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희는 ‘월요만화(月曜漫話)’ ‘학예란’ ‘학창산화(學窓散話)’ 라는 제하의 칼럼들을 연재하며 문필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칼럼을 쓸 때 백옥석(白玉石)이라는 필명을 쓰기도 했는데 이는 홍명희의 호인 벽초(碧初)의 벽(碧)자를 세 글자로 파자(破字)한 것입니다.
1924년 6월 9일자 4면
수(壽)의 종류
백옥석(白玉石)
수(壽)에는 장수(長壽), 광수(廣壽), 심수(深壽) 세 종류가 있다… ‘Honourable age is not that which standeth in length of time, nor that is measured by number of year. But wisdom is the gray hair onto men, and an unspotted life is old age…’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 공자의 논어 이인편<里仁篇> 아침에 도를 들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 이는 다 심수(深壽)가 장수(長壽)보다 귀함을 아는 사람의 말이다. 장수만 원하고 심수를 묻지 아니함은 인지미문(人智未聞)한 때 일이라고 할 수 있다…
1924년 6월 23일자 4면
사람의 네 종류
서아라비아(西剌比亞) 고언에 이러한 재미있는 것이 있다.
대개 사람이 네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모르고 그 모르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니 이러한 사람은 가까이하지 말 것이요. 둘째는 모르고 그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이니 이러한 사람은 가르쳐줄 것이요. 셋째는 알고 그 아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니 이러한 사람은 깨우쳐줄 것이요. 넷째는 알고 그 아는 것을 아는 사람이니 이러한 사람은 스승으로 섬길 것이라고…
그리고 10월에는 ‘학예란’이 신설되었습니다. 10월 1일자 칼럼에서 홍명희는 지금까지의 신문이 급박한 정치 경제 문제 보도에 치중한 나머지 사회생활의 학예적 방면을 등한히 한 것을 반성하면서 일상생활에 실제적 도움을 주는 ‘과학의 민중화’를 학예란 신설의 목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1924년 10월 1일자 1면
학예란 신설에 대하여
신문은 사회의 명경(明鏡)이랍니다. 사회 발전의 모든 현상이 충실히 반사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의 발전은 다방면으로 진행되어 정계의 변천과 경제계의 파동에 그치지 않고 혹은 자연계의 발견 혹은 과학적 발명 혹은 예술적 창조로 이를 촉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사회생활의 학예적 방면을 등한히 한 것이 비록 변태적 정치생활과 멸망되어가는 경제생활에 골몰함이 그 원인이라 할지라도 어찌 유감되지 않은 사실이겠습니까. 우리는 이에 학예란을 신설하여 신문의 사명을 완전히 실현하여볼까 합니다.
‘지식은 권력이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학예란에 실린 칼럼>
1924년 10월 4일자 1면
숫자 유희
◇세포수
프랭크란 사람이 인체를 조직한 세포수를 계산하였는데 그 수가 대개 4백조라 한다. 4백조가 얼마나 되는 수냐. 한말에 4백조라 하면 그렇게 엄청날 것이 없으나 4란 숫자 아래 0이 열넷이니 실상 사람으로 상상하기 쉽지못한 수다. 후랜드포드와 틈손이란 두 사람의 계산을 보면 우리 사람의 뇌수를 구성한 신경세포수 만 대개 92억이라고 하니 4백조보담은 훨씬 적으나 이 역시 호락호락한 수는 아니다.(중략)
◇ 서적총수
세계의 서적 총수가 20억이 넘는다고 한다. 1일 1책 평균으로 독서한다 하고 1년을 365일로 치고 계산하면 8백21만9천2백5년하고 또 반년이 있어야 이 현재한 서적을 모두 독파할 수 있다.
1924년 10월 18일자 1면
접순(接脣 · 키스)의 유래
구순(口脣)에 구순(口脣) 접하는 것을 접순(接脣)이라 할 것이나 수족(手足)과 안면에 구순을 접하는 것도 보통 접순이라 칭한다. 대개 접순은 구미에 성행하는 일종 관습이니 그 의의를 3종으로 대별할 수 있다. 일(一)은 전래 예법의 표현이니 왕공귀부인 수족에 구순을 접함과 같은 것이요 이(二)는 보통 애정의 표현이니 자녀 우인(友人) 안면에 구순을 접함과 같은 것이요 삼(三)은 성적 애정의 표현이니 탐남열녀(貪男悅女)가 구순을 서로 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의의와 표현 형식이 착종 복잡하여 세별하려면 성이 가실 지경이다.
이태리 석학 ‘롬부소’가 어느 잡지에 구순의 유래라는 것을 발표한 것이 있다. 그 연구를 소개하면 대강 아래와 같다.
구순은 미개족(未開族)이나 반개인(半開人, 일본도 여기 산입하였다) 사이에는 발달하지 못한 것이라 뉴질랜드인이나 에스키모인 같은 야만족은 접순이 무엇인 것을 알지 못하고 어느 야만족은 후각으로 남녀간 애정을 표현하여 현금 구미인(歐美人)이 ‘내입 좀 마치구려’하고 눈웃음을 칠만한 경우에 ‘나를 맡아보시오’하고 고개를 든다고 한다…
1924년 10월 9일자 1면
건망증
건망증은 정력이 부족하여 발생하는 일종 병증으로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것이 천재의 일종 특징이 된다고 한다. 영국(英吉利)의 위대한 학자 ‘뉴튼’은 자기 질녀의 손가락을 담배로 알고 곰방대에 끌어다가 박은 일이 있고 또 그는 무엇을 찾으러 자기 방에서 바깥을 나가면 나가는 동안에 벌써 찾으려던 것을 잊어버리고 그대로 방으로 돌아오기를 흔히 하였다.
불란서 사람으로 근세 화학의 개조(開祖)라 할 ‘류유’(루이 파스퇴르)는 언제든지 그의 연구를 길게 설명하고 나서는 반드시 끝에 그러나 이것은 내가 남에게 말하지 않는 비밀이라고 첨부하여 말하였다. 어느 때 학생 하나가 일어서서 그의 방금 말한 것을 되받아서 그의 귀밑에서 말하였다더니 그는 이 학생이 저의 지혜로 자기의 비밀을 발견한 줄로 믿고 타인에게 발설하지 말라고 청하였다. 그는 자기가 방금 2백여 명 학생에게 대하여 설명한 것을 잊었었다. 어느 날은 화학실험을 하는데 그는 학생에게 향하여 말이 “여러분 지금 여기 솥이 불 위에 걸려 있소. 만일 내가 이것을 젓지 않고 이대로 둘 것 같으면 이 솥이 곧 폭발되어 여러분 앞에 튀어갈 것입니다” 말하고 그는 참으로 젓기를 잊었다. 그래서 그의 예언이 적중하여 그 솥이 깨지는 통에 실험실 유리창이 파쇄되고 실내에 있던 사람이 정원으로 뛰어나가게 한 일이 있었다…
이 칼럼들은 1925년 1월부터는 ‘학창산화(學窓散話)’라는 제하로 바뀌어 동아일보의 인기칼럼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그가 1년 가까이 동아일보에 있으며 쓴 칼럼은
– 과학
– 숫자 유희
– 질소량
– 분자체적(分子體積)
– 호열자균 번식력
– 혈구 수
– 서적총수
– 蟻(개미 ‘의’)
– 駱駝(낙타)
– 羊(양)
– 蛇(뱀 ‘사’)
– 虎(호)
– 鼠(쥐 ‘서’)
– 猪(돼지 ‘저’)
– 犬(개 ‘견’)
– 鷄(닭 ‘계’)
– 馬(말)
– 龍(용)
– 猿(원숭이 ‘원’)
– 螢(반딧불 ‘형’)
– 蚤(벼룩 ‘조’)
– 아편
– 연초
– 무선전신
– 무선전화
– 활동사진
– 사진전송
– 비행기 발전사
– 비행술
– 비행기 용도
– 윤전인쇄기
– 금
– 연금술
– 수은으로 금을 제조
– 라듸움
– 라듸움과 과학
– 金剛石(금강석)
– 진주
– 雪(눈 ‘설’)
– 우박
– 筆(붓 ‘필’)
– 서적
– 색각(色覺)과 감정
– 색(色)의 속성
– 색의 상징
– jomes-Lange 이론
– 건망증
– 혼인제도
– 매음기원
– 접순(接脣)의 유래
– Tango 역사
– 매독 역사
– 신성한 질병
– 범죄자의 특질(상)
– 범죄자의 특질(하)
– 멘델(Mendel) 법칙
– 기형아(畸形兒)
– 기형아(畸形兒)의 실례(實例)
– 언어 분류
– 표준어
– 정음(正音)
– 만주어(滿洲語)
– 국제어
– 횡서(橫書) 문제
– 한자 문제
– 어원(語源)과 사실(史實)
– 법률
– 인도(印度) 사회
– 철학
– 심령(心靈) 철학
– 심령(心靈) 현상
– 독갑이(도깨비) 장난
– 도덕
– 역법(曆法)
– 세수종종(歲首種種)
– 고갑자(古甲子)
– 오행설(五行說)
– 의의(意義) 있는 식물
– 식물별의(別義)
– 사화(史話) 3칙(三則)
– 신(新) 말더스 주의
– 인구 원리
– 간단(簡單)
– 가치와 시대
– 차별
– 지자(知者)의 비애
– 무명(無名) 인물
– 위대한 분묘
– 미신
– 항우(項羽)와 미신
– 아나톨프랑스(Anatole France)
– 멘텔리(Mentelli)
등입니다.
“이러한 칼럼들을 묶어 출간한『학창산화』에서 내용상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자연과학에 대한 항목들이다. 홍명희는 자신이 도쿄 유학시절 자연과학에 매료되어 한때 이를 전공하고 싶어 했으나 부친의 반대로 좌절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같은 자연과학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을 반영하여『학창산화』에서는「무선전화」「라디움」「멘델법칙」등 많은 항목을 할애해서 자연과학의 각 분야에 대해 평이하면서도 흥미로운 설명을 베풀고 있다. 또한『학창산화』는「비행기발달사」「윤전인쇄기」「연금술」등 과학사에 속하는 항목이라든가,「혼인제도」「매음 기원」「접순(接脣, 키스)의 유래」등 풍속사에 속하는 항목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 역사에 대한 그의 폭넓은 관심과 조예를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언어 분류」「표준어」「국제어」「어원과 사실(史實)」등의 항목을 보면, 홍명희는 언어학과 언어사에 대해서도 남다른 관심과 지식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홍명희는『학창산화』에서 광범한 분야에 걸친 해박한 지식을 구사하면서도 결코 박식을 자랑하는 지적 교만에 젖어 있지 않을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지식의 출처를 명시하여 자신의 글이 소개에 지나지 않음을 분명히 하였다. 예컨대「지자(知者)의 비애」라는 항목에서 그는 ‘자기의 지식을 대(大) 해변의 사소한 패각(貝殼)으로 비교하고 위연(?然) 탄식한’ 뉴턴을 예찬하면서, ‘약간 지식이 있다고 서로 비교하여 넓으니 좁으니 얕으니 깊으니 하는 것이 서글픈 일이며 우스운 일이다’라고 하여, 진정한 지자(知者)라면 인간의 지적 능력의 한계를 깨닫고 겸허하지 않을 수 없음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접순의 유래」에서 ‘이태리 석학 롬브(로)소가 어느 잡지에 접순의 유래라는 것을 발표한 것이 있다. 그 연구를 소개하면 대강 아래와 같다’라고 한다든가,「인구 원리」에서 맬서스의 ‘인구론’을 소개한 뒤, ‘맬서스 이론의 결함을 대개라도 지적할 여유가 없음은 유감이나 이만 것이라도 소개함에는 일본 하상(河上) 박사에게 진 것이 많음을 말하여두고 그만 그친다’고 하여 전거를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학창산화』는 이처럼 계몽적인 성격의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기는 하지만, 당시 홍명희의 의식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을 적잖이 포함하고 있다. 우선 여기에서 그는 양반 출신으로 한학을 수학한 인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를 보여주고 있다. 즉 근대 이후 눈부시게 발달한 자연과학의 성과에 대해 도처에서 신뢰와 기대를 표명하고 있으며,「신(新) 맬서스주의」「차별」등에서는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피임을 옹호하기도 한다. 예컨대 그는 남녀의 차별이 엄연한 줄로만 아는 통념에 대해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물을 양성(兩性)혼합체로 보는 학설을 들어 반박하면서, ‘그러므로 남녀 차별도 구경(究境) 절대적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니 이로써 남녀가 근본적 지위에서 평등인 것도 알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한 그는「한자문제」「횡서(橫書)문제」등에서는 한글 전용과 횡서 및 한글 자모 풀어쓰기를 주장하고,「국제어」에서는 에스페란토를 포함한 국제어의 역사와 그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법률」에서는 ‘대개 법률은 필요한 것이요 권위 있는 것이나 그 권위는 민중이 인정함으로써 유지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민중의 힘을 강조하고 있으며,「신 맬서스주의」에서는 ‘현재 사회제도와 현재 경제조직 아래서는 빈궁선(貧窮線)이 소멸하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하여,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암암리에 비판하고 있다. 또한『학창산화』에는 우리 민족의 빛나는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현재의 상황에 대한 뼈아픈 자성을 보여주는 대목도 적잖이 발견된다. 예컨대「윤전인쇄기」에서 그는 ‘활자를 창조함에는 우리 조선이 세계의 제일 선진’이었으나, 현재 조선의 인쇄술은 이토록 낙후되었으니 ‘세계 제일 선진으로서 이 무슨 모양인가. 우리는 활자를 만지면서 세계에 제일 선진이라는 우리의 자랑을 잊지 못하고 윤전기 소리를 들으면서 남에게 뒤진 우리의 부끄러움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고 개탄하고 있으며,「정음(正音)」에서는 ‘세계에 완전한 문자가 있다 하면 그 곧 우리의 정음을 이름이며 세계에 기묘한 문자가 있다 하면 그 역 우리의 정음을 가르침이다. 백 가지 천 가지 모든 것이 남만 못한 우리도 오직 문자 하나는 남에게 자랑하고 남음이 있다’고 하여 한글의 우수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학창산화』에는 홍명희의 진보적이고 주체적인 의식과 다방면에 걸친 폭넓은 식견, 특히 풍속사와 어원에 대한 깊은 조예, 그리고 온갖 사물의 디테일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드러나 있다. 바로 이러한 그의 정신적 특질은 후일『임꺽정』과 같은 탁월한 사실주의적 역사소설을 낳게 한 원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과학과 정보가 놀랍게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의 안목으로는『학창산화』가 대부분 상식적이고 낡은 지식을 나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신문에 장기간 연재되었을 뿐더러 단행본으로까지 출간된 것으로 보아, 당시의 독자들에게 상당히 흥미를 끌었던 것이 분명하다. 또한 해방 후 홍명희에 대한 인물평에서 ‘『학창산화』같은 작은 책자라도 더 많이 이 세상에 남겨 놓았으면 이 얼마나 후생들에게 유익할는지 모르는 것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학창산화』는 세인들에게 홍명희의 대표적 저술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강영주, ‘벽초 홍명희 연구’, 171~177쪽)
칼럼을 통해 보여 지는 홍명희의 광범한 분야에 걸친 해박한 지식은 실로 놀랍습니다. 일본 유학시절부터 ‘박학다식’으로 이름난 그는 자연과학, 과학사, 풍속사, 역사, 철학, 언어학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근대적이고 진보적인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자, 문인의 두 가지 특징을 겸해 가졌다니 말이지 용모로도 그러하거니와 오늘날 조선문단의 다독가(多讀家)로 말을 하면 아마 홍군(洪君)으로 첫 손구락을 꼽아야 할 것이다. 종래 군의 독서의 범위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던지 나의 본 바로 하던지 좀 보태는 말 같지만은 동서(東西)에 긍(亘)하고 고금(古今)에 통하며 또 그 부지런도 놀랠만하다.” (백화<白華> 양건식, ‘문인인상호기<文人印象互記>’, 개벽 1924년 2월호 103~104쪽)
홍명희가 동아일보에 재직하고 있는 동안 동아일보에 실린 논설들, 그 중 특히 압수처분을 당한 논설들 중에는 그 내용과 표현으로 보아 홍명희의 것으로 보이는 글들이 상당수 있으나, 이들은 무기명으로 게재되어 집필자를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