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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가 소개팅에서 처음 들은 말…

Posted by 재기 On 4월 - 16 - 2009

 “무슨 여자 분이 손에 그렇게 상처가 많아요?”

  최근 1년 만에 어렵게 성사된 소개팅에서 처음 들은 말이었다. 나도 내 손을 보니 측은한 마음에 유구무언이었다.

  검게 그을린 손등에 마치 담뱃불로 지진 듯한 둥근 상처 자국이 점점이 이어졌다. 상처인지, 깊게 파인 주름인지 구분가지 않는 갈라진 상처도 여럿이었다. 웬만한 농군 아낙의 손도 이보다는 곱지 않을까. 경찰서에서의 수습기자 생활 4개월, 그 고생길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 취침시간 두 시간 미만, 하루 네댓 개 경찰서 무한 순회, 추위와 배고픔,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시와 보고…. 그 어느 직종의 수습도 이처럼 몸이 고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 즈음 한 달이 지나 있었고, 자체 조절능력이 한계에 달했다고 느낄 즈음 두 달이 되어가고 있었고, 내 원래 일상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즈음이 세 달, 그리고 이제 좀 할만 하다는 느낌이 들 즈음에는 어느덧 네 달째였다. “야! 살아있냐?”라는 친구들의 연락이 거듭될수록 ‘정말 내가 살아있을까’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 때 시경 캡이 ‘수습 끝’을 선언했다. 믿기지 않았다.

  마냥 좋았냐고? 솔직히 말하면 시원섭섭했다. 난 ‘경찰서 체질’인지 의외로 매일 밤 계속되는 형사들과의 밀고 당기기 게임이 싫지 않았고, 온종일 추위에 배곯으며 전 국세청장의 부인을 기다리는 일도 지나고나니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특히 어느 한 곳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낯선 장소에 가는 일도 삶의 활력소였다. ‘박카스’ 선전에서나 볼 법한 젊음의 모험과 실수(버스에서 잠들어 종점까지 가거나 서울 시내를 스쿠터 속도로 뛰고 남의 집 앞에서 밤새 기다리고 등등)까지 곁들여져 난 언제부터인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일탈의 삶을 살고 살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해 하기까지 했다.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

  사건팀의 한 선배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요’라고 대꾸하고 싶은 걸 꾹 참았던 기억이 난다. 잘못한 것도 많았고 실수한 것도, 부족한 것도 많은 그야말로 좌충우돌 수습생활이었지만, 선배들에게 혼도 많이 나고 실망도 많이 안겨준 시간이었지만(그리고 내 손을 농군의 칡뿌리 같은 거친 손으로 만들어버린 시간이었지만), 난 딱 하나 자신 있게 제대로 했고 그래서 흐뭇하다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정말 “즐거웠다!”는 것. 가감 없이, 난 정말 즐겼다. 그래서 내 좌충우돌 수습기는 누구 앞에서도, 그 어떤 질타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다. 그 유쾌한 시간이 지나 이제 동아일보 이미지 기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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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겨울 한라산에 오른 2008년 수습기자들. 맨 오른쪽이 이미지 기자.

2 Comments »

  1. 소개팅 만큼은 제대로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미지 기자 파이팅!

    Comment by 서금영 — 2009/05/08 @ 2:25 오후

  2. ‘동네’에 방문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미지 기자는 요즘 행복에 겨워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만났더니 스스로 너무 행복하다며 입을 다물지 못하더군요. 이미지 기자 뿐 아니라 모든 탈 수습 기자들이 새로운 자기 역할을 찾아 멋진 출발을 시작했습니다. 동네 여러분들이 많이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Comment by 신이 — 2009/05/19 @ 10: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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