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성이 동아일보에 연재한 한국 최초의 4컷 만화 ‘이야기 그림’(1920년 7월 26일자). 동아일보 자료 사진
유럽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만화 초창기를 이끈 것은 신문이었다. 동아일보는 1920년 4월 1일 창간호에 걸음마를 뗀 아기로 동아일보를 묘사한 김동성의 1컷 만화를 실었다. 같은 달에 김동성은 ‘이야기 그림’이란 최초의 4컷 만화를 동아일보에 발표했다. 1923년 12월 1일부터는 독자투고 만화가 1면 코너로 4년 동안 고정 배치됐다.
1924년 10월 13일부터 조선일보에 소개된 ‘멍텅구리 헛물켜기’는 전문 작가에 의한 첫 연재 만화였다. 이 만화는 2년 5개월 동안 501회가 실린 뒤 1926년 영화 ‘멍텅구리’로 각색됐다. 1920년대 말∼1930년 초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지낸 안석주는 식민지 조선의 다양한 풍경을 담은 만문만화(漫文漫畵·그림과 함께 해설을 실은 만화)를 신문에 선보였다.
1925년 11월 3일 시대일보 ‘만화로 본 경성’에는 대님을 매지 않은 바지와 레인코트를 입고 한 손에는 벚나무 몽둥이, 한 손에는 금칠한 책을 든 남성의 모습이 등장한다. 만화 옆 해설에는 당시 모던보이들의 정체성 혼돈을 지적하듯 “길을 똑바로 걸으라”고 썼다.
1920년대 중반에는 잡지가 지면을 만화에 할애하기 시작했다. 안석주는 방정환이 창간한 잡지 ‘어린이’ 1925년 1월호에 ‘씨동이의 말타기’를 연재했다. 이 만화는 최초의 어린이 만화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안석주는 1927년 월간 ‘신문 춘추’에 만문만화를 연재하기도 했다. 김동성은 1923년 2월 잡지 ‘동명’에 만화 그리는 법을 발표했는데, 이는 창작 만화 이론의 시발점으로 꼽힌다. 1925년 5월에는 안석주, 김복진이 주축이 돼 최초의 만화가 모임인 ‘조선 만화 구락부’를 결성했다.
6·25전쟁 이후 신문 시사만화는 1955년부터 동아일보에 연재된 김성환의 ‘고바우영감’, 대한일보에 연재된 정운경의 ‘왈순 아지매’ 등으로 중흥기를 맞았다. 1970년대에는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 1980∼90년대에는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 등 어린이 만화가 인기를 모았다. 오늘날 인터넷 연재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만화의 전통을 이어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1920년대 중반에는 잡지가 지면을 만화에 할애하기 시작했다. 안석주는 방정환이 창간한 잡지 ‘어린이’ 1925년 1월호에 ‘씨동이의 말타기’를 연재했다. 이 만화는 최초의 어린이 만화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안석주는 1927년 월간 ‘신문 춘추’에 만문만화를 연재하기도 했다. 김동성은 1923년 2월 잡지 ‘동명’에 만화 그리는 법을 발표했는데, 이는 창작 만화 이론의 시발점으로 꼽힌다. 1925년 5월에는 안석주, 김복진이 주축이 돼 최초의 만화가 모임인 ‘조선 만화 구락부’를 결성했다.
6·25전쟁 이후 신문 시사만화는 1955년부터 동아일보에 연재된 김성환의 ‘고바우영감’, 대한일보에 연재된 정운경의 ‘왈순 아지매’ 등으로 중흥기를 맞았다. 1970년대에는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 1980∼90년대에는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 등 어린이 만화가 인기를 모았다. 오늘날 인터넷 연재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만화의 전통을 이어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