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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동아일보 사람들- 이기혁

Posted by 신이 On 12월 - 24 - 2018

이기혁(李起赫, 1963~1997 )은 대구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12월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로 입사했다. ‘월간 멋’부, 여성동아부, 신동아부 기자로 활약했다. 신동아부 기자로 있던 1997년 7월 5일 중국 두만강 북중 접경지역 취재 활동 중 교통사고로 순직했다. 동아일보 사상 네 번째 순직자인 이 기자는 차장대우로 추서됐다.

 

이기혁(李起赫)(대구, 1963~ ) 90.12 수습(출판국), 91.6 기자(월간멋부), 출판부, 여성동아부, 신동아부(현).

(역대사원명록, 동아일보사사 6권, 동아일보사, 2005)

 

 

 

본사(本社) 신동아 이기혁(李起赫)기자 순직
두만강「북(北)-중(中)접경」취재중 교통사고

동아일보사 출판국 신동아부 이기혁(李起赫·34)기자가 5일 오후 2시10분경(한국시간)중국 길림성훈춘시 남방 75㎞ 두만강접경 지역인 방천(防川))부근 경신(敬信)에서 北-中(북-중)접경지역 취재중 교통사고로 순직했다.
이기자는 중국 출장 닷새째인 이날 오전 전세지프를 타고 북한 지역을 두만강 너머로 관측할 수 있는 방천에서 취재를 마치고 훈춘 방면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이날 사고는 이기자와현지인 운전기사 및 안내원 등 5명이 탑승한 지프가 두만강변 비포장도로를지나다 강둑을 들이받고넘으며 5m 아래 강물로추락해 일어났다.
현지인 동승자 4명은중경상을 입었다.  이 기자는 이날 밤 훈춘시립병원으로 옮겨져 안치됐다.
이기자는 대구 출신으로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90년12월 동아일보사 출판국에 입사했다. 유족으로부인과 1남(5)이 있다.
동아일보사는 이기자의유해가 운구되는 대로 장례일정을 확정、회사장으로치를 예정이다.

(동아일보 1997년 7월 7일 39면)

 

본사(本社) 신동아 이기혁(李起赫)기자 회사장

지난 5일 중국 두만강변 北-中(북-중)접경지역 취재 중 교통사고로 순직한 동아일보사 신동아부 이기혁(李起赫·34)기자의 영결식이 14일 오전7시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동아일보 회사장으로엄수됐다.
이기자의 유해는 이날경북 경산시 백합공원묘지에 안장됐다.

동아일보사는 이기자를차장대우로 추서했다.
오명(吳明) 동아일보 사장은 추도사에서 이기자가 1920년 장덕준(張德俊)기자、66년 백광남(白光男)기자、83년 이중현(李重鉉)기자에 이은 동아일보 사상 네번째 순직자라고 애도하고『북한 동포의 참상을 취재하려 했던이기자는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라고 하는 동아일보 사시(社是)의 이름으로 순직한 것』이라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동아일보 1997년 7월 15일 46면)

 

 

 

사표던진 “칼날검사” 홍준표 (이기혁, 신동아, 1995년 11월호)

여자, 남자 그리고 사람들 (이기혁 송광주 이병임, 여성동아, 1994년 7월호)

“30대의 문제는 30대가 풀여야 합니다” (이기혁, 여성동아, 1994년 6월호)

<화제의 가족> 출판계 “무서운 형제들” 대교3형제 … 학습지로 출발해 교육, 출판, 잡지의 정상 노린다
(여성동아, 1994년 4월호)

꿈꾸는 개그우먼 “하둥이” 서춘화 (이기혁, 여성동아, 1994년 4월호)

 

 

[신입사원 입사소감] 출판국 수습 : 김영신 이기혁 이희성 이강필

(동우(東友), 제248호, 1991년 1월)

 

순직한 이기혁기자 회사장 엄수…두만강 北中접경 취재중 교통사고로

[弔辭] 오명 사장, “작별의 고통 말로 할 수 없지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합시다”

[弔辭] 김영신(뉴스플러스부), “우리는 형을 쉬이 보내지 않고 가슴에 묻으렵니다”

[순직 이기혁기자 사고에서 장례까지] 안기석 신동아부 차장서리

(동우(東友), 제327호,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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