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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ory 2 : 창간호 8면에 담긴 뜻

Posted by 신이 On 4월 - 6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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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면에는 설산 장덕수(雪山 張德秀) 주간이 쓴 창간사와 동아일보의 나아갈 바를 밝혀 놓은 글이 두 편 있습니다.






    2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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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형(笞刑)폐지에 관한 기사가 있고 이 기사는 3면으로 이어 지는데 세브란스병원 의사 스코필드는 ‘90대는 너무 심하다’ 제하의 기사에서 ‘20대가 인간으로서는 상한’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태형 집행 실태를 분석해 본 결과, 재판사건 1인 평균 71대, 즉결사건 1인 평균 37대였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태형(笞刑)의 ‘笞’는 ‘볼기 칠 태’입니다. 또 변호사 김우영(金雨英)의 ‘국가 존재의 이유’라는 논문이 있습니다. 김우영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과 두번째 결혼을 하기도 했습니다.





 


  3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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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형 ‘90도(度)는 태심(太甚)하고 때리는데도 불공정하다’는 스코필드 박사의 코멘트


  – 李 왕세자가 4월 29일 동경에서 순 일본식으로 결혼식을 한다더라는 한 줄짜리 기사


  – 3·1운동 관련 47인 재판의 예고기사, ‘세 길 넘는 기록에 판검사 9명이 매달려’  


  – 자칭 가(假) 정부원(상해임시정부요원)이 독립운동자금을 구하기 위해 ‘육혈포를 손에 들고 부잣집 담을 넘어 들어갔는데 집주인은 때마침 장춘관 요릿점에 가고 없어…’ 사랑방에 있던 손님들과 해프닝을 벌이다 붙잡힌 이야기


  – 동경 유학간 아들이 ‘아내를 공부시키지 않으면 이혼하거나 첩을 두겠다’고 한다며 쪽 지은 며느리를 백발노인이 데리고 와서 기예과에라도 넣어 달라고 읍소했다는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의 실화를 소개한 기사 등이 있습니다. 


  – 축시 2편을 쓴 ‘松山’은 창간 당시 논설반 기자 金明植입니다.





 


  4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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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엑토르 말로 작 ‘집 없는 아이’의 일본 번역서인 ‘오노가쓰미’(己が罪-내가 죄)를 번안한 와세다 대학생 민태원(필명 牛步)의 연재소설 ‘부평초(浮萍草)’ 1회(1920년 9월 4일자 까지 113회 연재)와


 


  – 석전 박한영 스님의 축사가 실렸습니다. 동아일보를 ‘동아시아에 뜨는 해(東亞日)’ 에 비유하고 동아일보를 보는 것은 ‘대사(大師)를 친봉(親逢)하는 것과 같다’며 과분한 기대를 해주셨습니다.





 


  5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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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코필드 박사의 기고, ‘조선 발전의 요결’이 있습니다. 끝머리에서 그는 “나의 언사에 불쾌한 점이 있었으면 사랑하는 형제여, 그대 나라의 아름다운 격언,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롭다’는 진리를 생각하고 나를 용서하라” 고 합니다.





 


  6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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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토 총독, 정무총감 경무국장 등 총독부 관리들의 축사가 줄줄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동아일보가 민족지인양 하나 바로, 그 축사의 대열에 10여명의 총독부 관리 및 친일인사가 들어있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되어야할는지 알 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1920년’이라는 당시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 조선총독의 축사를 6면에 배치하는 것이 쉬운 일이었을까요?





 


  7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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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유명 인사들의 글이 있습니다.


  * ‘同化정책은 不可’-헌정회 총재 가토 다카아키(加等高明)는 제1야당의 총재 격


  * ‘민족자결주의에 대하여’-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는 ‘일본 의회 정치의 아버지’


  * ‘동양의 벨기에가 되라’-시마다 사부로(島田三郞)는 자유민권운동가


  * ‘동양연맹을 주장함’-우키타 가즈타미(浮田和民)는 한일합방 반대성명을 낸 7명중 한사람


  * ‘문화적 평등주의’-아베 이소오(安部磯雄)는 사회민주당 창당에 참여한 기독교사회주의자


  * ‘정치와 언론은 불가분’-후쿠다 도쿠조(福田德三)는 마르크스주의의 소개자이자 비판자





 


  8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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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章魯商店’의 전면광고입니다. 남대문통에 ‘증권부’, 인천에 ‘중매(仲買)점’을 가지고 수출입 무역, 공채 주식 거래를 한다고 전면 광고를 냈고 1929년 10월 31일자 6면에는 ‘만주 속(粟·탈곡하기 전 곡식) 수입 개선’에 관한 의견 광고(5단통)를 내기도 한 당시 거상(巨商)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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