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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ory 32 : 타고르의 시와 관련된 오해들

Posted by 신이 On 12월 - 21 - 2009

  동아일보 지상(1929년 4월 2일자)을 통해 전해진 타고르의 시는 식민지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인지 잘못 알려진 것들이 꽤 있습니다.




  먼저 동아일보에 실린 넉 줄의 ‘동방(東方)의 등불’이 긴 시로 둔갑해 버린 것입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무한히 펴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중앙교육진흥연구소가 2002년 교육과학기술부 검정을 거쳐 펴낸 고등학교 문학(하) 교과서 293쪽 ‘동방(東方)의 등불’입니다.




  다른 교과서들과 일반 책들에서도 ‘동방의 등불’은 위와 같은 내용으로 소개돼 있습니다.




  형설출판사의 ‘고등학교 문학(하)’(2002년 검정, 131쪽)이나 천재교육의 ‘고등학교 한국지리’(2002년 검정, 9쪽)도 이 같은 시를 ‘동방의 등불’이라며 싣고 있습니다.




  시집 ‘세계명시선 – 그 이해와 감상’(김희보 편, 대광문화사, 1977년, 302쪽)과 ‘대학교양국어’(대학국어편찬위원회 편, 백산출판사, 1986년, 254쪽), ‘세계의 명시’(안도섭 편, 혜원출판사, 1998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동아일보에 게재된 시의 원문은 요즘 ‘동방의 등불’로 알려진 시의 3분의 1에 불과한 분량입니다.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그렇다면 3분의 2나 되는 뒷부분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이 시의 뒷부분은 타고르의 대표 시집 ‘기탄잘리’ 35번입니다.




  “Where the mind is without fear and the head is held high;


  Where knowledge is free;


  Where the world has not been broken up into fragments by narrow domestic walls;


  Where words come out from the depth of truth;


  Where tireless striving stretches its arms towards perfection;


  Where the clear stream of reason has not lost its way into the dreary desert sand of dead habit;


  Where the mind is led forward by thee into ever-widening thought and action –


  Into that heaven of freedom, my Father, let my country awake.”




  “그곳은 마음에 공포가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려 있는 곳,


  그곳은 인식이 자유로운 곳,


  그곳은 세계가 좁은 가정의 담벼락으로 조각나지 않은 곳,


  그곳은 말이 진리의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곳,


  그곳은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그 팔을 활짝 펴는 곳,


  그곳은 이성의 맑은 냇물이 죽은 습관의 쓸쓸한 사막으로 잦아들진 않는 곳,


  그곳은 마음이 님에 인도되어 늘 열려 가는 사상과 행동으로 나아가는 곳-


  저 자유의 천계(天界)에로, 주여, 이 나라를 깨우쳐 주옵소서.”


  (박희진 옮김, ‘기탄잘리’, 현암사, 2002년,55쪽)






  일제강점기엔 시인 김억이 타고르를 조선에 소개하기 위해 ‘기탄잘리’를 완역했고 해방 후에는 박희진 시인(78)이 ‘기탄잘리’의 대표적인 번역자로 꼽히고 있습니다.




  1959년 처음 ‘기탄잘리’를 번역한 박 시인은 1961년 5월 4일자 한국일보에 타고르 탄생 백주년 기념 글을 기고했고 자신이 번역한 시집 ‘기탄잘리’의 역자 후기에 이 글을 인용했습니다.




  “(전략)…‘일찌기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코리아’ 운운의 시로 이미 우리와는 인연이 옅지 않은 이 시성의 백년제를 맞이하여 이제 우리는 또다시 그의 노래를 들어 보자.




  그 곳은 마음에 공포가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려 있는 곳,


  그곳은 인식이 자유로운 곳,


  그곳은 세계가 좁은 가정의 담벼락으로 조각나지 않은 곳…(후략)”


  (박희진 옮김, ‘기탄잘리’, 홍성사, 1982년, 131쪽)






  홍성사의 ‘기탄잘리’는 평판이 좋아 스테디셀러로서 22쇄의 발행을 기록했습니다. ‘기탄잘리’ 35번과 ‘동방의 등불’이 관련이 있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는데 두 개의 시가 어느새 짜깁기돼 버렸습니다. 박 씨는 “전혀 별개의 시가 합쳐져 하나의 시로 읽히는 것을 볼 때마다 분노마저 느낀다. 이것은 타고르를 모욕하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타고르가 동아일보에 ‘동방(東方)의 등불’을 기고하기 전 조선인에게 준 또 하나의 시가 있다는 얘기도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




  “그가 조선 민중에 보낸 시로서는 ‘쫓겨 간 자의 노래(패자의 노래)’가 있고 이번 동아일보를 통한 ‘조선의 등촉’이 있다.”(‘출판경찰개황 – 불허가 차압 및 삭제출판물 – 삼천리 창간호’, ‘조선출판경찰월보’ 제9호, 1929년 5월 7일 발송)




  “타고르가 ‘청춘’지를 통해 첫째 번으로 써 준 글은 ‘The Song of the Defeated’이다.”


  (김윤식, ‘근대한국문학연구’, 일지사, 1973년, 202쪽)




  “강화(講話)가 끝난 다음, 진학문과 단독 회견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잡지 ‘청춘’을 위하여 글을 써 줄 것을 부탁했더니 타고르가 쾌히 승낙하고, 얼마 뒤에 시 한편을 보내왔더라고 한다. 제목은 ‘패자(敗者)의 노래(Song of the Defeated)’로 되어있는데 그 때 일본 총독부의 검열 관계로 제목을 ‘쫓긴 이의 노래’라고 고쳐서 ‘청춘’지 11월호에 게재하였다.”(조용만 역·해설, ‘신에의 송가 – 타고르 시선’, 삼성미술문화재단, 1982년, 224쪽)




  사실 타고르가 일본을 처음 방문한 1916년 육당 최남선의 요청으로 직접 타고르와 면담한 진학문은 타고르가 조선인을 위해 시를 써주었다고 믿었습니다. 진학문은 다음해인 1917년 육당이 발간하던 ‘청춘’지 11월호에 ‘쫓긴 이의 노래’를 번역해 실으면서 “특별한 뜻으로써 우리 ‘청춘’을 위하야 지어 보내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타고르 자신이 번역해 미국에서 발간한 시집 ‘채과집(Fruit-Gathering)’에 실린 것입니다. 국문학자인 김용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진학문은 이 시를 타고르의 특별선물이라고 믿은 것 같다.”며 “여기서 진학문의 타고르 소개가 지니는 과도기성(過渡期性)이 드러난다.”고 평했습니다.




  타고르를 ‘청춘’지에 소개한 진학문의 착각으로 ‘쫓긴 이의 노래’가 타고르가 조선인에게 준 최초의 시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동방의 등불’이 타고르가 조선인에게 준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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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61년 2월 26일자 석간 4면




















2 Comments »

  1. 퍼가요~

    Comment by 김정환 — 2010/01/06 @ 10:51 오후

  2. http://orumi.egloos.com/2486482

    서로 다른 시가 붙어있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무엇보다 두 시가 붙으면서 “저 자유의 천계(天界)에로, 주여, 이 나라를 깨우쳐 주옵소서”에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로 의미가 변해버렸다는 것이 가장 어이가 없죠.

    Comment by ygy2011 — 2010/06/25 @ 11: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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