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변 東亞 100년, 자랑스런 東友 100인 (동우회보 제82호)
신문문장을 구어체로 바꾼 선구자
홍승면(洪承勉, 1927∼1983)
홍승면은 ‘신사’로 불릴 정도로 차분하면서도 당대의 논객으로 불리던 명칼럼니스트였다. 언론인 이관구는 조사(弔辭)에서 그를 “품격이 높고 견식이 풍부하여 근대적인 직업언론인으로서의 조건을 갖춘 대기자였으며… 소리는 잔잔한 채 메아리는 우렁차고, 태는 느슨한 채 정은 불같이 뜨거워…”라고 애도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홍승면은 경기중학교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55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31세의 나이에 편집국장이 된다. 1962년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옮겨 1965년 논설위원 겸 신동아 주간이 됐으나, 1968년 신동아 12월 호의 ‘차관(借款)’ 기사와 그해 10월호 ‘북괴와 중소분쟁’ 기사를 군사정권이 문제 삼아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면서 한때 동아일보를 떠나야했다. 1969년 복직해 편집국장이 됐고, 이후 아시아신문재단 사무국장 겸 필리핀 주재 특파원, 수석논설위원, 출판국장 겸 이사, 편집국장 직무대행, 이사 겸 논설주간을 거쳐 광고사태가 일어나던 1975년 2월 퇴사한다.
그는 여러 보직을 거쳤으나 글쓰기를 가장 좋아했다. 한국일보 재직 시절 칼럼 ‘모노클’과 단평 ‘메아리’ ‘지평선’을 집필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신동아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연재했다. ‘화이부동’은 그의 좌우명으로 그는 이를 “군자는 화목을 지향하되 결코 뇌동(雷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의 지인들이 그가 쓴 2100여 편의 글 중 600여 편을 골라 1988년 ‘잃어버린 혁명’과 ‘화이부동’ 2권으로 출판했다.
홍승면은 한국언론사에서 딱딱하고 고답적인 문어체의 신문 문장을 부드럽고 평이한 구어체 문장으로 바꾼 선구자라는 평가도 받는다. ‘백미백상(百味百想)’이라는 책을 남길 정도로 음식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심규선(동우회보 편집주간·전 동아일보 편집국장)