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의 힘찬 날갯짓에 이어 그 깃털이 동아일보 90년의 어제와 오늘을 써내려간다.
신문 저널리즘을 근간으로 ‘독자가 원하는 정보를 다양하게 전하겠다’는 동아미디어그룹의 약속 위로 파랑새호가 푸른 하늘로 비상한다….
동아일보 창간 90주년 기념 행사의 컨셉트는 ‘파랑새, 더 높이 날다’였다. 참석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동영상은 시작과 끝은 파랑새였다.
●파랑새와 동아일보-희망이라는 동의어
창간 기념식에서 파랑새는 곧 동아일보였다. 희망과 행복의 아이콘 파랑새를 동아일보의 상징으로 활용한 것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정과 간절함으로 상징되는 동아일보의 90년 여정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인촌 김성수 선생을 비롯한 일흔여덟 명의 동아일보 창간의 아버지들은 정부도 없던 시대에 “이상(理想)을 가리키는 기관이라 할 신문이 하루도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된다”며 민족의 엄혹한 시기에 동아일보를 창간했다.
‘희망의 날갯짓’이라는 제목의 역사 동영상은 민족의 대변지, 민주주의의 수호자, 문화 예술의 후원자로 더 나은 삶을 추구해온 동아일보의 90년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동아일보는 희망을 대변하는 파랑새의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에 창간 100주년을 10년 앞둔 다짐과 각오를 추가하기도 했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약하려는 파랑새의 이미지를 통해 신문을 뛰어넘어 종합미디어그룹으로 도약하려는 동아일보의 약속을 담아냈다.
●미디어 융합의 상징
‘일반 명사’ 파랑새는 동아일보에게는 ‘고유명사’이기도 하다.
동아방송 개국(1963년 4월) 두 달 만인 63년 6월 도입한 취재용 경비행기의 이름이 바로 파랑새였다.
파랑새호의 양 날개는 한국 언론사 최초로 신문과 방송을 겸영했던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의 상징적인 취재 수단이었다.
파랑새호는 당시로서는 미개척지였던 미디어 융합이라는 파란만장한 도전을 선두에서 개척한 주체이기도 했다.
각 매체의 장점이 합쳐진 시너지 효과로 당시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의 콘텐츠는 늘 새로웠고, 품격이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문과 방송을 뛰어넘어 인터넷과 모바일 등 다양한 매체가 쏟아지는 요즘 동아인들에게 파랑새호가 던지는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파랑새를 통해 선도적인 매체 융합의 DNA를 되살리고, 새로운 미디어 융합 모델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처럼 읽힌다.
●동아일보의 화려한 공중 취재 이력
파랑새호의 모델명은 L-5 Sentinel이며, 길이는 9.4m, 높이는 2.4m, 날개길이는 10.4m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이 군용으로 사용한 경비행기로 미국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에도 파랑새호와 같은 기종이 전시되어 있다.
동아일보는 2000년 광화문 사옥으로 옮긴 이후 파랑새호를 삼성화재교통박물관에 기증했다.
동아일보에는 파랑새호 외에도 두 대의 항공기가 더 있었다. 동아방송 개국 직전인 1963년 2월에 도입한 경비행기 ‘보라매호’에 헬리콥터 ‘종달새호’가 맨 마지막으로 추가됐다. 63년 12월에는 이들 항공기를 보관하는 전용 격납고를 옛 수색훈련비행장에 지었다.
파랑새호 도입 당시 동아일보 사보인 ‘동우’에는 “금년이 우리 사(社)로 보아 명실 공히 비약하는 해라고 할까.
하늘을 자유로이 나는 비행기를 구입하여 입체적인 취재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음성파(音聲波)가 나르는 방송국이 개국했으니 말이다”라는 파랑새호 조종사의 기고문이 실렸다.
동아일보 취재 항공기의 활약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파랑새호는 63년 10월과 11월 각각 열린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 보도를 위해 창공을 누볐으며, 1965년 가평 버스 추락 사고와 제2한강교(양화대교) 개통식 등을 상공에서 단독으로 촬영했다.
또 63년 8월 국내 단발 비행기로는 처음으로 해상 비행을 감행해 제주도 한라산의 전경을 촬영 비행했다. 귀경 중에는 한국 해역 내에 침범해온 일본 순시선을 포착해 촬영하기도 했다.
동아일보의 항공일지에 따르면 63년 2월부터 64년 11월까지 두 경비행기의 출동 횟수는 모두 267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