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얘기부터 시작해야 할까.
수습 생활을 시작하고 2주 만에 3kg 넘게 빠졌다는 얘기? 일주일 만에 손등이 갈라지고 터져 피가 났다는 얘기? 1년에 한번 울까말까 한 내가 2주에 한번씩은 꼬박꼬박 눈물을 쏟았다는 얘기? 힘들었다는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아마 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이란 간사해서, 힘든 시기가 지나면 곧 그때를 잊어버린다. 당시에는 엄청나게 서럽고 힘들었던 것들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앞으로의 일이다. 지금 내가 지난 수습 생활에 집중해 ‘좌충우돌 수습기’를 쓰기 어려운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앞으로의 일이 두려운 이유는 그 일이 ‘낯설기 때문’이다. 내가 새롭고 어색한 상황에 던져졌을 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다른 부서에 가든, 사건팀에 남든, 잘 할 수 있을까?
수습생활을 시작하고 일주일이 갓 지났을 무렵, 야근 보고을 하다 많은 실수를 했다. 당시 야근 담당 선배는 보고가 끝나자 한마디를 던졌다. “힘드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는데 꾹 참았다. 에라 모르겠다, 대답했다.
“네.”
“뭐가 힘든데?”
“제가 잘 모르는 상황에, 제가 뭔가를 잘 못하는 상황에 계속 처하게 되는 게 힘듭니다.”
얼마 전 전 술자리에서 그 때 이야기가 나왔다. 그 선배는 “기자는 원래 매번 잘 모르는 상황에 처하는 법”이라고 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내일 내가 어떤 취재를 하게 될지, 누굴 만날지, 짐작하기 어려운 것이 기자다. 수습 기간 중 내가 배운 건 그런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과 돌파력일 테다.
어쨌든 ‘매번 잘 모르는 상황에 처하는’ 그런 생활에 적응하자면 내일 걱정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오늘의 취재에 집중해야 할 텐데, 나는 오늘 또 내일 걱정을 하고 있다. 아직 기자되려면 멀었나 보다. 아직 더 많이 배우고 더 익숙해져야 할 모양이다.
이 글을 쓴 이새샘 기자는 현재 문화부에서 출판 학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8년 10월 입사한 수습기자들은 4월 1일자로 부서 배치를 받았습니다.
아래 앉아 있는 남윤서 기자는 교육생활부에서 복지를 담당합니다. 남 기자 뒤에서 유난히 조명을 뽀샤시하게 받은 이새샘 기자는 문화부에서 출판 학술을 담당하죠. 시계 방향으로 이미지 기자는 사회부 사건팀에서, 유성열 기자는 사회부 시청팀에서, 신민기 기자는 사회부 사건팀에서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수습생활은 군대생활보다 3배쯤 더 힘듭니다. 군대는 밥이라도 제때 먹이고 잠이라도 재우지만, 수습생활은 극한 체험의 연속입니다. 그들에겐 잠잘 시간은 물론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습니다. 그저 현장을 찾아 쉼없이 달음박질할 뿐입니다.
모든 선배 기자들은 이들과 같은 경험을 하며 기자가 됐습니다. 때론 반문합니다. 도대체 이런 수습생활을 꼭 거쳐야만 하나? 세상은 빛의 속도로 바뀌는데 어떻게 수습생활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을까?
그 질문의 답은 수습생활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때론 절망감에, 때론 자괴감에 몸부름치다가도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내가 뚫지 못하면 아무도 없다는 절박함 속에서 자신의 숨겨진 잠재력을 발휘하곤 하죠.
수습기자들은 그렇게 진짜 기자로 거듭납니다. 그들의 흘린 눈물이 세상을 촉촉히 적시는 봄비가 되길, 그들의 지은 미소가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햇살이 되길 바랍니다. 그들의 맑은 시각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고, 그들의 곧은 소리가 세상을 깨워 일으키길 바랍니다. 그래서 4개월 간 자신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은 5명의 수습기자들이 한없이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그들이 세상으로 나옵니다.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많이 느낄 수 있도록 동네 여러분들이 많이 응원해주세요. 언젠가 그들이 우리 사회의 품격을 지켜내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될 수 있도록…
이로써 ‘독수리 5남매’의 좌충우돌 수습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