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6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 후 국내외 정세는 빠르게 움직였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로버트슨 국무차관보를 한국에 보냈고 2주간에 걸친 회담 끝에 7월 12일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데 동의하고 교섭이 진행 중에 있다는 공동성명이 나왔다. 워싱턴에서 모인 미국 영국 프랑스 3국 외상들도 7월 14일 중공군이 재침하면 평화회복을 위한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7월 10일부터 속개된 휴전회담은 7월 27일에 끝났다.
“38선을 깔아 뭉개고 통일을 쟁취하려는 한민족의 거센 저항은 아랑곳없이 38선 아닌 휴전선이 남북을 그대로 두동강 낸 채 북괴의 남침이 있은지 3년만인 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일단 현재의 전선에서 포격은 멈췄다. 유엔군측 대표 해리슨, 북괴대표 남일(南日)이 이날 11시에 조인을 한 판문점은 지금도 분단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동아의 지면반세기, 동아일보사, 1970)
휴전작조(昨朝) 10시7분 완료조인
작야(昨夜) 10시 전투정지
【판문점27일발UP=동양】『유엔』및 공산측대표들은 27일 상오1○시 한국휴전협정에 조인하였다 전투는 27일 하오1○시에 자동적으로 정지될것이다 그것은 공산군이 삼팔선을 넘어 침략을 개시하였던 195○년 6월25일이래 3개년1개월2일19시간만에 그치는 것이다 쌍방수석대표들은 18통의 휴전문서에 서명하였다
『유엔』측을 대표하여『해리슨』중장이 그리고 공산측대표로『남일(南日)』이 각각 서명한것이다『크라-크』장군 김일성패ㅇ덕회는 각각 개별적으로 서명하게 된것이다『해리슨』중장 및 남일은 그들의 휴전대표단을 동행하고 있었다 휴전협정은 공산측에서 건조한 특별건물내에서 조인되었다
조印場所(인장소)에는 조인식관경은 기록하기위한 쌍방인원수백명의『유엔』및 공산측기자들이 운집하여 있었다 쌍방으로부터 각각 9통의 휴전문서가 준비되었는데 쌍방대표는 각각 자기편에서 준비한 문서에 서명하였다 이역사적인 순간에 있어서『해리슨』중장이나 남일은 특별한 성명을 발표하지는 않았으나『크라-크『유엔』군총사령관은 휴전협정 조인이 세계평화달성의 전주곡이 되기를 희망하는 바이라고 말하였다
휴전180일간 준수
26일『국방위』최후결정
【서울26일발 로이타=세계】한국최고군사정책기구인 국방위원회는 26일 한국군이 휴전후 최소한180일간 휴전조항을 준수할것을 결정하였다
동위원회는 26일 3년간에 걸친 한국전쟁이 종식될 긴제(緊際)한 분위기 가운데서 이대통령주재하에 회의를 개최하였다 휴전계속성여부는 오직노대통령의 명령여하에 의한 군대의 행동에 좌우될것이라고 관측되고있다
손원일 신국방장관은 26일 오후 동회의를 마친후『로이타-』기자에게 위원회는 한국군이 휴전조항에 의하여 현전선으로부터 2키로 후퇴할것을 결정하였다고 말한다음『이대통령 및 변외무부장관 육해공군총참모장 등이 참석한 동회의는 한국군은 휴전후 180일간 휴전을 파괴하지 않을것을 결정하였다』고 부언하였다
그리고 그는 휴전은 한국군을 증강하는데 좋은기회를 제공하였다고 말하였다
현 전선 2천후퇴
72시간 이내
【판문점27일발 로이타=세계】조인72시간 이내에 쌍방군대는 155리의 현전선에서 2키로식 후퇴할것이다 양군간에 개재하는 비무장지대는 양방의 군사휴전위원국과 파란 체코스로바키아 서(瑞)전 및 서서(瑞西)등의 중립국휴전감시위원국에 의하여 감시될것이다 그리고 이밖에 파란(波蘭) 서서 및 인도로 구성되는 포로송환위원단은 포로의 교환을 감시할 것이다
휴전협정문 내용
【판문점27일발UP=동양】한국휴전대표는 금일의 휴전문서를 구□하기 위하여 과거2년간에 걸쳐 꾸준한 노력을 경주하여왔던바 휴전문서 서문에 의하면 동문서는 교전쌍방에 중대한 피해와 출혈을 강요하는 한국전쟁을 종식시키는 인도적인 합의를 의미하는것이라고 기재되어있다
휴전문서는 그서문에서 또한 전투행위의 완전종식과 한국에서의 모-든 군사행동을 제지함을 규정하고 최후적으로 평화적인 해결을 재래함을 그종국목적으로 하고있다
동서문에 의하면 휴전문서는 그성질에 있어서 순전히 군사적합의를 의미하는것으로서 휴전실천의 방도는 동문서에 기재된다음 4개조항에 의해서 규정되고있다
제1조=군사경계선을 협정하고 비무장지대를 설치한다
×1、쌍방은 현전선인 군사경계선으로부터 2키로 후퇴하여 비무장 완충지대를 설치한다
×2、쌍방군사령관은 동 비무장지대이분일(二分一)에 대해서 각기 민사행정 및 구제책을 강구한다 ▲제2조=A、사격중지 및 휴전을 위한 완전조치를 취한다
×1、휴전조인 12시간후에 전투를 중지하고 동72시간후에 모-든군대와 장비를 비무장지로부터 철수하는동시에 방(防)색를 파괴한다
×2、조인5 일후 쌍방은 상대방지구 후방에 비치한 해안도서로부터 군대를 철수한다
×3、쌍방은 증원군장 비(備)비행기 혹은 기타전쟁보급품을 한국으로 반입하는 행위를 중지한다
만기병력의 교체 및 파괴장비의 배치등은 용인될것인바 병력교체는 매월3만5천명을 한도로하다 신병력 및 신장비는 반드시 합의된 출입구를 통과하여야 한다
B、휴전조치를 위하여
군사휴전위원회를 구성한다
×1、동위원회는『유엔 』및 공산군쌍방으로 각이(已) 5명의 장교를 선출함으로서 구성될것인바 쌍방으로부터 선출된 5명중 최소로 3명은 장군이어야 한다 동사령부는 판문점에 설치될 것이며 동위원회는 비무장지구의 위반사건을 감시할 4명 내지 6명의 일선장교급으로 구성된 10개의 공동감시단으로서의 조력을 받을것이다
×2、동위원회는 휴전협정의 여하한 위반사실이라도 이를 협상을 통하여 해결할 것이며 또한『유엔』및 공산측쌍방사령관의 중간역할을 담당할수 있을것이다
C、휴전을 감시하는 중립감시위원단을 설치한
×1 동위원회는 서전서서(西) 파란 및『체코스로바키 아』로부터 매일인식의 고급장교로 구성된다
×2、여기에는 최소4명의 일선사령관급 장교로 구성된 20개의 감시반이 설치될 것인바 그들은 남북한 양지구를 시찰하며 증원병력 및 전쟁물자의 반입이 없도록 감시할 것이다
×3、그중 몇몇 감시반은 남북한의 각출입구에 체류할것이며 기타감시반은 군위휴전위원회 지시에 따라 휴전조항 위반사실이 발생한 지점에 급파되도록 대기할것이다
▲제3조=17개월간에 걸쳐 휴전합의를 조지(阻止)하여온 포로교환 및 정주(定住)를 규정하는 조항은 지난 6월8일의 회담에서 합의에 도달하였는바 다음과같은 규정을 포함한다
×1、송환을 희망하는 포로는 휴전발효 2개월 이내에 판문점에서 또는 필요시에는 기타추가적인 장소에서 교환한다
×2、동2개월 기간중 송환을 거부하는모-든 포로는 인도、서전、서서 、파란『체ㄱ코스로바 키아』등 5개국 대표로 구성된 중립국위원회에 이관된다 그들 포로는 3개월간에 걸쳐 중립국위원감시밑에 6개월내정치공작의 귀환설득을 받는다
×3、3개월간의 설명후에도 귀환을 거부하는 포로의 운명은 휴전문서
△제4조에 규정된바 휴전조인후 3개월안에 소집될 평화회의에 이관된다
×4、만일 정치회담에서 2개월기간이내에 그들에 대한 운명을 결정하지못할 경우에는 잔류 북한포로는 한국에서 석방되거나 혹은 그들이 선택하는 중립국으로 이관될것이며 중공포로는 30일기간내에 중립국으로 이송된다 또한 중립국위원단은 동시에 자연적으로 교체된다
×5、포로교환에관한 조항은 또한 고국에 귀환함을 희망하거나 또는 상대방으로 가기를 희망하는 한국 및 외국인민□ 인의 그러한 행동을 도우며 납치인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고 또한 정규적포로교환에 관해 서 송환업무를 보조하고 포로수용소를 시찰하고 또한 도피한포로에 대한 정보를 쌍방합동적십자위원회에 요청할 위원회 설치문제를 규정한다
▲제4조=쌍방군사령관은 관계각국정부에 대한 권고에서
×1、휴전조인3개월 이내에 협상을 통하여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의 철퇴와 한국문제의 평화적해결을 달성하기위한 위정치회담을 소집할것을 규정한다 동회담은 한국의 평화를 준비함을 그목적으로 한다
이날 사설의 제목은 ‘휴전성립’이었다.
휴전은 마침내 성립되었다. 공산군이 남침을 개시한 지 3년 또 1개월 그리고 소련의 ‘말리크’가 휴전을 제안한 지 만 2개년과 또 11일 참담하다면 그 류(類)를 사상(史上)에서 찾기 어렵고 또 휴전교섭으로서는 기록을 깨트리는 오랜 세월을 허비한 전쟁은 이제 끝나고 우리 강산에서의 포성은 오늘로 거두게 되었다. 저간(這間)에 적아(敵我) 쌍방의 인명손실은 100만으로 헤아리고 한국이 입은 물적 파손은 거의 국토를 초토화하다 시피 하였던 것이니 이제 총화(銃火)가 거두어지고 살육의 비참이 그쳤다고 하는 데서 유혈의 중지를 다행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휴전은 우리 국토의 양단을 그대로 버려두고 상당히 징벌을 받아야 할 침략자를 유화하는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니 우리 국민의 불만은 말로 할 것도 없고 또는 세계 인류의 자유수호를 위하여 불행한 일인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진정한 평화의 수립이 과연 가능하느냐 하는 것은 공산제국주의 근본성격에 비추어 전도다난(前途多難)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전쟁은 침략자에게 대하여 유엔이 공동방위를 단행한 것이라 하여 역사상에 신시대를 획(劃)하는 사실이라고 칭양(稱揚)되었었거니와 한편 완전승리의 의욕을 가지지 않고 소위 제한된 전쟁이란 개념 하에서 적의 근거를 때리지 못하여 온 점에 있어서 또한 전쟁사상의 전례를 깨트렸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유엔 경찰행동은 중도에서 좌절되고 세계질서유지의 숭고한 이상은 냉혹한 현실과 타협을 부득이하게 된 것이다. 우리 한국이 유화책적인 휴전을 반대하여 온 이유는 여기 있는 것이다. 금일 한국의 태도에 대하여 오해를 가진 일부 외국정객들도 앞으로 때가 지남을 따라서 점차로 한국국민의 부르짖음이 정당하였다는 것을 깨달을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휴전은 물론 평화가 아니요, 다만 총 쏘는 것을 중지한 것뿐이다. 진정한 평화가 재래(齎來)되는 것은 금후의 사태진전 여하에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회담이 구상되고 있거니와 이 회담이 과연 세계평화를 수립하는 데 성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많다. 왜 그러냐 하면 진정한 세계평화는 한국의 민주적 통일완수라는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터인데 공산진영의 진의가 이러한 원칙에 동의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진정한 평화는 적색전제정치(赤色專制政治)의 철권 밑에 신음하고 있는 모든 인민을 해방함으로서만 가능한 것이요 국지적인 해결로서 성취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자유세계는 가일층 단결을 강화하고 실력을 양성하여 과단성 있는 영도권(領導權)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눈물을 머금고 휴전의 성립을 불방해하였다는 것은 오직 자유진영의 단결을 유지한다는 한 가지의 이유가 있었을 뿐이다.
휴전 후에 오는 외교전 사상전 내지 정치전은 어떤 의미에서 총포전보다도 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처지에서도 그러하거니와 자유진영 대 공산진영의 각축에 있어서도 더욱 그러하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공산당의 무소불위의 모략에 대하여 자유진영은 비상한 경계와 지혜로서 대하지 아니하면 안 될 것이요, 또는 과감한 정의수호의 태도로서 임해야한다. 이 땅에서 흘려진 귀중한 피를 허사로 돌리지 않기 위하여 전 세계 자유국민들의 각오를 촉구하는 소이(所以)가 여기 있다. 세계는 한번 더 한국의 소리를 냉정히 귀기우려 들을 용의를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