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에는 그저 건물 한 층을 가득 메운 종이뭉치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아일보 식구들에게 그것은 자식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우리는 이 종이뭉치들에게 지난 89년 동안 날이 쌀쌀해 지면 히터를 틀어줬고, 여름이면 에어컨을 틀어줬으며, 습하면 제습기를, 건조하면 가습기를 틀어줬습니다. 지난 89년 동안 발행했던 동아일보 신문 모음에 대해서 해왔던 일입니다.
한국전쟁의 난리통에도 동아일보 기자들과 직원들은 이 종이뭉치들부터 챙겨 피난을 떠났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로 동아일보가 극심한 경영난을 겪던 시기에도 자료 보존에 대한 투자 만큼은 줄지 못했습니다. 만든 것은 동아일보였지만, 그렇게 탄생된 신문은 이 사회의 재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계속해서 신문이 인쇄된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오래 보존될 수 있도록 따로 보존 처리를 해줬고, 경기도 안산의 넓은 서고에 쾌적한 쉴 공간도 마련해 줬습니다. 현대사가들에게는 보물같은 자료였을 겁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까지는 자료 관계자들과 일부 연구자들만이 이 자료를 볼 수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하면 옛 종이가 견디지 못하고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그 오래된 고신문들을 조심스레 햇살 아래로 내놓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아무리 살펴봐도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모든 신문을 디지털 자료로 재가공했습니다. 네이버의 도움 덕이었습니다. 네이버에서 나온 작업자 분들은 동아일보가 그동안 정성스레 보관해 온 자료가 혹시나 상하지 않을까 장갑을 끼고 신중하게 한 장씩 넘기며 80년 분량의 모든 신문을 하나하나 손으로 스캔한 뒤 다시 원상태로 돌려놨습니다.
이번에 스캔된 신문은 다시 인쇄를 해도 과거의 인쇄지면과 똑같은 품질로 인쇄가 가능한 정도의 고해상도입니다. 동아가 적어내려온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은 셈입니다.
오늘(30일) 오전부터 네이버는 디지털 뉴스 아카이브라는 서비스 이름으로 동아일보와 경향신문, 매일경제신문의 과거 기사를 서비스합니다. 1976년에서 1985년까지 10년 치 신문이 그 대상입니다. 앞으로 점차 서비스 범위를 늘려나가 올해 연말까지는 1960년대 이후 기사는 모두 디지털 자료로 변환하겠다는 게 네이버 쪽 계획입니다.
내년에는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 이후의 기사들까지 모두 디지털로 변환됩니다. 이 시기의 신문은 어투도 다르고, 인쇄 상태도 좋지 않아 스캔과 디지털 변환에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예정이지만, 막상 변환 작업이 완료되면 당대의 생활상을 한 눈에 보여주는 귀한 자료가 될 전망입니다.
오늘 첫 서비스가 선보인 뒤 옛 신문을 뒤적여 봤습니다. 1980년대 초는 엄혹했던 신군부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선 때였습니다. 당시 동아일보를 비롯해 많은 신문과 방송이 군사독재의 서슬퍼런 감시 아래에서 보도를 해야만 했죠.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켜가기가 결코 쉽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 동아일보의 보도는 어땠을까요? ‘군사독재’라는 키워드로 과거 기사를 검색하다 이런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암울했던 시기에 동아일보가 독자 여러분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이런 칼럼에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사회학자들과 저술가들은 인터넷이 우리가 흘려 보내던 시간의 지평을 바꿔 놓고 있다고 말합니다.
날마다 발간되는 신문, 시간 단위로 편성되는 방송을 통해 순차적인 인생을 살던 현대인들이, ‘검색’이라는 새로운 창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살아간다는 것이죠. 요즘 우리는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물 흐르듯 시간을 소비하지 않습니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쏟아지고 있고, 우리가 흘려 보냈던 연대기적 시간도 실시간으로 우리 앞에 다시 등장합니다. 누구도 자신의 과거를 가릴 수 없고, 역사 또한 현재에 되살아나 우리의 삶에 실시간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동아일보가 국내 최대의 검색 엔진 네이버와 함께 그 ‘실시간의 연대기’를 독자 여러분들께 선보입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네이버에서 제작한 서비스 제작과정 동영상을 첨부합니다. 디지타이징 작업을 총괄한 윤태석 뉴스SM 수석(NHN의 직제는 일반적인 기업과는 좀 다릅니다)과 홍은택 이사의 설명이 담겨 있습니다.
윤 수석은 정확한 작업을 위해 손으로 페이지 수와 글자 수를 하나하나 세어 가며 디지타이징 작업을 기획했고, 스캔 및 입력 작업이 시작되자 작업장이 위치한 중국에서 한 달의 절반 이상을 보내며 지난 한 해 동안 땀흘렸던 실무 총책임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