의 자유, 신앙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복되었다. 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리고 바라던 자유이런가. 언론의 자유가 ○복됨에 우리 동인은 경희작약하여 쾌재를 부르고 그 당시에 던졌던 붓을 다시 들고, 멈추었던 윤전기를 다시 움직이어 ○○없이 건국대업완성에 관한 여론을 ○기하여 우리의 나아갈바 길을 밝히고, 시시각각으로 ○전하는 세계정세를 잡아 우리가 알아야만 할 정보를 전하려 하였다.

     또 노력도 하였다. 그러나 그간 5개년동안의 우리 사회가 겪은 풍상은 우리로 하여금 당장에 재기케 하기에는 너무나 가○하였었다. 동인들도 흩어졌었거니와 종이도 없고, 기*도 마땅치 않은 상태다. 따라서 우리의 성의를 바로 피력치 못하고 우금껏 늦어지게 되었음은 3천만 동포에게 깊이 ○과하는 바다.


    3. 우리 조선일보는 군정○의 우호적 지시와 이해있는 알선에 의하여 오늘부터 재기한다. 그전과 같은 형태는 다 못 갖추나마 현하 정세가 용○하는 대로의 최선을 다 하려한다. 그 내용에 있어서는 정의○호 · 문화건설 · 산업발전 · 불편부당의 그 전 그 사시를 걸고 웅대한 기우와 활발한 필치로 국내 사정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의 주요동향을 그대로 ○○하고 또 비판하여 하문자 그대로 안으로는 사회의 목○이 되며 반사경이 되고, 밖으로는 /연합국의 원조에 보답하며 세계평화 유지와 문화발전에 기여하려 한다. 사시는 설명할 것도 없거니와 정의옹호는 여하한 불법한 권력에도 조금도 굴할 리 없고 또는 타협함이 없이 과감히 길항하여 어디까지나 정의라고 인정되는 바를 철저히 옹호하려함으로서 생활에 있어서나 직업에 있어서나, 권리의무에 있어서나 우리 국민은 기회를 절대 균등히 하여 어떤 부분이고, 어떤 당파이고, 권세를 ○○하며 경제를 독점함이 없게 하여 국민인 이상 적어도 최저생활은 확보할 수 있도록 하기를 주장한다.


    문화건설은 이때까지 짓밟혔던 우리 전래의 문화를 찾아내어 이를 빛내이고 이를 발전향상시키어 조선의 독특한 문화를 ○○하는 동시에 세계문화발전에도 이바지하기를 기하려한다.

     우리의 힘, 우리의 자력으로 온갖 산업을 개발○○시키고 주로 산업은 국○를 ○강시키는 한건 우리 겨레의 생활수준을 높이려는 것이다.

     불편부당은 어느 일당일파에 기울어지고 치우침이 없이 지공지사 시시비비주의를 견지하여 사실대로 보도하고 비판함으로써 국민에게 정당한 판단의 자료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4. 현재의 국내정치동향을 살펴볼 때 독립촉성 중앙협의회를 중심으로 대동단결의 기운이 익어가고 또 중경에 있는 대한임시정부도 불원 귀국하게 됨은 조선의 자주독립 촉성을 위하여 참으로 반가운 현상이다. 그러나 아직도 주의주장이 다른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립 대치하고 있는 정당이 있음은 자못 ○○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다같이 주의주장이 판이한 것은 서로 각립함이 의당타할 것이나 같은 민주주의를 표방하거나 공산주의를 표방하면서 따로 당파를 모아 서로 걸고 트는 것은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 하여도 영웅주의를 탈피못한 두령싸움이 아니면 지방색을 가리는 사이비 봉건층의 분공작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당파싸움을 하다가 우리나라를 망친 것은 몸으로써 경험한 이도 많고 또 들어서 우리 기억에 새로운 바가 아닌가. 자주독립의 깃발이 펄펄 날리기 전엔 서로 보기도 싫은 파쟁은 일○하자.

     비록 주의와 정강이 다른 당끼리라도 독립촉성을 위하여서는 서로 제휴하고 서로 협력하자.

     그런 후에 각당의 주의와 정강을 3천만 동포에게 널리 호소하여 민중의 협찬을 구하고 그들의 지지를 구하라. 금시의 정치가는 대중과 함께 물러나게 될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조선일보도 무엇보다도 먼저 독립을 완성하기 위하여 소이를 버리고 대동에 합류하기를 강○하는 동시에 대중과 함께 나가는 정당과 정치가를 절대 지지할 것을 자○한다. 비노니 3천만동포는 배전의 애호와 편달을 아끼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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