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변 東亞 100년, 자랑스런 東友 100인 (동우회보 제83호)
말 없 이 곧 바 로 행 동 하 는 스 타 일
신용순(申用淳, 1931∼1996)
신용순은 ‘철저한 동아맨’으로 불린다. 동아일보 퇴직 후 3년 만에 지병으로 타계했으니 동아일보는 그가 경험한 인생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출신인 그는 1958년 한국외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동아일보에 입사해 편집국 사회부 기자, 방송뉴스부 차장, 도쿄특파원, 사회부장, 정치부장, 방송국 부국장, 편집국장, 이사, 연구실장, 상무 등을 거쳐 1993년 비상임 이사를 끝으로 퇴사했다. 퇴사 후 잠시 강원일보 사장과 성도산업 회장을 지냈다.
그는 동아일보 감사를 지낸 부친과 김연수 씨의 처제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사주 그룹으로 분류할 만 하다. 그러나 그런 배경을 내세운 적은 없다. 오히려 1975년 광고사태 때는 사주와 후배들 사이에서 마음고생이 더 심했을 것이라는 주위의 전언이다.
그는 별로 말이 없는 대신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스타일이었다. 사회부 기자로 첫발을 내디딘 1958년, 부정선거를 파헤친다며 폭력배 소굴로 들어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나온 일, 1960년 박태선 장로를 따르는 1000여 명의 신도가 동아일보를 습격했을 때 몽둥이를 휘두르며 쫓아내려고 한 일, 동아방송 보도담당 부국장 시절 영업담당 부국장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자 패려고 하다가 후배들이 말려 그만둔 일 등 일화가 많다.
그가 검찰에 출입할 때인 1961년 5·16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는 선배 조동오 기자와 함께 ‘장도영 전 최고회의 의장, 장경근 일본 도피 방조’라는 기사를 썼다가 박정희 장군의 지시로 중앙정보부로 연행돼 구속 38일 만에 풀려났다.
순탄하면서도 돌파력이 강했던 편인 그의 언론인 생활에서 1960년 1월 26일 서울역 압사사건을 낙종해 4개월간 퇴사를 했다가 재입사한 것은 기자로서 흠결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는 후배들에게 교훈을 주는 소재로 활용했다.
심규선 (동우회보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