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올해로 89살이 되었습니다. ‘동네’에서는 블로거 여러분들에게 동아일보의 역사를 소개하는 시리즈
‘D-STORY’ (Donga History)를 마련했습니다.
그 첫번째 순서는 1920년 창간 당시 이야기입니다.
서울 종로구 화동 138번지. 조선조 말 학부대신 이용태의 사저로 기호학교, 중앙학교 옛 교사. 동아일보는 월세 120원을 주고 여기서 창간됐습니다.
창간 당시 화동 사옥
중앙학교 시절 모습
동아일보 사옥터 표석. 정독도서관(옛 경기고)입구 오른쪽에 있습니다.
창간 당시 본사 사원은 기자 16명, 논설반 4명, 공장사원 22명 등 모두 67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일제시대 사원록에 입사 일자가 1920년 4월 1일인 사람은 51명입니다.
일정시대 사원록
“1920년 봄 박모(薄暮)의 남대문 앞길에서 장덕준(張德俊)과 진학문(秦學文)이 얘기를 나누며 경성 역 쪽으로 걷고 있었다. ‘이상협이 편집국장을 하려는데. 역시 내 아우(장덕수)가 적임자가 아닐까.’ ‘설산 장덕수는 인격이나 지식이야 손색이 없지만 신문에 경험이 없어 안 돼.육당 최남선이 나오면 그에게 맡기세.’ 민족 지성의 집결체임을 자부하고 나선 동아는 창간 준비와 함께 편집국 간부진을 짤 때부터 3.1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있는 인사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최남선 현상윤 등의 인사들이 풀려나오면 이들에게 쉽사리 자리를 마련해 주어함께 일할 수 있도록 이상협이 사회 정리, 장덕준이 조사 통계, 그리고 진학문이 정경 학예부장을 각각 겸임토록 했던 것이다. 그러나 편집국장 적임자에 대한 의견이 이같이 엇갈리자 주간제를 두고 장덕수가 주간, 신문 경험이 있던 이상협이 편집국장이 되었다.”(1970년 4월 1일자 22면, 창간 50주년 기념특집)
장덕수 논설주간이 쓴 창간사 ‘주지(主旨)를 선명하노라’는 최남선의 ‘3 ·1 독립선언문’ , 한용운의 ‘조선독립의 서(書)’ 와 함께 우리나라 근, 현대 3대 명문(名文)의 하나로 꼽힙니다.
창천(蒼天 · 맑게 갠 파란 하늘)에 태양이 빛나고 대지에 청풍이 불도다.
산정수류(山靜水流)하며 초목창무(草木昌茂)하며
백화난발(白花爛發)하며 연비어약(鳶飛魚躍 ·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어 놂)하니
만물 사이에 생명과 광영이 충만하도다.
유려한 문체가 한편의 시(詩)와 같습니다.
‘동아일보를 창간한 사람들’ 은 창간사에서 동아일보의 3대 사시(社是)인 ‘민주주의, 민족주의, 문화주의’ 를 선언했습니다.
‘민주주의’ 라는 말을 조선 민중에게 널리 알리는 시작이었습니다.
‘문화주의’ 라는 사시(社是)는 대단한 탁견이었습니다.
장덕수는 1936년 콜롬비아대학에서 ‘영국의 산업평화에 대한 방법론(British Methods of Industrial Peace)’ 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산업평화(Industrial Peace)’ 라는 말을 조선에 처음 소개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장덕수의 형, 장덕준은 창간 당시 논설반 기자 4명 중 한사람이었으나 창간 그 해 1차 무기정간 때 일본군의 한인학살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만주 훈춘으로 갔다가 일본군에 납치, 살해돼 우리나라 최초의 순직기자가 됐습니다.
창간 사원 중 일본인은 사진기자 야마하나가 유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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