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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새내기 기자들의 탈 수습기-3

Posted by 재기 On 4월 - 8 - 2009

  안녕하세요? 동아일보 유성열 기자입니다.


  수습 첫 주 어느 날 오전 4시경 송파경찰서 정보과.

  불 꺼진 창틈으로 적막감이 흘렀다. 똑똑똑. 인기척이 없었다. 좀 더 세게 두들겼다. 쿵쿵쿵. 5분 정도 지났을까. 졸린 눈을 비비며 당직자 한 명이 나왔다. 도대체 이 시간에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문을 닫으려 했다. 다리 하나를 들이밀고 부탁하기 시작했다.

 “일제고사를 거부한 해직교사들이 내일도 출근하나요? 그것만 확인 부탁드려요.”

  그날 야근을 하던 선배의 불호령에 안면을 몰수했다.  “새벽 4시까지 형사과 이외의 부서를 돌며 ‘얘기되는 것’을 찾아오지 못하면 각오하라”는 선배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각오라는 단어가 어떤 뜻인지 수습 첫 주 만에 절실히 느낀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런 소득 없이 택시비만 축내던 내게 떨어진 최후통첩이었다. 당직자가 문을 열었을 때 그야말로 폭풍 속에 벼를 잡는 기분으로 매달렸다. 한 숨을 푹 내쉬던 정보관은 그 교사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들려줬다. 날이 밝고 다시 찾아가 커피를 건네며 인사를 했다.

 “새벽엔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기사거리는 또 없나요?”

  사건팀 수습으로 3개월 째였던 3월 22일, 나는 성남으로 향했다. 10대 4명이 동거하던 지적장애인 소녀를 살해한 사건이었다. 중원경찰서는 이미 많은 기자들로 붐볐다. 경위를 살피느라 정신없는 그들 틈으로 들어가 급히 얘기를 꺼냈다.

 “아니 도대체 부모들은 뭐하고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몰랐답니까?”

  기자들이 나를 쳐다봤다. 팩트 확인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가족 취재라니,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대부분 연차가 있는 선배들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팀장 주위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물었다. 선배 지시도 있었지만 나 역시도 궁금했다.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엔 귀찮다던 팀장도 술술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부모나 이웃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없었을 사건. 문득 ‘창‘(窓)으로 기사화하면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전화를 열심히 돌렸다.

  수습 생활 3개월 동안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부족한데 부서 배치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무기 하나는 얻었다. 남들 눈치 안 보고 내가 알고 싶은 걸 당당히 물을 수 있다는 것. 경찰서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수습 생활을 마치고 깔끔하게 옷을 입고 출근했더니 한 선배가 사람이 달라 보인다며 한 마디 했다.

  앞으로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느꼈으면 좋겠다. 옷이나 외모도 좋지만 무엇보다 ‘눈빛’이 달라졌다는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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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두 번째가 유성열 기자. 유 기자는 2008년 수습 기수의 간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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